"단묘재본부시유지비(영월 청령포)"의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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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비석은 1457년 청령포에 유배되었던 단종(재위 1452-1455)이 머물던 곳임을 기리기 위해 1763년에 세워졌다. 이곳에 있던 원래의 건물은 없어졌기 때문에 이 비석으로 왕이 머물던 곳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 ||
− | + | 비석은 화강석 기단과 오석으로 된 몸돌로 이루어져 있다. 앞면에는 ‘단종이 영월부에 있을 때의 옛터’라는 뜻의 비문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1763년 가을 눈물을 닦고 어명을 받들어 원주감영에서 비석을 세웠다. 지명은 청령포다.”라고 새겨져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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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7일 (일) 11:50 판
단묘재본부시유지비 端廟在本部時遺址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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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안내판: 영월 청령포 |
해설문
국문
원래 이곳에는 단종이 머물던 어소가 있었으나 없어지고, 영조 39년(1763)에 이 비를 세워 어소의 위치를 전하고 있다.
화강석 기단 위에 오석으로 된 몸돌을 세우고 비 앞면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 뒷면에는 ‘세황명승정무진기원후삼계미계추체경서영원영수석 지명 청령포**’라고 새겼다. 이로 보아 청령포라는 지명은 유래가 깊은 것으로 보인다.
-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部時遺址): 단종이 영월부에 있을 때의 옛터
- 세황명승정무진기원후삼계미계추체경서영원영수석 지명 청령포(歲皇明崇禎戊辰紀元後三癸未季秋抆涕敬書令原營竪石 地名 淸泠浦): 영조 39년 가을 눈물을 닦고 어명을 받들어 원주감영에서 비석을 세웠다. 지명은 청령포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이 비석은 1457년 청령포에 유배되었던 단종(재위 1452-1455)이 머물던 곳임을 기리기 위해 1763년에 세워졌다. 이곳에 있던 원래의 건물은 없어졌기 때문에 이 비석으로 왕이 머물던 곳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비석은 화강석 기단과 오석으로 된 몸돌로 이루어져 있다. 앞면에는 ‘단종이 영월부에 있을 때의 옛터’라는 뜻의 비문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1763년 가을 눈물을 닦고 어명을 받들어 원주감영에서 비석을 세웠다. 지명은 청령포다.”라고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