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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유산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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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천계림사석조나한좌상.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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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작성자 류혜숙,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50724.010360818190001 김천 계림사 석조나한좌상],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 김천 개령면 감문산 계림사>, 영남일보, 2015.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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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김천 계림사 석조나한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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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金泉 鷄林寺 石造羅漢坐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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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소=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1길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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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번호=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2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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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2014년 10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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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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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조선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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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3413706210000 김천 계림사 석조나한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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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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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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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문안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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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국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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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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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애불은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시기에 유사한 도상이 제작된 예가 있어 이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은 인근 산기슭에 묻혀 있던 것을 홍수가 지나간 후 발견해 2000년대 초반에 지금의 장소로 옮겨 모셨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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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은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하고, 머리에 두건을 쓴 모습과 가슴 부근에 있는 두 손의 모양이 확인되지만, 어떤 존상(尊像)을 표현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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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덮는 두건을 쓰고 있는 불상은 지장보살(地藏菩薩),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깨달음을 얻은 제자인 나한(羅漢), 인도 출신의 고승인 승가대사(僧伽大師) 등의 사례가 있다. 그러나 두 손을 깍지낀 채 엄지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불상의 손 모양은 이 마애불 외에는 아직 확인된 예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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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상이 새겨진 바위는 높이와 너비가 각각 170cm, 두께가 30cm 가량으로, 바위의 규모로 볼 때 단독 전각의 주존불(主尊佛)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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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며, 모든 중생을 구원할 때까지 성불을 미루는 보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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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가대사는 당나라에서 전도에 전념하여 관음보살의 화신(化身)으로까지 추앙받았던 인도 출신의 고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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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사는 고구려의 승려로 신라에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이 눌지왕 때인 419년에 창건했다고 전한다. 이후 조선 순조 때에 중창되었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1990년대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아도화상이 감문산의 호랑이 산세로 인해 흉악한 일이 자주 일어나자 이를 막기 위해 이곳에 절을 지은 후 닭 1천 마리를 길렀고, 이후 닭을 키우는 대신 절의 이름을 ‘계림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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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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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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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자체 제공 자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설명과 동일) → 이 불상은 상하좌우 170cm, 두께 30cm 가량의 바위 표면에 3cm 정도의 깊이로 얇게 부조된 마애상(磨崖像)이다. 10여 년 전에 계림사 인근 산기슭에서 현재의 장소로 移安되었다고 한다. 두 손을 맞잡은 채 결가부좌(結跏趺坐)하였고 머리에는 두건을 착용하고 있다. 두드러진 특징은 머리의 두건과 수인(手印)으로, 이처럼 두 손을 깍지낀 채 엄지를 맞댄 수인은 본 상을 제외하고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머리의 두건은 지장보살상, 승가대사상, 나한상 등의 착용 사례가 있으며, 본 상의 명칭은 승가대사 또는 나한일 것으로 판단된다. 마멸이 심하여 존명과 제작시기 등에 대하여 정확한 판단을 하기 어려우나, 비슷한 도상의 상(像)들이 대부분 고려 말 ~ 조선 초기에 제작된 사례가 보고되어 있으므로 이와 비슷한 시기로 추정된다. 두건을 쓴 독특한 도상의 불상은 현존 예가 매우 적어 희귀성이 있으며, 2m에 가까운 크기로 단독 전각의 주존불(主尊佛)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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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김천 개령면 감문산 계림사, 영남일보, 2015.7.24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50724.010360818190001 → 이미지 출처 / 계림사(鷄林寺)는 도리사와 직지사를 창건한 아도화상이 신라 눌지왕 때인 419년에 초창했다고 전해진다. 창건 이후 조선 후기에 중창될 때까지 계림사의 자세한 연혁은 전해지지 않는다. 순조 때 중창이 있었고, 1922년에 중건되었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1990년대의 것이라 한다. 계림사의 창건에는 이 산의 기를 누르기 위해 아도화상이 절을 짓고 닭 천 마리를 기르면 나쁜 일이 사라질 것이라 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의 말대로 절을 짓고 닭을 기르자 안 좋은 일들은 모두 사라졌고, 이후 닭 기르기를 대신해 절 이름을 계림사(鷄林寺)로 고쳤다 한다. / 대웅전 옆 노천에 마애불이 한 분 계신다. 작은 절집이지만 꼭꼭 숨겨진 것처럼 자리하고 계신다. 높이가 170㎝, 두께 30㎝가량의 바위 표면에 3㎝ 정도의 깊이로 얇게 부조된 부처님이시다. 10년쯤 전, 인근 산기슭에 묻혀 있던 것이 홍수 때 발견되어 계림사에 모셨다 한다. 머리에 두건을 쓰고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대부분 흐릿한데 손만이 뚜렷하다. 앙상한 두 손을 깍지 끼고 엄지를 맞대고 있는 수인으로 이 마애불을 제외하고는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두건을 쓴 모습도 그 예가 매우 드물어 희귀한 마애불로 여겨진다. 조성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로 추정하고 있다. 두 손을 모은 모습이 너무나 간절하다. 누구의 기원이 깃들었기에 저리도 간절할까. 아주 빼어난 솜씨는 아니지만, 자꾸만 바라보게 되는 모습이다. 석공의 소원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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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계림사, 낭만적 이데아,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jk3108/221686032437 → 마애지장보살은 절 마당 왼편 언덕 위 솔숲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 '''홍수로 인해 토사가 쓸려 내려와 발견되었다고 한다. 옛 절터 기슭에 자리하고 있던 불상은 2004년에 현재의 장소로 이안하여 모시고 있다고 한다. (이 포스팅 외에 정확한 날짜가 언급된 기록이 없으므로 본문에는 2000년대 초반으로 작성함 / 확인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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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부리 마애지장보살석불좌상, 디지털김천문화대전 http://gimcheon.grandculture.net/gimcheon/toc/GC03200556 → 불상은 수인과 두건 착용 모습의 독특함으로 인해 비로자나불 또는 지장보살로 추정되고 있다. 가슴에 손을 올려 합장하고 있는 모습은 비로자나불의 특징을 띠고 있으며, 머리에 쓴 두건이 양 귀를 가리고 어깨 위까지 흘러내린 모습은 지장보살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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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김천 계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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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2022 국문집필]]

2022년 3월 22일 (화) 15:14 판


김천 계림사 석조나한좌상
작성자 류혜숙, 김천 계림사 석조나한좌상,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 김천 개령면 감문산 계림사>, 영남일보, 2015.7.24.
대표명칭 김천 계림사 석조나한좌상
한자 金泉 鷄林寺 石造羅漢坐像
주소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1길 212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621호
지정일 2014년 10월 20일
분류 유물/불교조각/석조/불상
시대 조선시대
수량/면적 1구
웹사이트 김천 계림사 석조나한좌상,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기존 국문

기존 문안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이 마애불은 언제 만들어진 것인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고려 말에서 조선 초에 이르는 시기에 유사한 도상이 제작된 예가 있어 이와 비슷한 시기에 조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은 인근 산기슭에 묻혀 있던 것을 홍수가 지나간 후 발견해 2000년대 초반에 지금의 장소로 옮겨 모셨다고 한다.

불상은 전체적으로 마모가 심하고, 머리에 두건을 쓴 모습과 가슴 부근에 있는 두 손의 모양이 확인되지만, 어떤 존상(尊像)을 표현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귀를 덮는 두건을 쓰고 있는 불상은 지장보살(地藏菩薩),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깨달음을 얻은 제자인 나한(羅漢), 인도 출신의 고승인 승가대사(僧伽大師) 등의 사례가 있다. 그러나 두 손을 깍지낀 채 엄지손가락을 맞대고 있는 불상의 손 모양은 이 마애불 외에는 아직 확인된 예가 없다.

불상이 새겨진 바위는 높이와 너비가 각각 170cm, 두께가 30cm 가량으로, 바위의 규모로 볼 때 단독 전각의 주존불(主尊佛)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 지장보살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원하며, 모든 중생을 구원할 때까지 성불을 미루는 보살이다.
  • 승가대사는 당나라에서 전도에 전념하여 관음보살의 화신(化身)으로까지 추앙받았던 인도 출신의 고승이다.
  • 계림사는 고구려의 승려로 신라에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이 눌지왕 때인 419년에 창건했다고 전한다. 이후 조선 순조 때에 중창되었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1990년대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전설에 따르면 아도화상이 감문산의 호랑이 산세로 인해 흉악한 일이 자주 일어나자 이를 막기 위해 이곳에 절을 지은 후 닭 1천 마리를 길렀고, 이후 닭을 키우는 대신 절의 이름을 ‘계림사’로 바꾸었다고 한다.

1차 수정

참고자료

  • 지자체 제공 자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설명과 동일) → 이 불상은 상하좌우 170cm, 두께 30cm 가량의 바위 표면에 3cm 정도의 깊이로 얇게 부조된 마애상(磨崖像)이다. 10여 년 전에 계림사 인근 산기슭에서 현재의 장소로 移安되었다고 한다. 두 손을 맞잡은 채 결가부좌(結跏趺坐)하였고 머리에는 두건을 착용하고 있다. 두드러진 특징은 머리의 두건과 수인(手印)으로, 이처럼 두 손을 깍지낀 채 엄지를 맞댄 수인은 본 상을 제외하고서는 아직 알려진 바가 없다. 머리의 두건은 지장보살상, 승가대사상, 나한상 등의 착용 사례가 있으며, 본 상의 명칭은 승가대사 또는 나한일 것으로 판단된다. 마멸이 심하여 존명과 제작시기 등에 대하여 정확한 판단을 하기 어려우나, 비슷한 도상의 상(像)들이 대부분 고려 말 ~ 조선 초기에 제작된 사례가 보고되어 있으므로 이와 비슷한 시기로 추정된다. 두건을 쓴 독특한 도상의 불상은 현존 예가 매우 적어 희귀성이 있으며, 2m에 가까운 크기로 단독 전각의 주존불(主尊佛)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 [류혜숙의 여행스케치] 김천 개령면 감문산 계림사, 영남일보, 2015.7.24 https://m.yeongnam.com/view.php?key=20150724.010360818190001 → 이미지 출처 / 계림사(鷄林寺)는 도리사와 직지사를 창건한 아도화상이 신라 눌지왕 때인 419년에 초창했다고 전해진다. 창건 이후 조선 후기에 중창될 때까지 계림사의 자세한 연혁은 전해지지 않는다. 순조 때 중창이 있었고, 1922년에 중건되었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1990년대의 것이라 한다. 계림사의 창건에는 이 산의 기를 누르기 위해 아도화상이 절을 짓고 닭 천 마리를 기르면 나쁜 일이 사라질 것이라 했다는 전설이 있다. 그의 말대로 절을 짓고 닭을 기르자 안 좋은 일들은 모두 사라졌고, 이후 닭 기르기를 대신해 절 이름을 계림사(鷄林寺)로 고쳤다 한다. / 대웅전 옆 노천에 마애불이 한 분 계신다. 작은 절집이지만 꼭꼭 숨겨진 것처럼 자리하고 계신다. 높이가 170㎝, 두께 30㎝가량의 바위 표면에 3㎝ 정도의 깊이로 얇게 부조된 부처님이시다. 10년쯤 전, 인근 산기슭에 묻혀 있던 것이 홍수 때 발견되어 계림사에 모셨다 한다. 머리에 두건을 쓰고 결가부좌한 모습으로 대부분 흐릿한데 손만이 뚜렷하다. 앙상한 두 손을 깍지 끼고 엄지를 맞대고 있는 수인으로 이 마애불을 제외하고는 알려진 바가 없다고 한다. 두건을 쓴 모습도 그 예가 매우 드물어 희귀한 마애불로 여겨진다. 조성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고려 말에서 조선 초기로 추정하고 있다. 두 손을 모은 모습이 너무나 간절하다. 누구의 기원이 깃들었기에 저리도 간절할까. 아주 빼어난 솜씨는 아니지만, 자꾸만 바라보게 되는 모습이다. 석공의 소원 같기도 하다.
  • 김천 계림사, 낭만적 이데아, 네이버 블로그 https://m.blog.naver.com/pjk3108/221686032437 → 마애지장보살은 절 마당 왼편 언덕 위 솔숲 사이에 자리하고 있다. / 홍수로 인해 토사가 쓸려 내려와 발견되었다고 한다. 옛 절터 기슭에 자리하고 있던 불상은 2004년에 현재의 장소로 이안하여 모시고 있다고 한다. (이 포스팅 외에 정확한 날짜가 언급된 기록이 없으므로 본문에는 2000년대 초반으로 작성함 / 확인 요)
  • 동부리 마애지장보살석불좌상, 디지털김천문화대전 http://gimcheon.grandculture.net/gimcheon/toc/GC03200556 → 불상은 수인과 두건 착용 모습의 독특함으로 인해 비로자나불 또는 지장보살로 추정되고 있다. 가슴에 손을 올려 합장하고 있는 모습은 비로자나불의 특징을 띠고 있으며, 머리에 쓴 두건이 양 귀를 가리고 어깨 위까지 흘러내린 모습은 지장보살의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