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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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혜원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18년 7월 9일 (월) 01:12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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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열비
대표명칭 수열비
한자 樹烈碑
주소 전라북도 장수군 계남면 화음리 920
지정(등록) 종목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40호
지정(등록)일 1984.04.01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시대 조선
수량/면적 1기



해설문

국문

수열비는 열녀(㤠女) 해주오씨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양사순[검토 1]의 아내였던 오씨 부인은 정유재란(1597)때 왜병이 집에 침입하여 가슴을 만지며 희롱하자, 자신의 가슴을 칼로 잘라 왜병에게 던지고 자결하였다. 오씨부인의 이 같은 행동은 마을에 열녀의 기상을 심은 것이라 하여 나라에서 비를 세워주고 마을의 이름도 수열이라 고쳤다.

비문은 조선 선조 임금의 손자인 낭선군(郞善君) 우(俁)가 쓴 것이다.


  1. 국가문화유산포털과 두산백과 등 다수의 자료에서 '양사순(梁思舜)'을 '양사무(梁思無)'로 잘못 표기함.

영문

Suyeolbi Stele

This stele was built for a virtuous wife, Lady O of the Haeju O Cla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 in 1597, Japanese soldiers broke into the house of Yang Sa-sun and sexually harassed his wife Lady O, grabbing her breasts. Stubbornly resisting, she cut her breasts out and throw them to the invaders before she killed herself. After the war, her death was commemorated as an honorable deed, and the government erected this stele and bestowed the village with a name “Suyeol,” meaning “sowing seeds of women’s virtue.”

The epitaph on the stele was written by Prince Nangseon, a grandson of King Seonjo (r. 1567~1608).

비문

  • 앞면 - '세 임진 위 양사순 처 해주오씨 열행립 (歲 壬辰 爲 梁思舜 妻 海州吳氏 烈行立)'[1]
  • 뒷면 - 수열평(樹烈坪)

참고자료

주석

  1. 엽토51, "전북 장수 수열비(樹烈碑)_정유재란 때 열녀 해주오씨을 기리는 비석", 『쏠쏠한 일상』, 작성일: 2016년 9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