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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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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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수열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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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樹烈碑 |
주소 | 전라북도 장수군 계남면 화음리 920 |
지정(등록) 종목 | 전라북도 문화재자료 제40호 |
지정(등록)일 | 1984.04.01 |
분류 |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
시대 | 조선 |
수량/면적 | 1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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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수열비는 열녀(㤠女) 해주오씨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것이다. 양사순[검토 1]의 아내였던 오씨 부인은 정유재란(1597)때 왜병이 집에 침입하여 가슴을 만지며 희롱하자, 자신의 가슴을 칼로 잘라 왜병에게 던지고 자결하였다. 오씨부인의 이 같은 행동은 마을에 열녀의 기상을 심은 것이라 하여 나라에서 비를 세워주고 마을의 이름도 수열이라 고쳤다.
비문은 조선 선조 임금의 손자인 낭선군(郞善君) 우(俁)가 쓴 것이다.
- ↑ 국가문화유산포털과 두산백과 등 다수의 자료에서 '양사순(梁思舜)'을 '양사무(梁思無)'로 잘못 표기함.
영문
비문
- 앞면 - '세 임진 위 양사순 처 해주오씨 열행립 (歲 壬辰 爲 梁思舜 妻 海州吳氏 烈行立)'[1]
- 뒷면 - 수열평(樹烈坪)
참고자료
- 청주 여산송씨 정려각 해설문
- 열녀 남평문씨 정려각 해설문
- 열녀 숙인 진주소씨 정려각 해설문
- 엽토51, "전북 장수 수열비(樹烈碑)_정유재란 때 열녀 해주오씨을 기리는 비석", 『쏠쏠한 일상』, 작성일: 2016년 9월 10일.
주석
- ↑ 엽토51, "전북 장수 수열비(樹烈碑)_정유재란 때 열녀 해주오씨을 기리는 비석", 『쏠쏠한 일상』, 작성일: 2016년 9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