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성 독락정
나성 독락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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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나성 독락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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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羅城 獨樂亭 |
주소 | 세종특별자치시 나성동 101 |
지정(등록) 종목 | 세종특별자치시 문화재자료 제8호 |
지정(등록)일 | 2012년 12월 3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주거생활/조경건축/누정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1동/72.3㎡ |
웹사이트 | 나성 독락정,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나성 독락정은 임난수(林蘭秀) 장군의 아들 임목(林穆)이 아버지가 절의*를 지킨 뜻을 기리고 기억하기 위해 지었다는 정자이다. 조선 1437년(세종 19년)에 처음 지었으며, 이후 여러 번 고쳐 지었다.
임난수 장군은 고려 때 전서*의 벼슬을 지낸 장군으로, 탐라(제주) 지역의 몽골 세력 토벌에 큰 공을 세웠던 인물이다. 그는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충신은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뜻을 품고 벼슬을 거절하였다. 이후 그는 공주목 삼기촌(현 세종시 연기면)에서 생활하다 1407년(태종 7년)에 세상을 떠났다.
정자의 앞에는 금강이 흐르고 있으며, 큰 소나무가 우거져 있고, 넓은 들 가운데에 있는 나성을 등지고 있다. 독락정의 기문(記文)이 온전하게 남아 있으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관련 기록이 적혀 있다.
- 절의 : 절개와 의리. 국가와의 관계에서는 ‘충’을 뜻함
- 전서 : 고려시대의 각 부의 장관
영문
Dongnakjeong Pavilion, Naseong
Dongnakjeong Pavilion was established in 1437 by the civil official Im Mok (1371-1448) to commemorate the patriotic loyalty of his father Im Nan-su (1342-1407).
Im Nan-su was a military official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Following the Mongol invasions of Korea (1231-1270), many ethnic Mongols settled on present-day Jejudo Island from the mid-13th to late 14th centuries. In 1374, they rose in rebellion against the central government of Goryeo but were successfully suppressed thanks in part to the significant efforts of Im Nan-su. When Goryeo fell and the new Joseon dynasty (1392-1910) was established, Im Nan-su refused to serve the new king and retired to Samgichon Village (in today's Yeongi-myeon, Sejong).
The pavilion overlooks the Geumgang River and is surrounded by large pines. It consists of an enclosed room in the rear and a wide veranda with balustrades along the front and sides. The building has undergone several reconstructions since it was first established.
- I think it’s better not to mention the word “Tamna” because the island changed its administrative status a bunch of times throughout these centuries.
- 좋은 생각인 것 같아요! - 린지
- 나성이라는 지명에 대한 설명이 없어요... 영문 명칭 바꿀가요?
영문 해설 내용
독락정은 조선시대의 문신인 임목(1371-1448)이 아버지 임난수(1342-1407)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437년에 지었고,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지었다.
임난수는 고려 말의 무신이다. 13세기 후반부터 14세기 말까지 탐라(지금의 제주)에는 상당수의 몽골인들이 정착하였는데, 1374년 제주 몽골인들이 고려 조정에 반란을 일으켰다. 임난수는 탐라의 몽골인들을 정벌하는 데 참여하여 큰 공을 세웠다. 고려가 멸망하고 조선이 건국되자, 임난수는 벼슬을 거절하고 삼기촌(지금의 세종시 연기면)에서 은거하였다.
정자의 앞에는 금강이 흐르고 있으며, 정자 주변에는 큰 소나무가 우거져 있다. 정자의 뒤쪽 가운데에는 마루방을 두었고 나머지 삼면에는 마루를 깔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