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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화음동정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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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yndsey (토론 | 기여) 사용자의 2022년 7월 11일 (월) 10:15 판 (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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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천 화음동정사지
화천 화음동정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화천 화음동정사지
한자 華川 華陰洞精舍址
주소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화악산로 718, 외 6필지 (삼일리)
지정(등록) 종목 강원도 기념물 제63호
지정(등록)일 1990년 5월 31일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수량/면적 일원15,291㎡
웹사이트 화천 화음동정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강원도 기념물 제63호인 화천 화음동정사지는 조선 중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곡운 김수증(谷雲 金壽增)이 이곳 화악산 북쪽 계곡에 정사(精舍)를 짓고 은둔하며 성리학적 이상향을 구현한 곳이다.

김수증은 현종 9년(1668) 평강 현감으로 부임할 때 지금의 화천군 사내면 용담리 계곡의 수려함을 알게 되었다. 이후 현종 11년(1670) 현재 구운구곡이 위치한 사내면 영당동에 작은 초가를 지어 곡운정사(谷雲精舍)라는 이름을 붙이고 주변 9개의 계곡을 정해 곡운구곡(谷雲九曲)을 경영하였다. 이후 김수증은 중앙 정치에서도 활동했으나 숙종 15년(1689)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이 재집권하며 스승이자 벗이었던 송시열이 사사(賜死)되고 두 아우인 김수항, 김수흥이 유배지에서 세상을 뜨자 김수증은 벼슬을 그만두었다. 이후 이곳 화음동에 낙향하여 정사를 세워 그의 철학과 우주관, 사상이 담긴 상징 세계를 설계하고 자신만의 이상향을 추구하는 공간으로 만들며 후학양성에 힘썼다.

화음동정사가 지어질 당시에는 삼일정(三逸亭), 부지암(不知庵), 송풍정(松風亭), 유지당(有知堂) 등의 건물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흩어져 있었으나, 현재는 없어지고 복원된 삼일정과 송풍정이 남아 있다.

영문

Hwaeumdongjeongsa Study Hall Site, Hwacheon

Hwaeumdongjeongsa Study Hall was established in 1670 by the scholar and civil official Kim Su-jeung (1624-1701, pen name: Gogun) as a place to study academics and teach students. The name Hwaeumdongjeongsa means "Perfected House of the Flower Shadow Valley," as it was located in a valley on the relatively shady northern side of Hwaaksan (Flower Peak Mountain). It was also known as Gogunjeongsa, meaning "Perfected House of the Valley Clouds," after Kim's pen name.

Kim passed the classics licentiate examination in 1650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In 1668, when Kim was serving as magistrate of Pyeonggang (present-day Pyeonggang-eup Township, North Korea), he came to learn about the beauty of this valley (which was part of the jurisdiction at the time?/was in the neighboring county?). In 1670, inspired by the depiction of the Nine-bend Stream of Mount Wuyi in the poem by the Chinese philosopher Zhu Xi (1130-1200), Kim divided the valley into nine areas and built several thatched-roof buildings to reflect his philosophical views and create an idyllic representation of a neo-Confucian worldview. These other buildings included Samiljeong Pavilion, Bujiam Hermitage, Songpungjeong Pavilion, and Yujidang Hall.

After building these structures, Kim continued to serve various official posts. However, as a result of political strife in 1689, Kim’s teacher and friend, the renowned scholar Song Si-yeol (1607-1689), was executed and his two younger brothers, Kim Su-heung (1626-1690) and Kim Su-hang (1629-1689), were exiled and died shortly thereafter. Devastated, Kim Su-jeung resigned from office and secluded himself in this valley.

None of the buildings established by Kim remain. The current Samiljeong and Songpungjeong Pavilions were built anew in 2009.


  • 건물 터인 경우 굳이 This is the site of 이라고 하지 않아도 Site라고 하니까 독자가 건물이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 안드리가 연대순으로 바꿨는데 이렇게 하는 것이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원래 국문 보면 곡운정사를 1970년에 지엇다고 하고 1689년 이후도 정사를 세웠다고 하는데 뭐가 맞는지 모르겠어요.
  • 평강읍은 약 50km 떨어져 있는데 그 당시에 화천 사내면은 평강에 편입되어 있었나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이 계곡에 대해 어떻게 알게 된 건지 잘 모르겠어요.
  • According to 한국문화원연합회, 韓國傳統造景學會誌, and 중앙일보, 곡운정사 is 화음동정사. - 안드리
    • 확인 부탁 - 린지
  • 보수했다고 써있는데 새로 지었을 것 같음. - 안드리
    • 확인 부탁; 국문은 복원됐다고 하니 맞을 것 같아요.
  • 화음동에 대한 의미를 추가했어요.
  • 안드리가 주자 얘기 추가했는데 아주 좋은 것 같아서 살렸어요.

영문 해설 내용

화악산 북쪽 계곡에 위치한 이곳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수증(1624-1701)이 은둔하며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정사를 지었던 곳이다.

김수증은 1650년 생원시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다. 그러나 1689년 정쟁으로 스승이자 벗이었던 송시열(1607-1689)이 사약을 받아 죽고, 두 아우인 김수흥(1626-1690), 김수항(1629-1689)도 유배지에서 세상을 뜨자 벼슬에서 물러나 화악산으로 은거하였다.

김수증이 화악산에 자리잡게 된 것은 1668년 평강(지금의 북한 평강읍 지역)에 현감으로 부임하면서 화천 사내면 일대 계곡의 수려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김수증은 1670년 사내면 영당동에 초가를 지어 곡운정사라는 이름을 붙였고, 일대 계곡에 9개 구역을 정해 그 곳곳에 자신의 철학과 이상을 상징하는 여러 채의 공간을 지었다. 김수증은 이곳에서 그의 철학과 우주관, 사상이 담긴 상징 세계를 설계하고 자신만의 성리학적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삼일정, 부지암, 송풍정, 유지당 등의 건물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삼일정과 송풍정은 2009년에 보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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