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 화음동정사지
화천 화음동정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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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화천 화음동정사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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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華川 華陰洞精舍址 |
주소 | 강원도 화천군 사내면 화악산로 718, 외 6필지 (삼일리) |
지정(등록) 종목 | 강원도 기념물 제63호 |
지정(등록)일 | 1990년 5월 31일 |
분류 |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
수량/면적 | 일원15,291㎡ |
웹사이트 | 화천 화음동정사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국문
강원도 기념물 제63호인 화천 화음동정사지는 조선 중후기의 문신이자 성리학자인 곡운 김수증(谷雲 金壽增)이 이곳 화악산 북쪽 계곡에 정사(精舍)를 짓고 은둔하며 성리학적 이상향을 구현한 곳이다.
김수증은 현종 9년(1668) 평강 현감으로 부임할 때 지금의 화천군 사내면 용담리 계곡의 수려함을 알게 되었다. 이후 현종 11년(1670) 현재 구운구곡이 위치한 사내면 영당동에 작은 초가를 지어 곡운정사(谷雲精舍)라는 이름을 붙이고 주변 9개의 계곡을 정해 곡운구곡(谷雲九曲)을 경영하였다. 이후 김수증은 중앙 정치에서도 활동했으나 숙종 15년(1689)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남인이 재집권하며 스승이자 벗이었던 송시열이 사사(賜死)되고 두 아우인 김수항, 김수흥이 유배지에서 세상을 뜨자 김수증은 벼슬을 그만두었다. 이후 이곳 화음동에 낙향하여 정사를 세워 그의 철학과 우주관, 사상이 담긴 상징 세계를 설계하고 자신만의 이상향을 추구하는 공간으로 만들며 후학양성에 힘썼다.
화음동정사가 지어질 당시에는 삼일정(三逸亭), 부지암(不知庵), 송풍정(松風亭), 유지당(有知堂) 등의 건물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흩어져 있었으나, 현재는 없어지고 복원된 삼일정과 송풍정이 남아 있다.
영문
Hwaeumdongjeongsa Study Hall Site, Hwacheon
This area in the northern valley of Hwaaksan Mountain is where in 1670 the scholar and civil official Kim Su-jeung (1624-1701) built his study hall to focus on his studies and teach others*. The study hall was one among several other buildings built by Kim along this valley as an idyllic representation of a Neo-Confucian worldview.
Kim passed the classics licentiate examination in 1650 and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In 1668 when Kim served the post of the magistrate of Pyeonggang (present-day Pyeonggang-eup Township in North Korea), he had an opportunity to learn about the beauty of this valley, and inspired by the depiction of the Nine-bend Stream of Mount Wuyi in the poem by the Chinese philosopher Zhu Xi (1130-1200), Kim decided to recreate his own representation of the Nine-bent Stream here in this valley. In 1670, he divided the valley into nine sections and built several buildings, including Hwaeumdongjeongsa Study Hall, also known as Gokunjeongsa**, to reflect his philosophical views and serve as a utopian model of the world he wanted to build.
In 1689, as a result of political strife in the country, the renowned scholar Song Si-yeol (1607-1689), who was Kim’s teacher and friend, was executed and his two younger brothers Kim Su-heung (1626-1690) and Kim Su-hang (1629-1689) died in exile. Devastated, Kim Su-jeung resigned from his post and secluded himself in this valley.
Other buildings constructed in different parts of the valley by Kim Su-jeong included Samiljeong Pavilion, Bujiam Hermitage, Songpungjeong Pavilion, and Yujidang Hall. None of these buildings remain. The current Samiljeong and Songpungjeong Pavilions were built anew*** in 2009.
I changed the order and added a few things because it didn’t make much sense to translate it the way it was written.
- According to https://ncms.nculture.org/stonecraft/story/4869 곡운정사 is 화음동정사.
Other sources: https://koreascience.kr/article/JAKO201731951960992.pdf https://koreajoongangdaily.joins.com/2020/12/02/culture/foodTravel/gugok-neoconfucianism-Mount-sobaek/20201202172400587.html
- 보수했다고 써있는데 새로 지었을 것 같음.
영문 해설 내용
화악산 북쪽 계곡에 위치한 이곳은 조선시대의 문신이자 학자인 김수증(1624-1701)이 은둔하며 학문을 닦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정사를 지었던 곳이다.
김수증은 1650년 생원시에 합격한 후 여러 관직을 지냈다. 그러나 1689년 정쟁으로 스승이자 벗이었던 송시열(1607-1689)이 사약을 받아 죽고, 두 아우인 김수흥(1626-1690), 김수항(1629-1689)도 유배지에서 세상을 뜨자 벼슬에서 물러나 화악산으로 은거하였다.
김수증이 화악산에 자리잡게 된 것은 1668년 평강(지금의 북한 평강읍 지역)에 현감으로 부임하면서 화천 사내면 일대 계곡의 수려함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김수증은 1670년 사내면 영당동에 초가를 지어 곡운정사라는 이름을 붙였고, 일대 계곡에 9개 구역을 정해 그 곳곳에 자신의 철학과 이상을 상징하는 여러 채의 공간을 지었다. 김수증은 이곳에서 그의 철학과 우주관, 사상이 담긴 상징 세계를 설계하고 자신만의 성리학적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삼일정, 부지암, 송풍정, 유지당 등의 건물이 계곡을 사이에 두고 흩어져 있었다고 한다. 지금의 삼일정과 송풍정은 2009년에 보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