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산서원
고산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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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고산서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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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高山書院 |
주소 |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광음리 34외 3필 |
지정(등록) 종목 | 경상북도 기념물 제56호 |
지정(등록)일 | 1985년 10월 5일 |
분류 | 유적건조물/교육문화/교육기관/서원 |
수량/면적 | 12,365㎡ |
웹사이트 | 고산서원,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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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이 서원은 18세기 유학자인 문경공(文敬公)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 1711~1781)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상정은 25세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공조참의에 제수 되었으나 사퇴하고 후진 양성에 힘썼다. 조선 고종(高宗) 19년(1882)에 이조판서에 올려졌고 1910년에 문경공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건물로는 사당인 경행사(景行祠)와 강당인 호인당(好仁堂)이 있고 오른쪽에 ‘口’자형 관리사가 있다. 앞에서 왼편으로는 고산정사(高山精舍)가 있다. 경행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고, 호인당은 온돌방 2칸과 8칸의 마루가 있어 그 규모가 크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추고 있으며 특히 동․서재인 앙지재와 백승재의 양 끝은 개방된 마루가 있어서 주변의 경관을 음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수정 국문
초고
고산서원은 조선시대의 학자 대산 이상정(大山 李象靖, 1711~1781)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정조 13년(1789)에 세워졌다.
이상정은 조선시대의 저명한 유학자 이황(李滉, 1502~1570)의 학문을 계승한 학자로, 벼슬을 사양하면서 고향에서 제자를 양성하는 것에 힘썼다.
원래 이 자리에는 이상정이 영조 44년(1768)에 건립한 고산정사(高山精舍)가 있었는데, 후대에 지역 유림들이 그의 행적을 추모하며 그 터에 서원을 짓고 학문을 익히는 공간으로 삼은 것이다. ‘고산’은 『시경(詩經)』의 구절에서 따온 것으로, ‘고상하고 숭고한 덕행’을 뜻한다. 서원 내의 다른 건물의 이름 역시 『시경』 구절에서 따서 지었으며, 이상정의 학덕을 기리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서원은 강학을 위한 강당이 앞에 있고, 제향 공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따르고 있다. 경내에는 1977년 정비된 고산정사(高山精舍)와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제사 준비를 위한 전사청, 관리인이 머무는 주사 등 총 9동의 건물이 있다.
서원은 고종 5년(1868)의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훼철되어 향사만 지내다가, 1977년부터 복원을 시작했다. 1985년에는 이상정의 동생 이광정(李光靖, 1714~1789)을 추가로 배향했고, 이후 매년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 高山仰止 景行行止 : 높은 산을 보고 큰 도를 행한다(시경 소아 차할편)
1차 수정
참고자료
- [종가] 35.안동 한산 이씨 대산 종택, 경북일보, 2016.11.14. http://www.kyongbuk.co.kr/news/articleView.html?idxno=976290 -> 그의 학문 여정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계기는 57세 때(영조43) 고산정사(高山精舍)를 지은 것이다. 안동시 일직면 광음리에 위치한 정사 앞으로는 붉은 석벽이 병풍처럼 처져있고, 그 사이로 ‘미천’이란 시냇물이 흘러간다. 그는 이 풍광을 고산잡영(高山雜詠)으로 노래했다. / 지방 사림은 문경공 대산 이상정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789년(정조13)에 ‘고산서원’을 건립했다. 서원의 터는 1768년(영조44)에 창건된 고산정사에다 지었다. 당시 고산정사는 초가삼간, 대산 선생의 유흔이 남아 있었다. 이후 1868년(고종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그 이후에는 향사만 지내왔다. 1977년 고산정사와 백승각을 보수하고, 1984년과 1985년에 강당인 호인당, 묘우인 경행사, 동재를 중수했다. 1985년부터 유림의 공의로 이상정의 아우인 이광정(李光靖)을 배향했다. 이후, 해마다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1985년 10월 5일 경상북도기념물 제56호로 지정됐다.
- 고산서원,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691 -> 고산서원은 유학자 이상정의 학덕을 기리기 위하여 1789년(정조 13) 사림의 공의로 건립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 1820~1898)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고 그 이후에는 향사만 지내 왔다. 1977년 고산정사(高山精舍)와 백승각(百承閣)을 보수하고, 1984년과 1985년에 강당인 호인당(好仁堂), 묘우인 경행사(景行祠), 동재(東齋)를 중수하였다. / 사당인 경행사와 강당인 호인당이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법식에 따라 배치되었고, 우측으로 ‘ㅁ’자형 관리사가 자리하고 있다. 전면 좌측에는 고산정사가 있어 도산서원(陶山書院)의 역락서재(亦樂書齋)를 연상하게 한다. 경행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측면에 창을 둔 외1출목 이익공(二翼工) 계열이며 맞배지붕집이다. 호인당은 우측에 2칸 온돌방을 두고 8칸의 넓은 마루를 놓아 전면의 풍광을 즐길 수 있도록 시원하게 만들었다. 전면 좌우에 자리하고 있는 백승각과 청림헌은 전퇴칸을 둔 정면 6칸, 측면 1.5칸의 규모이다. 백승각과 청림헌은 향교의 동재·서재와 같은 기능을 수행하는 건물이나 현재는 서고로 사용하고 있다. 백승각은 팔작지붕으로 처리한 반면 청림헌은 ‘工’자형 지붕으로 모양을 달리하고 있다. 청림헌 뒤쪽에 자리하고 있는 관리사는 경상북도 안동 지방의 반가(班家) 형식인 ‘ㅁ’자형 평면이나, 관리사의 기능에 적합하게 부엌·고방 등의 수장 공간을 많이 확보하고 있다.
- 퇴계 학맥 꽃 피운 영남의 소퇴계 이상정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고산서원 :: 안동서원탐방, 안동여행, 고산서원, 안동시 공식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andongcity00/221659125491 -> 경내에는 경행사, 호인당, 앙지재, 백승각, 전사청, 고산정사, 향도문, 주사 등 9동의 건물이 있다. / 고산서원은 1789년(정조 13)에 이상정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이 지방 사림에서 건립 / 출입문인 향도문은 공맹의 도를 향해 매진한다는 의미이고, 서원의 사당은 경행사, 동재인 앙지재, 서원의 이름인 고산은 모두 시경 소아 거할詩의 구절을 인용한 것으로, 이상정의 학덕을 존모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 1977년 정부 보조로 정사와 백승각을 보수하고, 1984년과 85년에 강당, 묘우, 동재 등을 중수하였고, 85년부터 유림의 공의로 이광정을 배향하고 있다. / 서재인 백승각에는 서원의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