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도포대지
장도포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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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장도포대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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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獐島砲臺址 |
지정(등록) 종목 |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9호 |
지정(등록)일 | 2001년 4월 2일 |
분류 | 유적건조물/정치국방/성/성곽시설 |
시대 | 조선시대 |
수량/면적 | 포2, 포대1/2,275㎡ |
웹사이트 | 장도포대지,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해설문
기존 국문
장도포대는 조선 고종 16년에 인천으로 진입하는 이양선을 막기 위하여 화도진을 구축할 당시 축조되었다.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화도진도에서 이곳에 3개의 포좌가 설치됐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는데, 2개는 바다 쪽을 향하고 있고 1개는 동남쪽을 향하고 있어 각각 외곽과 내곽 수비가 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서해로 들어오는 이양선을 막기 위해 1879년(고종 16) 설치했던 장도포대가 있었던 곳이다. 장도(獐島)는 노루섬이라는 뜻으로 ‘노루목’ · ‘노렴’이라고도 하였다. 이곳의 산 이름 ‘댕구산’은 당시 설치되었던 대포 ‘대완구(大碗口)’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대완구는 직경 30cm정도의 조선시대 화포이다.
장도포대는 화도진(花島鎭)이 관할했던 포대로서, 1878년 8월 고종은 어영대장 신정희(申正熙, 1833~1895)와 강화유수 이경하(李景夏, 1811~1891)에게 인천·부평지역에 해안 진지와 포대를 세울 것을 명하여 이듬해 7월 화도진 및 장도포대, 논현포대(호구포대)를 완성하였다.
「화도진도(花島鎭圖)」에서 장도포대의 위치와 포의 문수,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지도 상단에 “인천읍에서 동남쪽으로 장도포대까지 10리 떨어져 있다.”는 기록이 있으며, 3문의 포 가운데 2문은 서남쪽을, 1문은 동남쪽을 향하고 있다.
1차 수정
문맥요소
Nodes
Links
참고자료
- 장도포대지,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 논현동 댕구산, 인천광역시 홈페이지 ‘지명유래’ -> ‘댕구산’ 지명의 유래
https://www.incheon.go.kr/IC040312/1517536
- 『고종실록』 권15, 1878년(고종 15) 8월 27일. -> 신정희 포대 설치 하교
http://sillok.history.go.kr/id/kza_11508027_001
- 『승정원일기』 2865책, 1879년(고종 16) 7월 1일. -> 진지와 포대 완성
- 『고종실록』 권16, 1879년(고종 16) 7월 11일. -> 포대 완성 후 포상
http://sillok.history.go.kr/id/kza_11607011_001
- 화도진도, 국립중앙도서관 - > 인천읍에서 10리 떨어짐 : 自仁川邑東南距獐島砲臺十里 및 포대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