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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전리 각석은 선사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 각종 기하학적 문양, 그림, 명문이 새겨진 암각화이다. 1970년 한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암각화이며, 1973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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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는 너비 약 9.5미터, 높이 약 2.7미터 정도로 긴 네모 형태이고 앞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바위 윗부분에는 주로 사람과 동물 그림이 있고, 마름모무늬, 둥근무늬, 고사리무늬, 물결무늬 등이 덧새겨져 있다. 이 무늬들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덮개돌에 새겨진 무늬와 유사하여 청동기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바위 아랫부분에는 날카로운 금속 도구로 새긴 가는 선 그림이 집중되어 있다. 사람의 옷차림, 말을 끌거나 타고 있는 행렬, 돛을 단 배, 용 그림 등으로 신라 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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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랫부분에는 525년과 539년에 새겨진 2개의 명문이 있다. 먼저 새겨진 명문은 신라 법흥왕(재위 514-540)의 동생인 사부지갈문왕이 525년에 이곳을 다녀갔다는 내용이고, 나중에 새겨진 것은 사부지갈문왕의 부인 지몰시혜가 539년 어린 아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는 내용이다.
  
 
=='''갤러리'''==
 
=='''갤러리'''==

2023년 6월 2일 (금) 10:28 판


울주 천전리 각석
Petroglyphs of Cheonjeon-ri, Ulju
울주 천전리 각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울주 천전리 각석
영문명칭 Petroglyphs of Cheonjeon-ri, Ulju
한자 蔚州 川前里 刻石
주소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 210
지정번호 국보 제147호
지정일 1973년 5월 4일
분류 유물/일반조각/암벽조각/각석
시대 청동시대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울주 천전리 각석,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천전리 각석은 1970년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알려진 암각화이다.

그림이 새겨진 바위는 너비 약 9.5미터, 높이 약 2.7미터 정도로 긴 네모 형태이며 앞으로 기울어져 있다.

바위 서쪽에는 쪼기 기법으로 새긴 사람과 동물그림이 있고, 그 위에 갈기 기법으로 덧새긴 마름모무늬·둥근무늬·고사리무늬·물결무늬 등이 있다. 이 무늬들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덮개돌에 새겨진 무늬와 유사하여 청동기시대 암각화로 추정된다.

날카로운 금속도구로 그어 새긴 가는 선 그림은 바위 아랫부분에 집중되어 있으며 사람의 옷차림, 말을 끌거나 타고 있는 행렬, 돛을 단 배, 용 그림 등으로 신라 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새김글은 신라 법흥왕의 동생 사부지갈문왕(徙夫知葛文王)이 을사년(乙巳年, 서기 525년)에 이곳을 다녀갔다는 내용의 원명(原銘)과 기미년(己未年, 서기 539년)에 사부지갈문왕의 부인 지몰시혜(只沒尸兮)가 어린 아들과 함께 찾았다는 추명(追銘)으로 되어 있다.

천전리 각석 명문 해설

영문

영문 해설 내용

천전리 각석은 선사시대부터 신라시대까지 각종 기하학적 문양, 그림, 명문이 새겨진 암각화이다. 1970년 한국에서 최초로 발견된 암각화이며, 1973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바위는 너비 약 9.5미터, 높이 약 2.7미터 정도로 긴 네모 형태이고 앞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 바위 윗부분에는 주로 사람과 동물 그림이 있고, 마름모무늬, 둥근무늬, 고사리무늬, 물결무늬 등이 덧새겨져 있다. 이 무늬들은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덮개돌에 새겨진 무늬와 유사하여 청동기시대에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바위 아랫부분에는 날카로운 금속 도구로 새긴 가는 선 그림이 집중되어 있다. 사람의 옷차림, 말을 끌거나 타고 있는 행렬, 돛을 단 배, 용 그림 등으로 신라 때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아랫부분에는 525년과 539년에 새겨진 2개의 명문이 있다. 먼저 새겨진 명문은 신라 법흥왕(재위 514-540)의 동생인 사부지갈문왕이 525년에 이곳을 다녀갔다는 내용이고, 나중에 새겨진 것은 사부지갈문왕의 부인 지몰시혜가 539년 어린 아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다는 내용이다.

갤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