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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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자비
Stele of Kim Ja-su for His Filial Devotion
효자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대표명칭 효자비
영문명칭 Stele of Kim Ja-su for His Filial Devotion
한자 孝子碑
주소 경북 안동시 안기2길 57-4 (안기동)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8호
지정일 1973년 8월 31일
분류 기록유산/서각류/금석각류/비
수량/면적 1기
웹사이트 효자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해설문

국문

효자비는 고려 말 충신이자 효자로 이름난 김자수(金自粹, 1351~1413)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조선 후기에 세워졌다고 전하며, 원래 월곡면 노산리에 있었는데,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3년 현재 자리로 옮겨졌다.

김자수는 공민왕 23년(1374)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 고려 조정에서 여러 관직을 지냈다. 고려가 망한 뒤 고향인 안동에서 은거하였으며, 조선 태종(1400~1418 재위)이 형조판서에 임명하였으나 나아가지 않고 자결하여 고려왕조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효자로도 유명한 인물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묘 곁에서 삼년상을 정성으로 치렀다. 사람들은 그가 시묘살이 하던 곳을 ‘시묘골’이라 부르며 그의 효행을 칭송했다고 한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효자비는 사각형의 받침돌,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앞면에는 ‘효자고려도관찰사김자수지리(孝子高麗道觀察使金自粹之里)’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그의 효행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비각 뒤에는 김자수의 제사를 모시는 추원재가 있다.

영문

Stele of Kim Ja-su for His Filial Devotion

This stele is said to have been erected in the late period of the Joseon dynasty (1392-1910) to commemorate the filial devotion of Kim Ja-su (1351-1413), a filial son and a loyal subject of the Goryeo dynasty (918-1392). It was originally located in Nosan-ri but was moved to the current location in 1973 due to the construction of the Andong Dam.

Kim Ja-su placed first in the state examination in 1374 and served several official posts in the Goryeo government. After the fall of Goryeo and the establishment of the new Joseon dynasty (1392-1910), he retired to his hometown in Andong. King Taejong (r. 1400-1418) appointed him to the position of Minister of Punishments, but he committed suicide instead to remain loyal to the Goryeo dynasty. He was also renowned for his filial piety, having resided in a hut next to his mother’s tomb for the entire three-year mourning period after her death.

The granite stele consists of a rectangular pedestal, a body stone, and a capstone. The name of the stele is inscribed on the front of the stele, while a record of Kim Ja-su’s filial devotion is inscribed on the back of the stele.

영문 해설 내용

효자비는 고려 말 충신이자 효자인 김자수(1351-1413)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으로, 조선 후기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원래 월곡면 노산리에 있었는데,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3년 현재 자리로 옮겨졌다.

김자수는 1374년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 고려 조정에서 여러 관직을 지냈다.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건국된 후에는 고향인 안동에서 은거하였으며,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이 형조판서에 임명하였으나 나아가지 않고 자결하여 고려왕조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효자로도 유명한 인물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묘 곁에서 삼년상을 정성으로 치렀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효자비는 사각형의 받침돌,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앞면에는 효자 김자수의 비임을 알 수 있게 하는 이름이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그의 효행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문맥요소

Nodes

ID Class Label Description
김자수 Actor 김자수(金自粹, 1351-1413)
일직손씨 Actor 일직손씨(一直孫氏)
효자비 Object 효자비
김노경 Actor 김노경(金魯敬,_1766-1837)
김정희 Actor 김정희(金正喜,_1786-1856)
안동댐_건설 Event 안동댐_건설

Links

Source Target Relation
효자비 김자수 isSteleOf
효자비 추원재 isNear
김자수 일직손씨 hasMother
효자비 안동댐_건설 isRelatedTo
효자비 김노경 writer
효자비 김정희 calligrapher

참고자료

  • 효자비,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ccbaCpno=2113700380000
  • 효자비,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0986 → 비문은 김노경(金魯敬)이 짓고 김정희(金正喜)가 썼다. 비의 제목은 ‘효자고려도관찰사김자수지묘(孝子高麗都觀察使金自粹之墓)’라고 되어 있다. 비음(碑陰)에는 ‘여모분삼후홍무갑인문과장원위지도관찰사(廬母墳三後洪武甲寅文科壯元 位至 都觀察使)’ 등의 내력이 새겨져 있으며, 비각에는 상촌선생비각기사(桑村先生碑閣紀事)와 비각이건기(碑閣移建記) 편액이 걸려 있다. 비각이건기는 상촌선생비각이건기가 쓰인 1878년보다 1년 앞서는 것으로, 비각이 이건된 이듬해에 김노경·김정희 부자(父子)가 찬(撰)하고 서(書)하였다. 기사는 비음에 각자하였는데 김자수의 행적과 효행이 쓰여 있다. / 김정희의 몰년과 비교해도 차이가 있음.
  • 안동 김자수 효자비(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8호)와 추원재(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7호) / 효자이자 고려의 충신으로 이름을 남긴 상촌 김자수 선생의 흔적, 김희태의 ‘이야기가 있는 역사여행’, 네이버 블로그, 2020.9.24. https://blog.naver.com/bogirang/222098229004 -> 비석 앞뒷면 촬영한 영상 있음.
  • 안기동에는 김자수 선생의 효자비가 있다?, 안동시 공식블로그, 네이버 블로그, 2020.10.15 https://blog.naver.com/andongcity00/222115830423
  • [추원재] 항목 참조 → 본래 월곡면 노산리에 있었는데,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3년에 현재 자리로 옮겼다.
  • 김자수, 디지털안동문화대전. http://andong.grandculture.net/andong/toc/GC02401318
  • 김자수, 국역 국조인물고. https://terms.naver.com/entry.naver?docId=945924&cid=62132&categoryId=62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