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효자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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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비는 고려 말 충신이자 효자인 상촌(桑村) 김자수(金自粹, 1351~1413)의 효행비로 정려각(旌閭閣) 안에 있다. 원래 이 효자비는 공양왕(恭讓王) 때 이미 건립된 것으로 안동부 남문 밖에 세워져 있었다.

비각은 사면이 1칸인 팔작기와집이며 홑처마이다. 비석은 화강석이며 머리에 화경형개석(花頸形蓋石)을 얹고 장방대석으로 받침을 하였다. 비의 앞면에는 ‘효자고려도관찰사김자수지리(孝子高麗道觀察使金自粹之里)’라고 쓰여져 있으며, 뒷면에는 그의 행적과 효행 사적이 기록되어 있다. 비각 안에는 조선 순조(純祖) 18년에 김노경(金魯敬)이 글을 짓고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쓴 편액이 있으며, 추녀 아래에는 비각 이건기(移建記)가 걸려 있다. 그의 어머니 손씨 부인이 돌아가자 그는 삼년상을 지성으로 모셨는데 세상 사람들은 그가 여묘살이 하던 곳을 ‘시묘(侍墓)골’이라 불러 효행을 칭송했다고 한다.

이 비와 비각은 안동댐 건설로 안동군 월곡면 노산리에서 1973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되었다.

수정 국문

초고

이 비석은 고려 말 충신이자 효자로 이름난 김자수(金自粹, 1351-1413)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김자수는 고려가 망한 후 고향인 안동에서 은거하였으며, 고려가 망한 것을 안타까워하며 경기도 광주에 이르러 자결하여 충신으로 이름이 났다. 김자수는 효자로도 유명한 인물로, 어머니 일직손씨(一直孫氏)가 돌아가시자 묘 곁에서 삼년상을 정성으로 치렀다. 사람들은 그가 시묘살이 하던 곳을 ‘시묘(侍墓)골’이라 부르며 그의 효행을 칭송했다고 한다.

김자수의 효행을 기리는 비석은 고려 공양왕(恭讓王, 재위 1389∼1392) 때 안동부 남문 밖에 건립된 것이 있었다고 하며, 지금의 비석은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비석은 사각형의 받침돌 위에 몸돌을 올리고 모자 모양의 머릿돌을 올린 형태이다. 앞면에는 ‘효자고려도관찰사김자수지리(孝子高麗道觀察使金自粹之里)’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그의 효행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김노경(金魯敬, 1766-1837)이 지었고, 그의 아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가 글씨를 썼다고 한다.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3년에 안동 월곡면 노산리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워졌다.

  • 비석 및 비각의 건립 시점에 대한 정보가 상이해 확인 필요함.
  1. 비각이건기는 상촌선생비각이건기가 쓰인 1878년보다 1년 앞서는 것(1877년)으로, 비각이 이건된 이듬해에 김노경·김정희 부자(父子)가 찬(撰)하고 서(書)하였다. ; 아들 김정희의 몰년이 1856년이라 시점이 맞이 않음.
  2. 비각 안에는 조선 순조 18년(1818)에 김노경(金魯敬, 1766-1837)이 글을 짓고, 그의 아들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 1786-1856년)가 글씨를 쓴 편액이 걸려있다. ; ‘이건기'편액인지, 비석에 대한 것인지 확인 필요함.
  • 비각 뒤에는 김자수의 제사를 모시는 추원재가 있다.

1차 수정

효자비는 고려 말 충신이자 효자로 이름난 김자수(金自粹, 1351~1413)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조선 후기에 세워졌다고 전하며, 원래 월곡면 노산리에 있었는데, 안동댐 건설로 인해 1973년 현재 자리로 옮겨졌다.

김자수는 공민왕 23년(1374) 과거에 장원급제한 후 고려 조정에서 여러 관직을 지냈다. 고려가 망한 뒤 고향인 안동에서 은거하였으며, 조선 태종(1400~1418 재위)이 형조판서에 임명하였으나 나아가지 않고 자결하여 고려왕조에 대한 절의를 지켰다. 효자로도 유명한 인물로,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묘 곁에서 삼년상을 정성으로 치렀다. 사람들은 그가 시묘살이 하던 곳을 ‘시묘골’이라 부르며 그의 효행을 칭송했다고 한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효자비는 사각형의 받침돌, 몸돌, 머릿돌로 이루어져 있다. 앞면에는 ‘효자고려도관찰사김자수지리(孝子高麗道觀察使金自粹之里)’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고, 뒷면에는 그의 효행에 대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비각 뒤에는 김자수의 제사를 모시는 추원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