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흥국사 노사나불 괘불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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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할 때 법당 앞뜰의 괘불대에 걸어 놓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만든 걸개 그림 형태의 대형 탱화로서, 그림 중앙에는 화려한 보관을 쓴 노사나불이 두 손을 어깨 위까지 들어 좌우로 벌리고 있으며 보관 중앙에는 화염무늬에 둘러싸인 여섯 불상이 장식되어 있다. 위에는 노사나불과 관련이 있는 천궁과 같은 건물의 처마 끝이 표현되어 있고 아래에는 좌우로 보탑이 배치되어 있다.
1759년 당시 최고 화승으로 꼽히던 의겸과 더불어 비현이 참여해 그렸는데, 뒷면에 보수한 기록이 남아 있어 당시 괘불 제작의 실태를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이다.
수정 국문
초고
괘불은 사찰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할 때 야외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데 쓰였다.
이 괘불은 광명을 상징하는 노사나불을 나타낸 것으로, 1759년에 비현과 12인의 화승이 함께 조성하였다. 비현은 18세기 후반 전라도에서 활동하였으며, 17세기 최고의 승려 화가로 꼽히는 의겸의 계보를 잇는 화승이다.
그림의 주인공인 노사나불은 연꽃대좌를 밟고 서서 어깨까지 두 손을 들고 양쪽으로 벌리고 있는 모습으로, 화면을 꽉 채워 단독으로 배치하였다.
거대하고 화려한 몸광배와 둥근 머리광배를 갖춘 노사나불은 머리에 불꽃 무늬 등으로 장식된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 중앙에는 6위의 화불이 조각되어 있다. 가슴에는 ‘만(卍)’자를 표현한 커다란 장신구가 표현되어 있다.
그림의 아래쪽 좌우에는 가득 찬 구름을 표현한 후 흰색의 보탑을 배치하였다. 화면 위쪽에는 건물의 처마 끝을 묘사했는데, 이는 노사나불이 머무르며 설법하는 공간인 천궁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불화 하단 중앙에는 괘불탱의 조성 시기와 봉안 장소, 시주자의 명단과 발원 내용을 기록한 화기가 남아있다. 또한 불화의 뒷면에도 후대에 괘불을 보수하면서 기록한 화기가 남아 있어 당시 괘불 제작의 실태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진본은 현재 흥국사 경내에 있는 의승수군 유물전시관 내의 괘불함에 보관되어 있다.
1차 수정
노사나불을 그린 괘불탱이다. 괘불은 사찰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할 때 야외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데 쓰였다.
이 불화는 1759년에 비현과 12인의 승려화가가 함께 조성하였다. 비현은 18세기 후반 전라도에서 활동하였으며, 17세기 최고의 대가로 꼽히는 의겸의 계보를 잇는 승려화가이다.
그림 중앙에는 주인공인 노사나불을 화면을 꽉 채워 단독으로 배치하였다. 연꽃대좌를 밟고 서서 어깨까지 두 손을 들고 양쪽으로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거대하고 화려한 광배를 갖췄으며, 머리에 불꽃 무늬 등으로 장식된 보관을 쓰고 있다. 화면 위쪽에는 건물의 처마 끝을 묘사했는데, 이는 노사나불이 머무르며 설법하는 공간인 천궁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불화 하단 중앙에는 이 불화의 조성 시기와 봉안 장소, 시주자의 명단과 발원 내용을 기록한 화기가 남아있다. 또한 불화의 뒷면에도 후대에 괘불을 보수하면서 기록한 화기가 남아 있어 당시 괘불 제작의 실태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진본은 현재 흥국사 경내에 있는 의승수군 유물전시관 내의 괘불함에 보관되어 있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 1
- 예배를 드리는 데 쓰였다. -> 예배를 드리는 데 쓰인 대형불화이다.
- 이 불화는 1759년에 비현과 12인의 승려화가가 함께 조성하였다. 비현은 18세기 후반 전라도에서 활동하였으며, 17세기 최고의 대가로 꼽히는 의겸의 계보를 잇는 승려화가이다.-> 이 불화는 1759년에 비현스님과 12인의 승려화가가 함께 조성하였다. 비현스님은 18세기 후반 전라도에서 활동하였으며, 17세기 최고의 대가로 꼽히는 의겸스님의 계보를 잇는 승려화가이다.
- 분야별 자문위원 2
- 비단 바탕에 채색으로 그려진 이 그림은 기나긴 수행으로 무궁무진한 공덕을 쌓고 부처가 된 노사나불을 묘사한 불화이다. 사찰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거행할 때 야외 괘불대에 걸어두고 예배를 올리는 용도로 제작된 대형불화인 괘불은 1622년 죽림사 괘불을 시작으로 20세기 까지 100여점이 조성되어 사찰에 봉안되어 있다.
- <여수 흥국사 노사나불 괘불도>는 1759년 금어(金魚) 비현이 수화승이 되어 12명의 승려화가와 함께 조성한 작품이다. 많은 작품에서 조선후기 최고의 화승으로 손꼽히는 의겸과 공동제작에 임했던 비현은 전라도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색채가 선명하고 장식성이 돋보이는 스승의 특징을 그의 작품에 잘 소화해 나타내고 있다.
- 노사나불은 두 손을 어깨까지 들어 올린 설법인의 형태를 취하고 연꽃을 밟고 서있는 모습으로 화면을 꽉 채운 독존형식으로 묘사되어 있다. 화면상부에 그려진 전각의 처마는 노사나불이 천상의 천궁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의미하는 모티프이다.
- 화면 하단 중앙에는 괘불의 조성시기와 ~남아 있다. 이에 따르면 이 작품은 흥국사 승려를 비롯하여 갑계(甲契)의 계원 등 승속(僧俗) 223명이 동참한 시주로 조성된 불화였으며 조성 목적은 스승과 부모의 영가천도 기원이었다.
2차 수정
이 괘불은 오랜 수행으로 무궁무진한 공덕을 쌓고 나타난 부처인 노사나불을 그린 불화이다. 괘불은 사찰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할 때 야외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데 쓰였다.
이 불화는 1759년 비현(丕賢)과 12인의 승려화가가 함께 조성하였다. 비현은 18세기 후반 전라도에서 활동하였으며, 17세기 최고의 대가로 꼽히는 의겸(義謙)의 계보를 잇는 승려화가이다.
그림 중앙에는 노사나불을 화면을 꽉 채워 단독으로 배치하였다. 연꽃대좌를 밟고 서서 어깨까지 두 손을 들고 양쪽으로 벌리고 있는 모습이다. 거대하고 화려한 광배를 갖췄으며, 머리에 불꽃 무늬 등으로 장식된 보관을 쓰고 있다. 위쪽에 그려진 전각의 처마는 노사나불이 설법하는 공간인 천궁을 나타내는 모티프이다.
하단 중앙에는 이 불화의 조성 시기와 봉안 장소, 시주자의 명단과 발원 내용을 기록한 화기가 남아있다. 이에 따르면 이 작품은 돌아가신 스승과 부모의 명복을 빌기 위해 승속(僧俗) 223명이 시주하여 조성되었다고 한다. 뒷면에도 후대에 괘불을 보수하면서 기록한 화기가 남아 있어 당시 괘불 제작의 실태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진본은 현재 흥국사 경내에 있는 의승수군 유물전시관 내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