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화현리 분청사기 가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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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국문

초고

조선 전기의 분청사기 가마터이다. 『세종실록』 「지리지」를 보면 “포천현에 자기소가 현 동쪽의 봉소리에 있으며, 품질은 하품이다”라고 하는 기록이 있는데, 이곳이 화현 요지로 보인다. 규모는 약 1,695㎡(512.74평) 정도라는 것이 운악산 자연휴양림 조성에 따른 지표조사와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되었다. 반지하식이며 오름식인 가마터 4곳이 조성되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출토 자기는 대부분 분청사기와 문양이 없는 회청사기이며, 백자가 소량 출토되었다. 사발과 접시가 가장 많고 종지, 잔, 병 등이 섞여 있었다. 백자의 제작과 각종 자기에 나타나는 양식적 특징을 살펴보면, 경기도 광주 도수리 6호와 변천리 17호 가마터와 상통하고 있어, 이 요의 운영 시기는 1420~1440년대로 추정된다.

수정

조선 전기에 분청사기를 굽던 가마 터[요지]다. 1420~1440년대에 운영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발굴조사 결과 반지하식과 오름식* 가마 터 4곳이 확인되었다.

출토 자기는 대부분 분청사기와 문양이 없는 회청사기이며, 백자가 소량 출토되었다. 사발과 접시가 가장 많고 종지, 잔, 병 등이 섞여 있었다. 이곳에서 발견된 자기의 양식과 특징은 경기도 광주 도수리 6호와 변천리 17호 가마터 자기와 유사한 점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