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현포보 수로 및 중건불망비 (개별)
2021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1736년 김원보가 가뭄과 홍수로 고통을 받던 동계면 현포리 주민들을 위해서 만든 약 2.6km의 수로이다. 김원보와 마을 주민들이 협동하여 쌓은 이 수로로 인하여 주변에 드넓은 옥토가 생겨나고, 마을 주민들의 생활도 윤택해졌다고 한다.
이에 마을 주민들은 1792년에 자신들을 도와준 김원보의 은혜에 깊이 감사하는 마음에서 수로 암벽 위에 불망비를 세웠고, 조정에서는 김원보의 공을 인정하여 가선대부 공조참판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수정 국문
초고
불망비는 어떠한 인물의 시혜(施惠)를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기록하여 세워두는 비이다. 이곳에 세워진 중건불망비는 1736년(영조 12) 가뭄과 홍수로 고통 받던 현포리 주민들을 위해서 현포 일대에 보와 수로를 조성한 김원보의 은덕을 기리는 시혜비로, 1792년(정조 16)에 건립되었다.
불망비는 높이 120cm, 너비 45cm, 두께 18cm이며, 화강암 비신(碑身)을 기단 위에 세웠다. 비석의 앞면에는 ‘제언사 당상 김공언립 창보 불망비(堤堰司堂上金公彦立創洑不忘碑), 증가선대부 공조 참판 김공원보 중축 불망비(贈嘉善大夫工曹參判金公元寶重築不忘碑), 김공세곤 중축 불망비(金公世棍重築不忘碑)’라고 쓰여 있고, 뒷면에는 ‘임자 삼월 현포보 중건(壬子三月玄圃洑重建)’이라고 쓰여 있다.
불망비의 내용을 해석해보면, 앞면은 “제언사1)의 당상관 김언립이 처음 보를 세운 것을 기리는 불망비, 증가선대부 공조 참판 김원보가 보를 중축하였음을 기리는 불망비, 또 김세곤이 보를 중축한 것을 기리는 불망비”이다. 또한, 뒷면에는“1912년 3월에 현포보를 중건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것으로 현포보의 창건과 중축에 세 사람이 관련되어 있으며 이후에 증축이 또 한 번 이루어진 사실을 알 수 있다.
1차 수정
불망비는 어떤 인물의 은혜를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기록하여 세워두는 비이다. 이곳에 세워진 중건불망비는 영조 12년(1736) 가뭄과 홍수로 고통 받던 주민들을 위해서 현포 일대에 보와 수로를 조성한 김원보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정조 16년(1792)에 건립되었다.
불망비는 화강암 비석을 기단 위에 세운 형태이며, 높이 120cm, 너비 45cm, 두께 18cm이다. 비석의 앞면에는 ‘제언사 당상 김공언립 창보 불망비(堤堰司堂上金公彦立創洑不忘碑), 증가선대부 공조 참판 김공원보 중축 불망비(贈嘉善大夫工曹參判金公元寶重築不忘碑), 김공세곤 중축 불망비(金公世棍重築不忘碑)’라고 쓰여 있고, 뒷면에는 ‘임자 삼월 현포보 중건(壬子三月玄圃洑重建)’이라고 쓰여 있다.
불망비의 내용을 해석해보면, 앞면은 “제언사*의 당상관 김언립이 처음 보를 세운 것을 기리는 불망비, 증가선대부 공조 참판 김원보가 보를 중축하였음을 기리는 불망비, 또 김세곤이 보를 중축한 것을 기리는 불망비”이다. 또한, 뒷면에는 “1912년 3월에 현포보를 중건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것으로 현포보의 창건과 중축에 세 사람이 관련되어 있으며 이후에 증축이 또 한 번 이루어진 사실을 알 수 있다.
- 제언사(堤堰司) : 조선 시대에 각 도의 제언 수리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 1
- 기록하여 세워두는 비이다 → 기록하여 세우는 비이다
- 종합안내판에 제기한 의문점 참조.
- 분야별 자문위원 2
- 불망비는 화강암 비석을 기단 위에 세운 형태이며, 높이 120cm, 너비 45cm, 두께 18cm 이다. 비석의 앞면에는 '제언사 당상 김공언립 창보 불망비(堤堰司堂上金公彦立創決不忘碑), 증가선대부 공조 참판 김공원보 중축 불망비(嘉善大夫工曹參判金公元寶重築不忘碑), 김공 세곤 중축 불망비(金公世棍重築不忘碑)'라고 쓰여 있고, 뒷면에는 '임자 삼월 현포보 중건(壬 子三月女圓狀重建)'이라고 쓰여 있다.
-> 불망비는 화강암 비석을 기단 위에 세운 형태이며, 높이 120cm, 너비 45cm, 두께 18cm이다. 비석의 앞면에는 보를 처음 만들고 증축에 관여했 던 김언립, 김원보, 김세곤 등을 기리는 비문이 있다. '제언사 당상 김공언립 창보 불망비(堤 | 堰司堂上金公彦立創決不忘碑), 증가선대부 공조 참판 김공원보 중축 불망비(贈嘉善大夫工曹 參判金公元寶重築不忘碑), 김공세곤 중축 불망비(金公世棍重築不忘碑)'라고 쓰여 있다. 뒷면 에는 1912년 중건 사실을 기록하여 '임자 삼월 현포보 중건(壬子三月玄圓狀重建)'이라고 쓰여 있다.
- 불망비는 화강암 비석을 기단 위에 세운 형태이며, 높이 120cm, 너비 45cm, 두께 18cm 이다. 비석의 앞면에는 '제언사 당상 김공언립 창보 불망비(堤堰司堂上金公彦立創決不忘碑), 증가선대부 공조 참판 김공원보 중축 불망비(嘉善大夫工曹參判金公元寶重築不忘碑), 김공 세곤 중축 불망비(金公世棍重築不忘碑)'라고 쓰여 있고, 뒷면에는 '임자 삼월 현포보 중건(壬 子三月女圓狀重建)'이라고 쓰여 있다.
-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김원보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정오 16년에 건립되었다’에서 ‘건립되었다’가 피동형이어서 어색함. 능동형으로 바꾸는 것이 바람직해 보임.
2차 수정
불망비는 어떤 인물의 은혜를 후세 사람들이 잊지 않도록 기록하여 세우는 비이다. 이곳에 세워진 중건불망비는 영조 12년(1736) 가뭄과 홍수로 고통 받던 주민들을 위해서 현포 일대에 보와 수로를 조성한 김원보의 은덕을 기리기 위해 정조 16년(1792)에 건립되었다.
불망비는 화강암 비석을 기단 위에 세운 형태이며, 높이 120cm, 너비 45cm, 두께 18cm이다. 비석의 앞면에는 ‘제언사 당상 김공언립 창보 불망비(堤堰司堂上金公彦立創洑不忘碑), 증가선대부 공조 참판 김공원보 중축 불망비(贈嘉善大夫工曹參判金公元寶重築不忘碑), 김공세곤 중축 불망비(金公世棍重築不忘碑)’라고 쓰여 있고, 뒷면에는 ‘임자 삼월 현포보 중건(壬子三月玄圃洑重建)’이라고 쓰여 있다.
불망비의 내용을 해석해보면, 앞면은 “제언사*의 당상관 김언립이 처음 보를 세운 것을 기리는 불망비, 증가선대부 공조 참판 김원보가 보를 중축하였음을 기리는 불망비, 또 김세곤이 보를 중축한 것을 기리는 불망비”이다. 또한, 뒷면에는 “1912년 3월에 현포보를 중건하였다”고 되어 있다. 이것으로 현포보의 창건과 중축에 세 사람이 관련되어 있으며 이후에 증축이 또 한 번 이루어진 사실을 알 수 있다.
- 제언사(堤堰司) : 조선 시대에 각 도의 제언 수리에 관한 사무를 맡아보던 관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