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함양 정여창 묘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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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이 묘역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무덤이 있는 곳이다.

정여창은 1483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었고 1486년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문하에서 학문을 하였고 성리학을 깊이 탐구하였다. 1498년 신진 사림들이 무오사화(戊午士禍)로 화을 입게 되었을 때에 종성(鍾城)으로 유배되었다. 1504년에 사망한 이후 다시 한번 사림들이 갑자사화(甲子士禍)로 화를 입게 되었는데, 연산군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했었다는 이유로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다. 이후 1517년에 우의정으로 증직되었고, 1610년에는 문묘에 모셔지게 되었다.

묘역 내에는 정여창의 묘와 그의 부인인 정경부인 완산이씨의 묘가 일렬로 자리 잡고 있다. 묘 앞에 있는 신도비는 그에게 사숙했던 정온(鄭蘊, 1569~1641)이 지은 것으로 1689년에 건립되었다. 신도비와 함께 문인석, 망주석, 석양 등의 석물이 봉분 앞에 세워져 있다. 또한 근래에 세운 묘비 1기도 있다.

이 묘역은 묘의 형태와 묘역 내의 각종 석물들을 통해 조선 전기 사대부의 무덤 양식을 잘 알 수 있는 중요한 문화재이다.

1차 수정

조선 전기의 문신인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묘소이다.

정여창은 1486년 과거에 급제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제자로 성리학을 깊이 탐구하였으며, 1498년 무오사화로 신진 사림들이 화를 입게 되었을 때에 함경북도 종성으로 유배되었다. 사망 직후인 1504년에 다시 한번 사림들이 갑자사화로 화를 입게 되었는데, 연산군(1494~1506 재위)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했었다는 이유로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다. 이후 1517년에 우의정으로 증직되었고, 1610년에는 문묘에 모셔지게 되었다.

묘역 내에는 정여창의 묘와 그의 부인인 정경부인 완산이씨의 묘가 앞뒤로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봉분 앞에 있는 신도비는 정여창의 제자인 정온(鄭蘊, 1569~1641)이 비문을 지었고 1689년에 건립되었다. 이밖에도 문인석, 망주석, 석양 등의 석물이 봉분 앞에 세워져 있으며,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세워진 묘비는 근래에 새로 세운 것이다. 묘의 형태와 각종 석물들을 통해 조선 전기 사대부의 무덤 양식을 잘 알 수 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신진 사림들이 화를 입게 되었을 때에 > 신진 사림들이 화를 입을 때
      • 수정이유: 문장 명료화.
    • 사망 직후인 1504년에 다시 한번 사림들이 갑자사화로 화를 입게 되었는데, 연산군(1494~1506 재위)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했었다는 이유로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다. → 사망 직후인 1504년에 갑자사화가 일어났을 때 다시 부관참시당했다. (수정 문안 예시)
      • 수정이유: 정여창이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했었다는 이유로 부관참시당했다는 사실은 원고의 근거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으며, 다른 자료에서도 바로 확인되지 않음. 정확한 사실을 확인할 필요 있음.
    • 정여창의 제자인 정온(鄭蘊, 1569~1641)이 → 후대 인물인 정온(鄭蘊, 1569~1641)이
      • 수정이유: 정여창과 정온은 시대가 달라 직접 사제관계가 될 수 없음.

2차 수정

조선 전기의 문신인 정여창(鄭汝昌, 1450~1504)의 묘소이다.

정여창은 1486년 과거에 급제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김종직(金宗直, 1431~1492)의 제자로 성리학을 깊이 탐구하였으며, 1498년 무오사화로 신진 사림들이 화를 입었을 때 함경북도 종성으로 유배되었다. 사망 직후인 1504년에 다시 한번 사림들이 갑자사화로 화를 입었는데, 연산군(1494~1506 재위)의 어머니인 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했었다는 이유로 부관참시(剖棺斬屍)를 당하였다. 이후 1517년에 우의정으로 증직되었고, 1610년에는 문묘에 모셔지게 되었다.

묘역 내에는 정여창의 묘와 그의 부인인 정경부인 완산이씨의 묘가 앞뒤로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봉분 앞에 있는 신도비는 정온(鄭蘊, 1569~1641)이 비문을 지었고 1689년에 건립되었다. 이밖에도 문인석, 망주석, 석양 등의 석물이 봉분 앞에 세워져 있으며, 거북 모양의 받침돌 위에 세워진 묘비는 근래에 새로 세운 것이다. 묘의 형태와 각종 석물들을 통해 조선 전기 사대부의 무덤 양식을 잘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