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함양 영원사 승탑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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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영원사의 5기 부도들은 모두 주변에서 산출되는 화강암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각각 부도의 주인공을 밝혀주는 탑호를 탑신석에 새겨두고 있다.

좌측으로 첫 번째 부도는 탑신석 중앙에 장방형으로 얇게 파낸 후 영암당탑이라는 탑호를 음각하고, 두 번째 부도는 탑신석에 설파당탑이라고 새겨져 있다. 세 번째 부도는 중봉당탑이라는 탑호가 탑신석에 음각되어 있으며, 네 번째 부도는 조선시대 전형적인 석종형 부도 양식으로 청계당탑이라고 새겨 있다. 다섯 번째 부도는 탑신에 벽허당탑이라는 탑호를 새긴 석종형 부도이다.

5기의 부도는 거의 횡렬로 건립되어 있고 그 중에 설파당탑은 규모가 가장 크며, 치석도 나름대로 정교한 편으로 설파당탑의 건립 시기가 가장 앞서는 것으로 추정된다.

설파당탑의 주인공인 설파상언 대사는 1707년에 출생하여 1791년에 입적한 분으로 함양군 서상면 상남리에 소재한 영각사를 창건하고 화엄경판을 새긴 분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머지 4기의 부도 주인공들은 그 생몰연대나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수정 국문

초고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덕망 높은 스님이 입적하고 나면 제자와 신도들이 스님을 기려 승탑과 탑비를 세웠으며, 탑비에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비문을 새겼다.

영원사에 있는 5기의 승탑은 모두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에서부터 영암당탑(靈巖堂塔), 설파당탑(雪坡堂塔), 중봉당탑(中峯堂塔), 청계당탑(淸溪堂塔), 벽허당탑(碧虛堂塔)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지붕돌을 갖추고 있는 설파당탑이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설파당탑의 주인공인 설파 상언(雪坡 尙彦, 1707~1791)은 19세에 출가한 후 화엄학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조선 후기의 승려이다. 해인사에 소장된 『화엄경』의 여러 판본을 비교하여 가장 표준이 될만한 정본(定本) 80권을 만들었고, 이를 낙안(지금의 순천) 징광사에 봉안하였다. 1770년 징광사에 불이 나서 화엄경을 새긴 목판이 모두 타버린 적이 있는데, 상언이 경전의 내용을 모두 외워서 다시 판각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머지 네 승탑의 주인공들에 대해서는 그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승탑는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 ‘~사리를 모셔놓은 조형물이다. 부처의 사리를 모신 불탑과 같은 의미에서 승탑이라고도 한다.’
    • ‘탑비에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비문을 새겼다.’ → ‘~ 글로 지어 새겼다.’
    • ‘영원사에 있는 5기의 승탑은 모두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되었다.’ *승탑 주인공이 모두 조선후기 인물임.
    • 각 승탑의 양식 설명 보완 필요 (문화재청 정보 참조)
  2. 분야별 자문위원 2
    •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승탑은 승려의 무덤을 상징하며, 그의 유골과 사리를 모셔두는 곳이다. 다르게는 부도라 부른다.
    • 영원사에 있는 5기의 승탑은 모두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왼쪽에서부터 영암당탑(靈巖堂塔), 설파당탑(雪坡堂塔), 중봉당탑(中峯堂塔), 청계당탑(淸溪堂塔), 벽허당탑(碧虛堂塔)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지붕돌을 갖추고 있는 설파당탑이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영원사에 있는 5기의 승탑은 모두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종모양으로 생긴 석종형을 기본으로 하며 팔각의 기단부에 세우거나 지붕을 갖춘 것도 있다. 또한 몸돌이 공과 같이 구형을 이루는 것도 있다. 몸돌에는 영암당탑(靈巖堂塔), 설파당탑(雪坡堂塔), 중봉당탑(中峯堂塔), 청계당탑(淸溪堂塔), 벽허당탑(碧虛堂塔)이라는 탑 주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중에서도 설파당탑이 가장 크며 돌을 정교하게 다루어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덕망 높은 스님이 입적하고 나면 제자와 신도들이 스님을 기려 부도와 탑비를 세웠으며, 탑비에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비문을 새겼다. → ‘승탑’의 정의를 굳이 문화재 안내판에 명기할 필요가 있을까? 필요하다면 안내판 아래쪽에 주석과 같이 부연설명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함.
    • 영원사에 있는 5기의 승탑은 모두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 주어가 ‘함양 영원사 승탑군’이 되어야 함. 이 문단에서 승탑 현상과 관련된 내용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음. 문화재청 문화재정보에는 비교적 자세히 언급되어 있으므로, 이를 참고하여 개별 승탑의 크기, 형태를 간략히 언급할 필요가 있음. 승탑 중 중앙에 있는 중봉당탑은 원구형 승탑, 다른 승탑들은 모두 석종형 승탑임. 이 문단에서는 승탑들은 조선후기에 제작된 것이지만 상세한 제작시기가 다르며, 형태도 다양하다는 특징을 언급할 필요가 있음.
    • 설파당탑의 주인공인 설파 상언(雪坡 尙彦, 1707~1791)은 19세에 출가한 후 화엄학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조선 후기의 승려이다. 해인사에 소장된 『화엄경』의 여러 판본을 비교하여 가장 표준이 될만한 정본(定本) 80권을 만들었고, 이를 낙안(지금의 순천) 징광사에 봉안하였다. 1770년 징광사에 불이 나서 화엄경을 새긴 목판이 모두 타버린 적이 있는데, 상언이 경전의 내용을 모두 외워서 다시 판각할 수 있었다고 한다. → ‘5기 승탑 중 설파당탑의 주인공인 설파 상언 스님의 행적만이 알려져 있다.’라는 문장을 전제로 하며, 이후 설파 상언 스님에 대한 설명을 기록함. 이 문단은 기존 문안의 문구가 훨씬 축약적이고 알기 쉬우므로 기존 문안을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함.

2차 수정

승탑은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덕망 높은 스님이 입적하고 나면 제자와 신도들이 스님을 기려 승탑과 탑비를 세웠으며, 탑비에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영원사에 있는 5기의 승탑은 모두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종모양으로 생긴 석종형을 기본으로 하며 팔각의 기단부에 세우거나 지붕을 갖춘 것도 있다. 또한 몸돌이 공과 같이 구형을 이루는 것도 있다. 왼쪽에서부터 영암당탑(靈巖堂塔), 설파당탑(雪坡堂塔), 중봉당탑(中峯堂塔), 청계당탑(淸溪堂塔), 벽허당탑(碧虛堂塔)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다. 이 중 규모가 가장 크고 지붕돌을 갖추고 있는 설파당탑이 가장 이른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설파당탑의 주인공인 설파 상언(雪坡 尙彦, 1707~1791)은 19세에 출가한 후 화엄학 연구에 큰 업적을 남긴 조선 후기의 승려이다. 해인사에 소장된 『화엄경』의 여러 판본을 비교하여 가장 표준이 될만한 정본(定本) 80권을 만들었고, 이를 낙안(지금의 순천) 징광사에 봉안하였다. 1770년 징광사에 불이 나서 화엄경을 새긴 목판이 모두 타버린 적이 있는데, 상언이 경전의 내용을 모두 외워서 다시 판각할 수 있었다고 한다.

나머지 네 승탑의 주인공들에 대해서는 그 행적이 알려져 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