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함양 극락사지 석조여래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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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화강암으로 조성된 이 불상은 부근 밭에서 출토된 여래불 입상으로 옛 극락사지라고 추정되는 이곳에 옮겨 봉안된 것이다.
몸이 두 동강이 났고, 팔과 코는 없었는데 이를 새로 만들고 보수하여 극락사지와 연관된것으로 생각하여 이곳에 다시 세운 것이다.
불신과 대좌를 한 돌로 조성한 이 불상은 얼굴과 손 등에 약간의 손상이 있을 뿐 상태는 양호한 편이다. 불신에 비해 큰 얼굴, 좁은 어깨, 유난히 잘쑥한 허리, 몸에 밀착된 양팔, 하체가 눈에 띄게 긴 직립한 자세 등은 마치 원기둥과도 같은 인상을 준다 . 두 어깨를 감싼 얇은 불의의 옷주름은 U자형으로 촘촘하게 흘러내려 신라 불상을 연상시킨다.
이 불상이 안치된 극락사에 관해서는 『동국여지승람』에 "극락암은 백운산에 있었는데 이제는 없다"로 되어 있기 때문에 임진왜란때 폐사된 것으로 추측된다. 전체적으로 경직된 다리 부분의 표현이나 가라앉은 얼굴표정, 형식화된 옷 주름등에서 당대의 독립원각상의 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고려시대의 석불상으로 평가된다
수정 국문
초고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이다. 여래(如來)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이 불상은 1957년 인근의 밭에서 출토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지금 불상이 서 있는 곳은 임진왜란 때 폐사된 것으로 전해지는 극락사라는 사찰의 옛터로 추정된다.
발견 당시 몸은 두 동강이 나 있었고 코도 없었는데, 이를 새로 만들어서 보수하였다. 손목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손은 별도로 제작하여 끼워 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경직된 자세와 가슴부터 다리까지 촘촘하게 흘러내린 U자형의 옷주름 등 통일신라시대 불상의 특징을 계승하였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 1
-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이다. -> 이 석조여래입상은 고려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분야별 자문위원 2
- 전체 높이 2.6m로서 대좌까지 하나의 돌로 만들어진 훤칠한 상으로 잘록한 허리와 물 흐르듯이 유려한 옷주름의 표현은 통일신라시대의 조각전통을 계승하고 있지만, 경직된 자세와 촘촘한 옷자락이 규칙적으로 표현된 점 등은 고려 전기 조각의 특징으로 생각된다
2차 수정
이 석조여래입상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불상이다. 여래(如來)는 ‘진리로부터 진리를 따라서 온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처의 덕성을 표현하는 열 가지 이름 중 하나이다.
이 불상은 1957년 인근의 밭에서 출토되어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지금 불상이 서 있는 곳은 임진왜란 때 폐사된 것으로 전해지는 극락사라는 사찰의 옛터로 추정된다.
발견 당시 몸은 두 동강이 나 있었고 코도 없었는데, 이를 새로 만들어서 보수하였다. 손목 부분에 구멍이 뚫려 있는 것으로 보아, 손은 별도로 제작하여 끼워 넣었던 것으로 보인다. 잘록한 허리와 물 흐르듯이 유려한 옷주름의 표현은 통일신라시대의 조각전통을 계승한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