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청주 석화리 목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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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이 성은 목책을 연결하여 만든 성으로 백제 사비성 시대인 7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목책열 1기와 그 내부에 있는 주거지 5기, 원형의 저장공 18기, 물을 저장하는 집수장 1기, 세로로 판 구덩이인 수혈유구 16기 등의 유적을 조사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저장공과 목책열이 중심을 이룬다는 점에서 저장과 관련된 시설을 방어하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유적으로 판단된다. 또한 저장공에서 탄화된 식물유체(도토리 등)가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어 당시 도토리의 식용과 저장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토기, 기와 외에도 다량의 철제 무기류의 출토양상으로 보아 백제 사비성 시대에 금강을 지키는 중요한 거점으로써의 기능을 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1차 수정
이 성은 목책을 연결하여 만든 성으로 백제 사비시대인 7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목책열 1기와 그 내부에 있는 주거지 5기, 원형의 저장공 18기, 물을 저장하는 집수장 1기, 세로로 판 구덩이인 수혈유구 16기 등의 유적을 조사하였다.
발굴조사 결과 저장공과 목책열이 중심을 이룬다는 점에서 저장 시설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적으로 판단된다. 또한 저장공에서 도토리 등의 탄화된 식물유체가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어, 당시 도토리의 식용과 저장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토기, 기와 외에도 다량의 철제 무기류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사비시대에 금강을 지키는 중요한 거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1
- 수혈유구 16기 등의 유적을 조사하였다. → 수혈유구 16기 등이 확인되었다.
- 목책열이 중심을 이룬다는 점에서 → 목책열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사비시대에 금강을 지키는 중요한 거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출토되고 있어 군사적 성격의 거점이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 분야별 자문위원2
- 이 성은 나무말뚝을 박아 연결하여 성벽을 만든 목책성이다. 백제가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겨 백제 멸망 때까지인 사비시대(538~660)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 2016년 발굴조사 결과 목책열 1기와 그 내부에 있는 주거지 5기, 원형의 저장구덩이 18기, 물을 저장하는 집수지 1기, 땅을 판 구덩이인 수혈유구 16기 등의 유구를 확인하였다.
- 저장구덩이와 목책열이 중심을 이룬다는 점에서 저장 시설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적으로 판단하고 있다. 저장구덩이에서 도토리 등의 탄화된 식물유체가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어, 당시 도토리의 식용과 저장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토기, 기와뿐만 아니라 쇠로 만든 도끼 등 철제 무기류가 많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사비시대에 금강으로 이어지는 미호천을 지키는 중요한 거점으로 추정하고 있다.
-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수정사항 없음.
2차 수정
이 성은 나무 말뚝을 박아 연결하여 성벽을 만든 목책성이다. 백제가 사비(지금의 부여)에 도읍을 두었던 사비시대(538~660)에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2016년 발굴조사 결과 목책열 1기와 그 내부에 있는 주거지 5기, 원형의 저장구덩이 18기, 물을 저장하는 집수지 1기, 땅을 판 구덩이인 수혈유구 16기 등의 유구를 확인하였다.
저장구덩이와 목책열이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으로 보아, 저장 시설을 방어하기 위해 만들어진 유적으로 판단된다. 저장구덩이에서 도토리 등의 탄화된 식물유체가 다량으로 출토되고 있어, 당시 도토리의 식용과 저장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또한 토기, 기와뿐만 아니라 쇠로 만든 도끼 등의 철제 무기류도 많이 출토되고 있어, 군사적 성격의 거점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