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창원 진해 망주석
2022
초안
망주석은 원래 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으로, 묘 주인의 사회 신분을 나타내고 무덤을 지키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진해 망주석 2기는 19세기 후반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어느 묘에 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망주석과 한 쌍을 이루던 것으로 여겨지는 다른 1기는 현재 진해박물관 앞에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두 망주석은 1910년 무렵 일본 해군이 군항을 건설하던 중 현동의 산 중턱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당시 진해 방비대 사령관 미야오카(宮岡直記) 소장이 이를 수습해 하나는 일본 해군 부대에 두고, 다른 하나는 해군 제1함대 사령장관 가미무라 히코노죠(上村彦之丞)에게 주었다. 가미무라는 망주석을 일본 가고시마현으로 반출하여, 정한론(征韓論)의 적극적 지지자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의 무덤 앞에 세워두었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망주석은 일제에 의해 훼손되었고, 현재 망주석 기둥에는 한자로 ‘조선석 명치43년 8월 29일(朝鮮石 明治四十三年八月二九日)’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날은 일본의 침략으로 대한제국이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일을 가리키며, 한일합병을 기념하고자 한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성이 나타난다.
진해 망주석에 대한 이야기가 알려진 후 망주석의 귀환을 위한 노력이 다각도로 이루어졌다. 특히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일본으로 납치된 도공 심당길의 후손이자 도예가인 심수관(1926~2019) 선생의 가문을 중심으로, 한국·일본의 여러 관련 기관의 협조가 이루어졌으며, 한·일 우호와 교류를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침내 2009년 12월 24일 망주석이 진해로 돌아오게 되었다.
최종
망주석은 무덤 앞에 양쪽으로 나란히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을 말한다, 이것은 묘 주인의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고 무덤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진해 망주석 2기는 19세기 후반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 누구의 묘에 있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망주석과 한 쌍을 이루던 것으로 여겨지는 다른 1기는 현재 진해박물관 앞에 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두 망주석은 1910년 무렵 일본 해군이 군항을 건설하던 중 현동의 산 중턱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당시 진해 방비대 사령관 미야오카(宮岡直記) 소장이 이를 수습하여 하나는 일본 해군 부대에 두고, 다른 하나는 해군 제1함대 사령장관 가미무라 히코노죠(上村彦之丞)에게 주었다. 가미무라는 망주석을 일본 가고시마현으로 반출하여, 정한론(征韓論)의 적극적 지지자인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의 무덤 앞에 세워두었다. 이와 같은 과정에서 망주석은 일제에 의해 훼손되었다. 현재 망주석 기둥에는 한자로 ‘조선석 명치43년 8월 29일(朝鮮石 明治四十三年八月二九日)’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이날은 일본의 침략으로 대한제국이 국권을 상실한 경술국치일로 한일강제병합을 기념하고자 한 일본 제국주의의 폭력성이 나타난다.
진해 망주석에 대한 이야기가 알려진 후 망주석의 귀환을 위한 노력이 다각도로 이루어졌다. 특히 임진왜란 때 조선에서 일본으로 납치된 도공 심당길의 후손이자 도예가인 심수관 선생의 가문을 중심으로 많은 노력이 있었다. 한국·일본의 여러 관련 기관의 협조가 이루어졌으며, 망주석은 양국의 우호와 교류를 증진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침내 2009년 12월 24일 진해로 돌아오게 되었다.
영문
Stone Pillars in Jinhae, Changwon
Stone pillars were customarily installed in pairs in front of a tomb to indicate the social status of the tomb’s owner. The stone pillars of Jinhae, exhibited separately outside the Jinhae Municipal Museum and the Former Jinhae Naval Port Hospital, are thought to have been made as a pair, but their original location is unknown. They are presumed to date to the second half of the 19th century.
It is said that the two pillars were discovered on a mountain slope in Hyeon-dong circa 1910 during the construction of a Japanese military port. They were collected by the garrison commander, who installed one in the garrison and gave the other to Kamimura Hikonojo (1849-1916), the commander of the first naval fleet. Kamimura later took the pillar to Japan, where he installed it at the tomb of the samurai and politician Saigo Takamori (1828-1877). Deplorably, the pillar was inscribed at some point with the date of August 29, 1910, which is the day that Korea was formally annexed as a colony by Japan.
When the story of this pillar came to light, many efforts were made to return it to Korea. In particular, the family of Sim Su-gwan (1926-2019), who was a descendant of Sim Dang-gil, a potter kidnapped to Japan during the Japanese invasions of 1592-1598, played a pivotal role in securing the pillar’s return. Following an agreement between several institutions in Korea and Japan, the pillar was returned to Jinhae on December 24, 2009, in the spirit of promoting friendship and cooperation between the two natio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