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진주 평거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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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본 고분군은 평거동 석갑산(石岬山)의 남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고분군이다. 전체 6,645㎡의 면적에 6기의 고분이 위치해 있다. 고분군의 구조는 기단과 면석 및 갑석 위에 봉토를 올렸는데 마치 석탑과 같은 느낌을 주고 있다. 면석에는 보기 드물게 시기와 무덤 주인공의 이름이 새겨져 있어 정확한 조성시기와 주인공을 알 수 있다. 6기 모두 정씨(丁氏) 집안의 무덤으로 고려시대 1079년 〔제1호분〕부터 1229년 〔제6호분〕까지 150년 간에 걸쳐 만들어 졌다.

고분군의 주인공 〔제1호분 대상(大相)공 정열(丁悅), 제2호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정윤화(丁允撶),제3호분 대장(大將)공 정윤종(丁允宗), 제4호분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정언진(丁彦眞), 제5호분 대상(大相)공 정변(丁拚), 제6호분 시중(侍中)공 정양(丁良)〕중에는 제1호분의 정열(丁悅), 제4호분의 정언진(丁彦眞)과 같이 고려사의 기록에 보이는 인물도 있으며, 제5호분과 같이 부부를 합장한 고분도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석갑산(石岬山) 남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고분군이다.

무덤은 긴 사각형 모양의 봉분 아래에 사각형으로 호석을 두른 형태로 고려시대 무덤의 양식적 특징을 그대로 보여준다.

봉분 앞쪽 면석에 새겨진 내용에 따르면, 6기는 모두 정씨(丁氏) 가문의 무덤이며, 고려시대인 1079년부터 1229년 사이에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각 봉분에 묻힌 사람은 다음과 같다. 1호분은 정열(丁悅), 2호분은 정윤화(丁允撶), 3호분은 정윤종(丁允宗), 4호분은 정언진(丁彦眞), 5호분은 정변(丁拚) 부부, 6호분은 정양(丁良)이다.

1호분의 정열(丁悅)과 4호분의 정언진(丁彦眞)은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는 인물이며, 5호분은 부부합장묘로 다른 무덤에 비해 더 화려하게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

  • 진주 평거동 고려 분묘군 재검토, 주영민, 경남연구 제10집, 2014. → 안내판 내용 거의 전체 부정... 안내판 내용 작성 기준에 대한 논의 필요
  • 진주 평거동 고려 고분군 연구, 신천식 저, 경인문화사, 2002. - 연구원 소장도서 (911.88 신83진) :확인 후 개별 봉분 설명 보완 예정

1차 수정

석갑산 남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는 6기의 고분은 고려시대인 1079년부터 1229년까지 150년에 걸쳐 조성되었다. 고분의 보호석과 묘비에 무덤 주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모두 정씨 가문의 무덤이다.

무덤은 긴 사각형 모양의 봉분 아래에 사각형으로 호석을 두른 형태로 고려시대 무덤의 양식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자문의견

  1. 사적, 매장 위원1
    • 내용이 너무 간략함. 무덤 주인공에 대한 설명, 고분이 형식학적 특징과 문화재적 가치 등 보완 필요.
  2. 사적, 매장 위원2
    • 기존 문안에 있는 “고분군의 주인공 〔제1호분 대상(大相)공 정열(丁悅), 제2호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정윤화(丁允撶),제3호분 대장(大將)공 정윤종(丁允宗), 제4호분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 정언진(丁彦眞), 제5호분 대상(大相)공 정변(丁拚), 제6호분 시중(侍中)공”이라는 내용을 삽입하여 자세하게 설명할 필요 있음. 현재의 문안은 너무 소략함.

2차 수정

석갑산 남쪽 경사면에 자리하고 있는 6기의 고분은 고려시대인 1079년부터 1229년까지 150년에 걸쳐 조성되었다. 고분의 보호석과 묘비에 무덤 주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으며, 모두 정씨 가문의 무덤이다.

1호분은 정열(丁悅), 2호분은 정윤화(丁允撶), 3호분은 정윤종(丁允宗), 4호분은 정언진(丁彦眞), 5호분은 정변(丁拚) 부부, 6호분은 정양(丁良)이다.

무덤은 긴 사각형 모양의 봉분 아래에 사각형으로 호석을 두른 형태로 고려시대 무덤의 양식적인 특징을 잘 보여준다. 특히 5호분은 부부합장묘로 다른 무덤에 비해 더 화려하게 조성된 것이 특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