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지촌제청
2021년 국문집필
2017 국문
이 건물은 의성김씨 지촌 김방걸(金邦杰)의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 조선 숙종(肅宗) 38년(1712)에 지어졌다. 지산서당(芝山書堂)의 규모가 협소하여 강학에 어려움이 있자 후학을 위한 강당으로 사용되어 왔으며 일명 정곡강당(井谷講堂)이라 한다.
대청(大廳)을 제청(祭廳)으로 하고 그 곁에 ‘二’자형 기와집이 주사채로 보존되어 있다.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제청의 규모로는 큰 편이다. 주사(廚舍) 안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며, 주사 아랫채는 정면 4칸, 측면 1칸의 맞배집이다.
건실한 전통가구 수법을 보이고 있으며, 주사는 자귀를 사용하여 나무를 다듬는 등 옛 분위기가 그대로 남아 있다.
2021 국문
초안
이 건물은 안동 지례마을의 의성김씨 입향조인 지촌 김방걸(芝村 金邦傑, 1623~1695)의 제사를 모시는 곳으로, 조선 숙종(肅宗) 38년(1712)에 지어졌다.
김방걸은 조선 현종(顯宗) 1년(1660) 과거에 급제해 여러 벼슬을 지냈으며, 벼슬에서 물러난 후 고향으로 돌아와 서당을 세우고 후학 양성에 힘썼다.
제청 건물은 중앙에 창호를 설치해 마루방처럼 꾸민 대청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배치하였으며, 오른쪽 온돌방 뒤에 벽장을 설치하였다. 건물에는 ‘정곡강당(井谷講堂)’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 건물이 후학 양성을 위한 강당으로 사용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제청 아래쪽에는 두 채의 건물이 마주하고 있는데, 이곳은 제사를 준비하던 공간인 주사(廚舍)이다.
원래 안동군 임동면 지례리에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인해 1988년 마을 뒷산이었던 지금의 자리에 옮겨졌다. 오른편에 위치한 지촌종택(芝村宗宅,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187호)·지산서당(芝山書堂,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9호)과 함께 ‘지례예술촌’을 구성하고 있다.
- 건물에는 ‘정곡강당(井谷講堂)’이라고 적힌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 건물이 후학 양성을 위한 강당으로 사용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 김방걸이 세운 ‘지산서당’이 현재 종택 오른쪽에 있는 지산서당과 같은 곳인지 알 수 없음. (현재의 지산서당은 1800년에 지었다고 되어 있음.) 따라서 ‘정곡강당’의 유래에 대해서도 지산서당과의 연관성을 최대한 배재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고 해당 문구 작성.
- 지촌제청 건물은 작은 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고, 마루와 온돌방이 있는 주사 안채는 숙박 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 2017년 5월 15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505호로 승격되었다.
1차 수정
지촌제청은 지례마을의 의성김씨 입향조인 지촌 김방걸(芝村 金邦傑, 1623~1695)의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 숙종 38년(1712)에 지어졌고,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김방걸은 현종 1년(1660)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왕의 언행이나 정치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한 언론기관인 사간원의 관직과 지금의 국립대학교 총장 격인 성균관 대사성 등 여러 관직을 지냈다. 김방걸이 분가하며 지례에 정착한 이후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마을을 이루고 살게 되었다.
제청은 제사를 위한 건물로는 규모가 큰 편이다. 중앙의 대청이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문을 달아 마루방처럼 꾸몄다. 대청 좌우에는 온돌방을 두었으며 오른쪽 온돌방 뒤에는 벽장을 설치하였다. 정면에 ‘정곡강당(井谷講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데, 이 건물이 후학 양성을 위한 강당으로 사용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제청 아래에 서로 마주하고 있는 두 채의 건물은 제사를 준비하던 공간인 주사(廚舍)이다.
현재 지촌제청 건물은 작은 도서관으로 운영되고 있고, 마루와 온돌방이 있는 주사 안채는 숙박 공간으로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