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완주 송광사 종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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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이 건물은 조선 세조 때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철종 8년(1857)에 다시 세웠다. 건물 평면이 십자(十字) 모양인데, 일반적으로 십자형 건물은 흔치 않으며 더욱이 종루로서는 이것이 국내에서 유일하다. 건물의 꾸밈 또한 평범치 않아, 특히 처마 장식이 비길 데 없이 화려하다. 종루 안에는 그보다 140년쯤 앞서 만든 범종을 가운데 두고, 그 둘레에 물고기형 나무조각과 북, 구름무늬 철판을 매달았다. 이것들은 불당(佛堂) 앞에 있어 불전사물(佛前四物)이라 한다. ‘불전사물’은 보통 아침, 저녁 예불 전에 올린다. 북은 땅 위에 사는 네 발 짐승을, 범종은 땅속 지옥에서 고통받는 모든 중생들을, 목어는 물속에 사는 생명체를, 운판은 창공을 나는 날개 달린 짐승을 위해 울리는 것이다. 이 각각의 울림을 듣고서 몸과 마음의 번뇌를 잊고 영원한 해탈의 마음을 내어 모든 중생이 자유와 한없는 평화와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발원한 것이다.

수정 국문

초고

범종각은 범종, 법고, 목어, 운판 등 불교 의식에서 사용하는 네 종류의 기구를 보관하는 곳으로, 대웅전 마당 서쪽에 서있는 송광사 종루는 2층 누각으로 되어 있어 ‘종루’라고 부른다.

이 건물은 조선 세조 때 처음 세워졌다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814년 혹은 1857년 제봉선사가 대웅전을 단층으로 고쳐지을 때 다시 세운 것으로 보인다.

건물의 평면은 종이 걸려 있는 중앙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각각 1칸씩 덧붙인 십자 모양이다. 십자형 평면은 내부 공간 및 지붕을 구성하는 것이 어려워 흔하게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며, 종루로는 이곳이 유일하다.

이 건물은 지붕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기둥 위에 짜 맞춰 댄 부재들인 공포(栱包)가 천장을 대신하고 있어 지붕이 특히 높고, 처마의 장식도 매우 화려하다. 지붕들이 모이는 용마루 교차점에는 호리병 모양의 장식을 얹었다.

각 층에는 열두 개의 기둥을 세웠으며, 2층 마루 주위에는 난간을 둘렀다.

중앙에 범종이 걸려 있는데, 현판이 걸려있는 북쪽에도 종 하나가 놓여있다. 아래에 있는 것이 본래 사용했던 종으로, 1716년 광주의 증심사에서 만들어졌고 1769년 보수했다는 기록이 종에 새겨져있다. 1980년까지 사용하다가 균열이 발생해 새로운 종으로 바꾸어 달면서 지금의 자리에 내려놓았다.

종루의 돌출부 서쪽에는 북, 남쪽에는 운판, 동쪽에는 목어가 각각 걸려있다. 이것들은 모두 1977년에 봉안된 것이다.

  • 1933년 <조선고적도보> 사진에는 현재와 같은 마루와 난간이 없는 상태이며, 홑처마로 되어 있다. 따라서 현재의 외형은 일제강점기 이후에 갖추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 법고는 ‘법을 전하는 북’이라는 뜻이다. 북소리를 들음으로써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들짐승도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고 여겨진다. 운판은 청동이나 철로 구름 모양을 만든 것이다. 운판을 쳐서 울리는 맑고 은은한 소리로 공중을 날아다니는 날짐승을 제도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목어는 나무를 깎아 물고기 모양으로 만들고 속을 파내어 두드리면 소리가 나도록 만들었다. 물 속 생명들에게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려는 뜻을 지닌다. 또한 물고기가 늘 눈을 뜨고 있는 것처럼, 수행하는 사람 역시 오직 정진에 힘써야 함을 상징한다.
  • 십자 모양의 평면은 내부 공간을 구성하기 까다롭고 지붕을 올리는 것도 복잡해 흔하게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창덕궁 부용정, 수원 방화수류정이 대표적인 예이다.

1차 수정

송광사 종루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 등 불교 의식에서 사용하는 네 종류의 기구를 보관하는 곳이다. 조선 세조 때 처음 세워졌다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9세기 중반에 다시 세운 것으로 보인다.

종이 걸려 있는 중앙을 중심으로 사면에 각각 1칸씩을 덧붙인 십자형 평면이다. 이러한 형태는 내부 공간 및 지붕을 구성하는 것이 어려워 흔하게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며,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종루로는 이곳이 유일하다. 지붕이 특히 높고, 처마의 장식도 매우 화려하다. 지붕들이 모이는 용마루 교차점에는 호리병 모양의 장식을 얹었다.

중앙에 범종이 걸려 있는데, 현판이 걸려 있는 북쪽에도 종 하나가 놓여있다. 아래에 있는 것이 본래 사용했던 종으로, 1716년 광주의 증심사에서 만들어졌고 1769년 보수했다는 기록이 종에 새겨져있다. 1980년까지 사용하다가 균열이 발생해 새로운 종으로 바꾸어 달면서 지금의 자리에 내려놓았다. 종루의 돌출부 서쪽에는 북, 남쪽에는 운판, 동쪽에는 목어가 각각 걸려있다. 이것들은 모두 1977년에 봉안된 것이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1
    • 1466년 처음 세워졌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고 다시 지어진 것이라는 설명 부가요망.
    • “네 종류의 기구” → “네 종류의 기물(器物)”
    • “종이 걸려 있는 중앙을 중심으로 사면에 각각 1칸씩을 덧붙인 십자형 평면이다. 이러한 형태는 내부 공간 및 지붕을 구성하는 것이 어려워 흔하게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며,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종루로는 이곳이 유일하다.”→ 종이 걸려 있는 중심에서 사면으로 각기 1칸씩 덧붙인 십자형 평면이다. 이러한 형태는 내부 공간 및 지붕을 구성하는 것이 어려워 흔하게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십자형평면의 종루이다.
  2. 분야별 자문위원2
    • 단락 구성 재배열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송광사 종루는 불교 의식에서 사용하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보관하는 곳이다.
    • 불전사물(佛前四物) 가운데 북은 땅 위에 사는 네 발 짐승을, 범종은 땅속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목어는 물속에 사는 생명체를, 운판은 창공을 나는 날개 달린 짐승을 위해 울린다. 울림을 듣은 중생들이 번뇌를 잊고 깨달음을 얻어 영원한 해탈의 세계로 나아가기를 발원한 것이다.

2차 수정

송광사 종루는 불교 의식에서 사용하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을 보관하는 곳이다. 조선 세조 때 처음 세워졌다고도 하나 확실하지 않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1814년 또는 1857년 송광사 중수 때 다시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종이 걸려 있는 중앙을 중심으로 사면에 각각 1칸씩을 덧붙인 십자형 평면이다. 이러한 형태는 내부 공간 및 지붕을 구성하는 것이 어려워 흔하게 볼 수 있는 구조가 아니며,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종루 중에서는 이곳이 유일하다. 지붕이 특히 높고, 처마의 장식도 매우 화려하다. 지붕이 모이는 용마루 교차점에는 호리병 모양의 장식을 얹었다.

중앙에 범종이 걸려 있는데, 현판이 걸려 있는 북쪽에도 종 하나가 놓여있다. 아래에 있는 것이 본래 사용했던 종으로, 1716년 광주의 증심사에서 만들어졌고 1769년에 보수했다는 기록이 종에 새겨져 있다. 1980년까지 사용하다가 균열이 발생해 새로운 종으로 바꾸어 달면서 지금의 자리에 내려놓았다. 현재 종루에 걸려있는 범종, 법고, 목어, 운판은 모두 1977년에 조성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