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완주 송광사 소조사천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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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이 사천왕상은 조선 인조 2년(1624)에 만든 것으로, 흙으로 빚은 사천왕상 중 가장 오래 되었으며 입체감이 뚜렷하고 전체적인 균형이 잘 잡혀 있다. 극히 사실적으로 표현하여 나무조각품에 뒤지지 않는 섬세함을 보여주고 있다. 불교에서는 세계의 중앙에 수미산이 있고 사천왕이 그 중턱의 동‧서‧남‧북 4주(四州)의 세계를 다스린다고 한다. 사천왕상은 원래는 귀족상이었으나 중앙아시아, 중국을 거쳐 오는 동안 무인상으로 변형되었다. 비파를 든 지국천왕(指國天王)은 동쪽 세계를 관할하며 인간의 기쁜 감정과 봄을 주관한다. 용과 여의주를 든 광목천왕(廣目天王)은 서쪽 세계를 관할하며 인간의 노여움과 가을을 주관한다. 지혜의 칼을 든 증장천왕(增長天王)은 남쪽 세계를 관할하며 인간의 사랑과 여름을 주관한다. 탑과 큰 깃대를 든 다문천왕(多聞天王)은 인간의 즐거움과 겨울을 주관한다.
수정 국문
초고
사천왕은 부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네 명의 신이다. 원래 고대 인도의 신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한 후 수미산 중턱에서 동서남북의 네 방향을 지키며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호하게 되었다.
사천왕상은 청정도량을 수호하는 호법신중으로서의 종교적 의미와 함께 병자호란 이후 외적의 침입에 대한 방어력을 강화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송광사 천왕문에 들어서면 대웅전을 향하여 오른쪽에는 칼을 쥔 상과 비파를 든 상이 자리하고 있고, 왼쪽에는 용과 구슬/여의주/보주를 쥔 상과 깃발의 일종인 당(幢)과 보탑을 든 상이 있다.
네 상 모두 머리에 화려한 관을 쓰고 있으며, 갑옷을 갖추어 입고 왼발 쪽에 악귀를 표현한 작은 조각상들이 있다.
왼쪽에 당을 들고 서 있는 상의 보관과 보탑에서 묵서명이 발견되어, 사천왕상이 1649년에 조성되었고 1786년에 보탑을 새로 만들어 안치한 사실이 확인되었다.
흙으로 제작한 사천왕상은 국내에 남아있는 예가 그다지 많지 않아 이곳의 사천왕상은 조선시대 사천왕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 분노상과 용맹상을 잘 표현하였다 -> 다른 설명들에 등장하는 표현들. 표정에 대한 언급을 해야 할 것인지 고민 필요.
- 1994년 10월 사천왕상 개채 보수 작업 중 용과 보주를 든 사천왕상을 제외한 3위(位)의 천왕상의 등 부분에서 법화경과 화엄경을 비롯한 경전류와 후령통 등의 복장유물이 발견되었다.
1차 수정
사천왕은 부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네 명의 신이다. 원래 고대 인도의 신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한 후 수미산 중턱에서 동서남북의 네 방향을 지키며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호하게 되었다.
송광사 천왕문에 모셔진 사천왕상은 1649년에 조성되었다. 청정도량을 수호하는 호법신중으로서의 종교적 의미와 함께, 병자호란 이후 외적의 침입에 대한 방어력을 강화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천왕문에 들어서면 대웅전을 향하여 오른쪽에는 칼을 쥔 지국천왕(持國天王)과 비파를 든 다문천왕(多聞天王)이 자리하고 있고, 왼쪽에는 용과 보주를 쥔 증장천왕(增長天王)과 깃발의 일종인 당(幢)과 보탑을 든 광목천왕(廣目天王)이 있다. 네 상 모두 머리에 화려한 관을 쓰고 있으며, 갑옷을 갖추어 입고 왼발 쪽에 악귀를 표현한 작은 조각상들이 있다.
흙으로 제작한 사천왕상은 국내에 남아 있는 예가 많지 않기 때문에, 송광사 사천왕상은 조선시대 사천왕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1
- 사천왕은 부처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네 명의 신이다. 원래 고대 인도의 신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한 후 수미산 중턱에서 동서남북의 네 방향을 지키며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을 수호하게 되었다. → 사천왕의 의미를 이와 같이 자세히 언급하기 보다는 ‘동, 서, 남, 북의 네 방위를 수호하는 신장상으로서, 조선시대에는 사찰 입구에 사천왕문을 세워 모시고 있다.’ 등 조선시대 사천왕상의 특징을 언급하는 것이 더 효율적일 듯함.
- 송광사 입구 사천왕문에 모셔져 있는 송광사 소조사천왕상은 조선시대 사천왕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서방광목천상 왼쪽 머리 뒤에 남겨진 조성기를 통해 1649년(인조 27)에 제작된 상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또한 서방광목천왕이 들고 있는 보탑 아래에는 1786년(정조 10) 새롭게 보탑을 만들어 안치하였다는 것이 기록되어 있다. 청정도량을 수호하는 호법신중으로서의 종교적 의미와 함께, 병자호란 이후 외적의 침입에 대한 방어력을 강화한다는 상징적 의미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 송광사 소조사천왕상은 송광사 대웅전 정면에 있는 천왕문 안에 봉안되어 있다. 문 안에 들어서면 대웅전을 향하여 오른쪽에 칼을 쥔 지국천왕과 비파를 든 다문천왕이 있고, 왼쪽에는 용과 보주를 쥔 증장천왕, 당과 보탑을 든 광목천왕이 있다. 네 상 모두 갑옷을 갖추어 입고 화려한 보관을 쓰고 있으며, 발 아래에는 악귀를 표한한 조각상들이 있다.
- 분야별 자문위원2
- 송광사 입구 천왕문에 모신 사천왕상은 동서남북의 네 방향을 지키며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을 수호하는 호법신중이다. 1994년 개체보수 중에 보탑을 든 광목천왕의 끈 뒷면에서 명문이 발견되었는데 인조 27년(1649)에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왼손에 얹은 보탑의 밑면에는 정조10년(1786)에 새로 만든 것이라는 중수기록이 보인다.
- 탑을 들고 있는 서방의 광목천왕외에 칼은 쥔 동방의 지국천왕, 비파를 든 북방의 다문천왕, 양손에 보주와 용을 움켜잡은 남방의 증장천이 각각 있다. 모두 화려한 보관을 쓰고 갑옷을 입은 무장형이며, 분노형의 얼굴에 용맹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 흙으로 제작한 대형의 소조사천왕상은 남아 있는 사례가 많지 않고, 17세기 전반작으로 조선후기 사천왕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
-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송광사 천왕문에 모셔진→ 송광사 천왕문에 봉안된
2차 수정
사천왕은 부처님과 그의 가르침을 지키는 네 명의 수호신이다. 원래 고대 인도의 신이었으나, 불교에 귀의한 후 수미산 중턱에서 동서남북의 네 방향을 지키는 호법신중이 되었다.
송광사 천왕문에 모셔진 사천왕상은 1649년에 조성되었으며, 조선시대의 사천왕상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대웅전을 향하여 오른쪽에는 칼을 쥔 동방의 지국천왕과 비파를 든 북방의 다문천왕이 자리하고 있고, 왼쪽에는 용과 보주를 쥔 남방의 증장천왕과 깃발의 일종인 당(幢)과 보탑을 든 서방의 광목천왕이 있다. 모두 화려한 보관을 쓰고 갑옷을 입고 있으며, 발 아래에는 악귀를 표현한 작은 조각상들이 있다. 광목천왕의 보탑은 1786년에 새로 만든 것이다.
흙으로 제작한 대형 사천왕상은 국내에 남아 있는 사례가 많지 않기 때문에, 송광사 사천왕상은 조선 후기 사천왕상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