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예산 송림사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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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부도는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덕망 높은 스님이 입적하고 나면 제자와 신도들이 스님을 기려 부도와 탑비를 세웠으며, 탑비에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비문을 새겼다.
화강암으로 만든 이 부도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의 고승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의 부도라는 설도 있다.
높이는 2.4m이고, 기단, 몸돌, 지붕돌, 머리장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에는 연꽃 문양, 구름과 용이 뒤엉켜 있는 운룡문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으며, 지붕돌의 모서리에는 꽃 모양의 장식을 얹었다. 머리장식에는 화염에 둘러싸인 보주를 표현하였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 1
- ‘부도는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모셔 놓은 일종의 무덤이다.’ → ‘~사리를 모셔놓은 조형물이다. 부처의 사리를 모신 불탑과 같은 의미에서 승탑이라고도 한다.’
- ‘탑비에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한 비문을 새겼다.’ → ‘~ 글로 지어 새겼다.’
- 마지막 문단에서 원형 중대석과 팔각형 탑신석 설명 추가 필요,
- 분야별 자문위원 2
- 부도는 부처나 덕망 높은 스님의 유골을 모시는 일종의 무덤이다. 다르게는 ‘승탑’이라 부른다. 부도와 함께 탑비를 세우고 탑비에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 신라와 고려시대에 유행한 팔각원당형 양식으로 팔각을 이루는 기단, 원통형의 중대석, 팔각의 탑신부와 지붕으로 이루어져 있다. 원통의 중대석에는 구름과 용이 뒤엉킨 운룡문을 새기고, 팔각 지붕돌의 마루 끝에는 귀꽃을 높게 돌출시켜 장식적인 기교와 함께 우수한 석공의 기술이 엿보인다.
- 통일신라시대의 고승 도선국사(道詵國師, 827~898)의 부도라는 설도 있으나 가능성은 거의 없다. 운룡문이 장식된 중대석은 고려시대 고달사지 부도 등의 장식문양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으나 전체적으로 간략화된 경향이 강하다. 이 부도는 가까운 부여 무량사 김시습 부도와 강한 친연성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조선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부도’의 정의를 굳이 문화재 안내판에 명기할 필요가 있을까? 필요하다면 안내판 아래쪽에 주석과 같이 부연설명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함.
- 현재 학계에서는 ‘부도’를 ‘승탑’으로 고쳐 부르고 있음. 문화재 명칭은 부도이지만 다른말로 승탑이라 한다는 것을 부연 설명할 필요 있음.
- 전체적인 문단 순서를 재구성해야 함. → 기본 정보(높이, 크기, 형태)-위치 및 송림사와의 관계-특징
- 지붕돌, 몸돌이 팔각을 띠고 있다는 형태 특징, 상륜부(머릿돌)까지 잘 남아 있는 점을 명기할 필요가 있음.
- 마지막 문단의 문화재 현상 설명을 이 부분에 추가하며, ‘팔각원당형’이라는 통일신라 이래 전통 양식을 계승한다는 점을 언급할 필요가 있음.
- 소재 사찰인 송림사와의 관련성을 언급할 필요가 있음. 이 승탑은 원래 위치가 송림사가 아니라는 설도 있으며, 한 차례 반출되었다가 현재의 위치로 되돌려 진 것으로 알고 있음. 이러한 문화재 이력을 간략히 언급할 필요가 있음.
- 송림사의 연혁에 대하여 부기하며, 송림사 주변의 사지에 대해서도 언급할 필요가 있음. 또한 도선국사의 부도라는 설은 신빙성이 낮은 ‘구전’이므로, 언급은 가능하겠지만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할 것임.
2차 수정
부도는 스님의 유골을 모시는 일종의 무덤이다. 승탑이라고도 부른다. 덕망 높은 스님이 입적하고 나면 제자와 신도들이 스님을 기려 부도와 탑비를 세웠으며, 탑비에는 스님의 행적을 기록하였다.
화강암으로 만든 이 부도는 고려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누구의 부도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높이는 2.4m이다.
팔각형의 기단, 원통형의 중대석, 팔각형의 탑신부와 지붕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팔각원당형이라 불리는 이러한 양식은 신라와 고려시대에 유행하였다. 중대석에는 구름과 용이 뒤엉킨 운룡문을 새기고, 지붕돌의 마루 끝에는 꽃 모양의 장식을 높게 얹었다. 장식적인 기교와 함께 우수한 석공의 기술이 엿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