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영덕 덕흥사 제석탱화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없음.
수정 국문
초고
탱화는 불교 신앙과 관련된 그림을 말한다. 덕흥사 탱화는 제석천(帝釋天)과 위태천(韋駄天)을 중심에 그렸고, 주변에 9명의 권솔들을 그렸다. 제석천은 신들의 왕인 인드라에서 유래하였고, 위태천은 힌두교 신화에 나오는 스칸다에서 유래하였다. 모두 부처를 수호하는 수호신이다. 탱화에는 보통 여러 신들을 함께 묘사하는 경우가 많다. 제석천은 다른 신들보다 우위에 있기 때문에 다른 신들과 함께 그려도 제석탱화라 하는 경우가 많다. 덕흥사 탱화도 제석천과 위태천을 그렸지만 제석탱화라 하였다.
그림은 전체적으로 짙은 붉은색과 녹색을 활용하였고 후대에 색칠을 덧입힌 흔적도 보인다. 그림 하단에 이 탱화는 1828년 금겸(錦謙)을 비롯한 5명의 보조화가가 제작했다고 기록하였다. 금겸은 19세기 전반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불화승(佛畫僧)이다.
1차 수정
제석천(帝釋天)과 위태천(韋駄天)을 중심으로 9명의 권속들을 그린 불화이다. 제석천과 위태천은 각각 신들의 왕인 인드라(Indra)와 군신(軍神) 스칸다(Skanda)에서 유래하였으며, 불교에 수용되면서 부처님을 수호하는 수호신이 되었다.
그림 아래쪽에 남겨진 기록에 따르면, 이 불화는 1828년 금겸(錦謙)의 주도 아래 5명의 화가가 제작하였다. 금겸은 19세기 전반 경상도 일대에서 활동하던 승려 화가이다.
전체적으로 짙은 붉은색과 녹색을 활용하였고, 부분적으로 백색, 군청색, 금박을 활용하였다. 후대에 색칠을 덧입힌 흔적도 보인다. 습기로 인해 얼룩이 생기는 등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은 아니지만, 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정확히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1
- 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정확히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화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 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정확히 알 수 있어서 조선 후기 불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
- 분야별 자문위원2
- 사찰에서는 부처를 수호하는 호법신을 그린 신중도(神衆圖)를 제작하여 전각 측면에 설치된 신중단(神衆壇)에 안치한다. 조선후기에는 여러 유형의 신중도가 제작되었다.
- 영덕 덕흥사 제석탱화는 보살형의 제석천(帝釋天)과 무장형의 위태천(韋駄天)을 중심으로, 오른편에는 일월천자(日月天子), 천녀와 천동이 있고 왼편에는 용뿔을 든 용왕, 칼을 들고 무장을 한 신장들이 그려져 있다.
- 제작 시기는 1828년이며 불화를 그린 승려 화가는 금겸(錦謙), 우영(右英), 정인(定仁), 수연(守衍) 등이며, 그림이 가르침에 맞게 그려졌음을 증명하는 증사(證師)로 학송당 선준(鶴松堂 禪俊)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모두 19세기 경상북도에서 이름을 떨쳤던 승려 화사들이다.
2차 수정
제석천(帝釋天)과 위태천(韋駄天)을 중심으로 9명의 권속들을 그린 불화이다. 제석천과 위태천은 각각 신들의 왕인 인드라(Indra)와 군신(軍神) 스칸다(Skanda)에서 유래하였으며, 불교에 수용되면서 부처님을 수호하는 수호신이 되었다.
그림 아래쪽에 있는 기록에 따르면, 이 불화는 1828년 금겸(錦謙), 우영(右英), 정인(定仁), 수연(守衍) 등이 그렸으며, 그림이 가르침에 맞게 그려졌음을 증명하는 증사(證師)로 학송당 선준(鶴松堂 禪俊)이 참여하였다. 이들은 모두 19세기 경상북도에서 이름을 떨쳤던 승려 화가들이다.
전체적으로 짙은 붉은색과 녹색을 활용하였고, 부분적으로 백색, 군청색, 금박을 활용하였다. 후대에 색칠을 덧입힌 흔적도 보인다. 습기로 인해 얼룩이 생기는 등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은 아니지만, 제작 시기와 제작자를 정확히 알 수 있어서 조선 후기 불화 연구의 중요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