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하회 지산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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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기존 국문

이 집은 1857년(철종 8)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우승지, 사간원 대사간, 안동부사를 지낸 지산(志山) 류지영(柳芝榮, 1828~1896)선생께서 1841년(헌종 7년)에 염행당(念行堂)에서 분가할 때 분재 받은 건물로 당호는 "존양당(存養堂)"이다.

당호를 존양당이라 한 것은 청렴결백(淸廉潔白)과 존심양성(存心養性)을 사표로 삼은 선생의 신념이 잘 드러나 있다. 건물의 규모는 ‘一’자형의 문간채와 'ㄷ'자형의 안채 및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인 지산서루(志山書樓)는 심신을 수양하기 위해 짓는 정사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절제된 선비의 마음을 잘 반영하고 있다.

2020 초고

이 집은 정확한 연도는 알 수 없으나 1800년대에 지어진 주택이다. 1841년 류지영(1828~1896)이 종가인 염행당에서 분가하면서 분재받았다.

류지영은 1857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우승지, 사간원 대사간, 안동부사를 지냈다. 지산은 그의 호이다.

이 집은 ㅡ자로 지은 문간채와 마주하여 ㄷ자형으로 안채와 사랑채를 배치하였다. 안채에 붙여지은 사랑채는 사랑마루를 옆으로 돌출시켜 화산을 마주 볼 수 있게 하였다.

집의 이름은 ‘존양당’으로, 도덕적이고 선한 마음을 추구하는 ‘맹자’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한 집주인의 뜻을 담고 있다. 사랑채인 ‘지산서루‘는 심신을 수양하기 위해 짓는 정사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절제된 선비의 마음을 잘 반영하고 있다.

2020 1차 수정

이 집은 1841년 류지영(柳芝榮, 1828~1896)이 종가인 염행당에서 분가하여 살았던 집이다. 류지영은 1857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정원 우승지, 사간원 대사간, 안동부사를 지냈다.

ㄷ자형으로 배치된 안채와 사랑채 옆에 ㅡ자로 지은 아랫채가 있다.

화산을 바라보는 방향으로 돌출시킨 사랑마루 위에는 두 개의 현판이 걸려 있다. 이 집의 이름인 ‘존양당’은 ‘선한 마음을 보존하고 기른다’는 맹자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 ‘지산서루’는 류지영의 호에서 온 사랑채의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