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정재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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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건물은 퇴계학파의 거봉인 정재 류치명(柳致明, 1777~1861)의 종택으로, 그의 고조부인 양파(陽坡) 류관현(柳觀鉉, 1692~1764)이 조선 영조(英祖)11년(1735)에 건립한 집이다. 현재 ‘양파구려(陽坡舊廬)’와 ‘정재’ 및 ‘세산(洗山)’이란 현판이 걸려 있고 내부에 정재가 편찬한 명당실소설(名堂室小說)과 이재(頤齋) 권연하(權璉夏, 1813~1896)의 찬(撰)인 경서정재명당실후(敬書定齋名堂室後) 현판이 걸려있다.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종택 건물로는 아주 짜임새가 있고 웅장한 건물이다.

이 건물은 대문채, 정침(正寢), 행랑채, 사당 등 4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문채는 솟을대문이며, 정침은 정면 6칸, 측면 1칸 반, 사랑채는 정면 6칸, 측면 1칸 반, 행랑채는 정면 6칸, 측면 1칸, 사당은 우측 중문을 지나 들어설 수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다.

수정 국문

초고

이 건물은 정재(定齋) 유치명(柳致明, 1777~1861)의 종가가 대대로 살던 집이다. 고조부인 양파(陽坡) 유관현(柳觀鉉, 1692~1764)이 조선 영조(英祖, 재위 1724~1776) 11년(1735)에 건립했다. 원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2리 한들에 있었으나 1987년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유치명은 조선후기 대사간, 한성좌윤, 병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경학(經學)·성리학·예학(禮學) 등 여러 분야에 정통하여 큰 업적을 남긴 학자였다. 명망이 높고 많은 제자를 길러내어 사후에 상여의 줄을 잡은 선비가 9백 명이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대문채, 정침(正寢), 행랑채, 사당 등 4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침은 정면 6칸, 측면 6칸 크기의 ‘ㅁ’자형 홑처마 기와집으로 남향해 있다. 전면에 2칸통의 사랑방을 중심으로 우측에 연접하여 2칸의 사랑마루를 두었으며, 사랑방의 좌측에 연접하여 각 1칸 크기의 부엌과 갓방을 배치하였다. 정침의 동쪽으로 대문채를 내었는데 크기는 정면 5칸, 측면 1칸이며 홑처마 맞배지붕이다. 대문채는 가운데 지붕을 높게 올린 솟을대문을 두었고, 그 좌우에는 각 2칸 크기의 고방과 문간방이 딸려 있다. 정침의 서쪽에는 행랑채가 동쪽의 대문채와 마주 보고 있다. 행랑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집으로 ‘ㅡ’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정침의 동쪽에 자리 잡은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홑처마 맞배지붕집으로 사당 앞에는 외문(外門)을 내고 주변을 담으로 둘렀다.

사랑방과 마루의 처마 아래에는 ‘양파구려(陽坡舊廬, 陽坡의 옛집)’와 ‘정재(定齋)’ 및 ‘세산(洗山)’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내부에 정재가 편찬한 ‘명당실소설(名堂室小說)’의 구절을 적은 현판과 이재(頤齋) 권연하(權璉夏, 1813~1896)이 찬(撰)한 ‘경서정재명당실후(敬書定齋名堂室後)’ 현판이 걸려있다.

사당 내부에는 불천위(不遷位, 영원히 사당에 모시기를 나라에서 허락한 신위)인 정재 유치명의 신주를 비롯하여 4대의 신주를 봉안하고 있다.

초고 수정

이 집은 조선시대의 저명한 유학자 정재 유치명(定齋 柳致明, 1777~1861)의 후손들이 살던 종택으로, 유치명의 증조부인 유관현(柳觀鉉, 1692~1764)이 조선 영조(英祖, 재위 1724~1776) 11년(1735)에 지었다. 종택이란 한 문중에서 맏이로 이어 온 가족이 대대로 사용해온 집을 말한다.

집은 정침(正寢)을 기준으로 동쪽의 대문채, 서쪽의 행랑채, 뒤편에 자리한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ㅁ’자형의 평면으로 구성된 정침은 사랑채와 안채로 이루어져 있다. 두 공간은 개별 건물로 분리되어 있으며, 사랑채 오른쪽에 있는 중문을 통해야만 안채로 출입할 수 있다.

정침 동쪽에 위치한 사당은 담을 둘러 별도의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안에는 류치명과 조상 4대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종택의 동쪽에는 유치명이 강학을 위해 1855년에 세운 정자인 만우정(晩憂亭)이 있다. 본래 안동군 임하면 사의동에 있었는데, 임하댐 건설로 인해 1988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 이 집은 처음 집을 지은 유관현의 호를 따서 양파구려(陽坡舊廬)라고도 부른다.
  • 사랑채는 중앙의 사랑방을 기준으로 왼쪽에는 부엌과 건넌방을 두고, 오른쪽에는 마루를 내었으며, 남쪽을 향해 툇마루를 달았다.
  • 안채는 ‘ㄷ’자형 건물로, 앞쪽으로 툇간을 낸 가운데 부분에는 오른편에 대청마루가, 왼편에 안방이 있다. 안방과 이어진 쪽에는 부엌과 창고방(목욕탕으로 개조되어 있는 듯)이 있고, 반대편에는 마루방과 상방이 있다. 마루방은 대청보다 약간 높게 설치되어 있으며, 문을 열면 대청과 서로 연결되도록 되어 있다.
  • 행랑채에는 왼쪽부터 창고·외양간·부엌·고방 등이 있고, 좌우에 각 1칸 크기의 화장실을 두었다.
  • 대문채는 가운데 지붕을 높게 올린 솟을대문을 두었고, 그 좌우에는 각 2칸 크기의 고방과 문간방이 딸려 있다.
  • 만우정은 조선시대 병조참판을 지낸 정재 류치명 선생의 강학지소로 건립된 정자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 홑처마 집으로 평면의 좌우간을 통간방으로 꾸미고 우측 2칸은 우물마루이며 오량을 가구하여 간결한 구조로 보인다. 당시 임동면 사의동 악사 196번지에 있었으나 임하댐 건설로 인하여 1988년 현위치로 이건하였다.
  • 한옥숙박체험이 가능하다.


1차 수정

정재종택은 조선시대의 학자 정재 류치명(定齋 柳致明, 1777~1861) 가문의 종택이다. 종택이란 한 문중에서 맏이로 이어 온 가족이 대대로 사용해온 집을 말한다. 류치명의 증조부인 양파 류관현(陽坡 柳觀鉉, 1692~1764)이 영조 11년(1735)에 지었으며, 류관현의 호를 따 ‘양파구려(陽坡舊廬, 양파의 옛집)’이라고도 부른다.

집은 정침(正寢)을 기준으로 동쪽의 대문채, 서쪽의 행랑채, 뒤편에 자리한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다. ‘ㅁ’자형의 평면으로 구성된 정침은 사랑채와 안채로 이루어져 있다. 두 공간은 개별 건물로 분리되어 있으며, 사랑채 오른쪽에 있는 중문을 통해야만 안채로 출입할 수 있다. 사당은 담을 둘러 별도의 영역으로 구분하고 있으며, 안에는 류치명과 조상 4대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종택의 동쪽에는 류치명이 철종 8년(1857)에 세운 것으로 전해지는 만우정(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37호)이 있다. 류치명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본래 안동군 임하면 사의동에 있었는데,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8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