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안기동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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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한중연 안내문안 작성

기존 국문

안기동 민가 안에 자리하고 있는 3층 석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있다.

아래층 기단은 없어져 시멘트로 만들어 놓았고, 위층 기단에는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탑신의 각 층 몸돌 역시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고, 특히 1층 몸돌에는 네모난 감실(龕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설치하였다. 두툼한 지붕돌은 낙수면이 짧아 경사가 급하고 네 귀퉁이가 치켜올라갔다. 지붕돌 밑면에 새긴 받침수가 1층은 6단, 2층은 5단, 3층은 4단으로 되어 있어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꼭대기에는 후에 새로 만들어 얹은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모양의 둥근 돌이 놓여 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석탑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지붕돌의 양식과 밑면의 받침 수가 일정하지 않은 점 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안기동석불좌상(보물 제58호)이 가까운 거리에 자리하교 있어 같은 사찰 내의 유물로 추정되며, 통일신라말·고려초 안동지역의 불교조각 유물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이 삼층석탑은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층 기단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올리고 있다. 아래층 기단은 없어져 시멘트로 만들어 놓았고, 위층 기단에는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각 층 몸돌 역시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고, 특히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셔두는 방인 네모난 감실(龕室)을 설치하였다. 두툼한 지붕돌은 낙수면이 짧아 경사가 급하고 네 귀퉁이가 치켜 올라갔다. 지붕돌 밑면에 새긴 받침수가 1층은 6단, 2층은 5단, 3층은 4단으로 되어 있어 위로 올라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꼭대기인 상륜부에는 1972년에 보수를 하면서 새로 만들어 얹은 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인 복발(覆鉢)이 놓여 있다.

서북쪽으로 20m 정도 떨어진 곳에 안동 안기동 석불좌상(보물 제58호)이 있는데, 본래는 이 탑과 같이 이 지역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운안사(雲安寺)”라는 사찰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1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이 삼층석탑은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2층 기단 위에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을 올리고 있다. 아래층 기단은 없어져 시멘트로 만들어 놓았고, 위층 기단에는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각 층 몸돌 역시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고, 특히 1층 몸돌에는 불상을 모셔두는 방인 네모난 감실(龕室)을 설치하였다. 두툼한 지붕돌은 낙수면이 짧아 경사가 급하고 네 귀퉁이가 치켜 올라갔다. 꼭대기에는 1972년에 보수를 하면서 새로 만들어 얹은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서북쪽으로 20m 정도 떨어진 곳에 안동 안기동 석불좌상(보물 제58호)이 있는데, 본래는 이 탑과 같이 이 지역에 있었다고 전해지는 ‘운안사(雲安寺)’라는 사찰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