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안동 광흥사 응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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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신라 신문왕(神文王) 때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하나 정확한 건립연대나 그 동안의 사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안동지방에서는 규모가 큰 사찰 가운데 하나였으나 1946년 화재로 대웅전이 불탔고, 1954년 극락전(極樂殿)과 1962년 학서루(鶴棲樓)와 큰방이 낡아서 무너지고 지금은 응진전만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응진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다포계 건물로 내부는 통간이며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내부에는 석가모니불과 16나한이 모셔져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이 건물은 광흥사의 남아 있는 부속건물이다. 응진전은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羅漢)을 모신 전각을 말한다.

광흥사는 건물은 신라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 때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하나 정확한 건립연대나 그 동안의 사적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안동지방에서는 규모가 큰 사찰 가운데 하나였으나 1946년 화재로 대웅전이 불탔고, 1954년 극락전(極樂殿)과 1962년 학서루(鶴棲樓)와 큰방이 낡아서 무너지고 지금은 응진전만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응진전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건물이다. 자연석을 세단 쌓아 약 2.5∼3m정도 되는 기단을 조성하고 그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원기둥을 세워 건물의 틀을 구성했다. 지붕은 추녀와 선자연을 설치한 팔작지붕이며, 부연을 달아 겹처마를 구성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상부 이외에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배열한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정면 가운데 칸에 출입문을 두고 좌우 협간(夾間)과 측면에는 들어 올릴 수 있는 광창(廣窓, 어두운 실내를 밝혀주기 위하여 부엌이나 광·고방·헛간·다락 등의 벽에 설치하는 창)을 설치하였다.

바닥에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내부에는 중앙에 삼존불을 안치한 불단을 설치하고 뒤쪽과 양쪽 옆에도 불단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과 16나한이 모셔져 있다.

초고 수정

응진전(應眞殿)은 석가모니불과 그 제자인 나한(羅漢)을 모시는 불전이다. 응진은 ‘진리에 상응하는 이’라는 뜻이다.

광흥사 응진전은 신라 신문왕(神文王, 재위 681~692) 때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가 처음 지었다고 전한다. 조선 인조 25년(1647)에 다시 지어졌다고도 하나, 1827년 화재가 발생해 일주문을 제외한 가람 전체가 사라졌다가 1828년 중창되었다는 기록이 전하므로, 지금의 건물은 사찰을 중창할 때 옛 모습을 복원해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이 건물의 지붕은 겹처마로 되어 있으며, 건물 중앙의 출입문을 제외하고는 모든 벽을 판벽(板壁)으로 마감한 후 상부에 채광을 위한 창을 설치하였다.

내부에는 흙으로 만들어진 총 42구의 불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93호]이 모셔져 있다. 건물 중앙에 설치된 불단에는 가운데에 석가여래가 앉아 있고, 양옆에는 보관을 쓴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있으며. 삼존불상의 좌우에 부처의 여러 제자 중 으뜸이라고 하는 아난과 가섭이 서 있다. 벽면을 따라 ‘ㄷ’자 형태로 설치된 불단에는 16나한상을 모셨으며, 나한상 사이마다 16구의 동자상/시자(侍者)상이 있다. 전각 입구에는 인왕상 2구와 사자상 2구, 제석천상 1구가 있다.

광흥사는 안동 지역에 있는 사찰 중에는 규모가 큰 편에 속했으나, 1828년 중창된 이후에도 1946년 화재로 대웅전(大雄殿)이 소실되고, 1954년에는 극락전(極樂殿)이, 1962년에는 학서루(鶴棲樓)와 대방(大房)이 무너진 후 응진전이 중심 불전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 응진전의 건립 시점과 관련하여 사찰에 확인해볼 필요 있음.(검색된 자료들을 정리하면 작성한 문안의 내용과 같지만, 기존 문안에는 ‘알 수 없다’고 되어 있고, 1647년에 지어졌다는 내용 역시 블로그에 언급된 내용일 뿐 근거를 확인하기 어려움, 19세기 중건 관련해서는 중건사적기가 전한다고 하므로 신빙성이 있음.)
  • 광흥사는 목판 등으로 경북지역 인쇄의 거점 역할을 한 사찰로 전해진다.
  • 현재 국립경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보물 제314호인 『취지금니묘법연화경(翠紙金泥妙法蓮華經)』은 원래 광흥사에 있던 것이다.
  • 소실된 전각들 중 대웅전은 2001년(2003년이라는 설명도 있으르모 확인 필요)에 복원되었다.
  • 1999년 9월 광흥사 경내에 강도가 들어 응진전에 봉안한 석가삼존불상, 아난·가섭존자상, 16나한 중 14위 등 모두 39위가 완전 파손되는 불상사가 일어났다. 이때 이 문화재털이범들이 토불을 깬 뒤 복장유물을 털었는데 여기에서 나온 불경이 직지심체요절보다 50년이나 앞서는 금속활자본이라는 것이다. -> 불상들이 복원된 시점은 언제인지 확인 필요.

1차 수정

응진전은 석가모니불과 그 제자인 나한(羅漢)을 모시는 불전이다. 응진은 ‘진리에 상응하는 이’라는 뜻이다.

광흥사 응진전은 신라 신문왕(681~692 재위) 때 의상대사(義湘大師, 625~702)가 처음 지었다고 한다. 자세한 연혁은 전해지지 않으며, 1827년 화재로 가람 전체가 사라졌다가 1828년 중창되면서 당시 안동 지역에서 손꼽히는 대가람을 갖추었다고 한다. 그러나 1946년 화재로 대웅전이 불탔고, 사세가 점차 쇠락하여 전각들이 낡아 무너지면서 응진전이 중심 불전의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응진전의 지붕은 겹처마로 되어 있으며, 건물 중앙의 문을 제외하고는 모든 벽을 판벽(板壁)으로 마감하고 상부에 채광을 위한 창을 설치하였다.

전각 안의 불단에는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양옆에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을 모셨으며, 그 양옆으로는 부처의 여러 제자 중 으뜸이라고 하는 아난과 가섭을 비롯한 16나한상이 있다. 나한상 사이마다 동자상이 있고, 입구 쪽에는 인왕상 2구, 사자상 2구, 제석천상 1구가 있다. 총 42구의 불상이 있으며, 모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93호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