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수구(창원 진해 웅천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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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웅천읍성에서 확인되는 水口(성벽에 마련된 배수시설 중 규모가 작은 것)는 동북벽에 1개소, 남벽에 1개소 2개소가 확인되고 있다. 이곳 동북치성 북쪽 하단 수구는 기단석(基壇石) 위에 치석한 두께 30cm의 석재 2기(枚)를 내벽까지 관통시키고, 그 위에 두께 50cm 정도의 장방형 석재를 올려놓았으며, 그 위에 성석들을 세워쌓기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폭 25cm, 높이 40cm로 조사 당시 입구는 파손된 기와로 폐쇄되어 있었으며 수구 하부에 토층을 확인한 결과 장기간에 걸쳐 물이 흘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수구 내부를 확인한 결과 수구는 내벽으로 관통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ㄱ”자상으로 굴절된 것으로 현재의 웅천초등학교가 과거에 객사지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객사에 딸려 오수를 방출한 것으로 판단된다.

수정 국문

초고

수구(水口)는 성벽에 마련되어 있는 배수시설 중 그 규모가 작은 것이다. 대체로 성벽 밑이나 중간부에 개구부를 내어 성내에서 발생한 물이 흐르도록 한 시설로 한국의 모든 성곽은 시기와 성격을 막론하고 배수(排水)를 위한 시설을 갖추고 있다. 이중 규모가 작은 경우 수구라 한 반면, 규모가 크고 문의 형식을 갖춘 경우 수문(水門)이라 하였다.

웅천읍성에서 확인되는 수구는 동북벽에 1개, 남벽에 1개 모두 2개소가 확인된다. 동북치성 북쪽 하단의 수구는 두께 30cm의 석재 2기를 내벽까지 관통시키고, 그 위에 두께 50cm 정도의 장방형 석재를 올려놓았으며, 그 위에 성석들을 세워쌓기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폭 25cm, 높이 40cm로 조사 당시 입구는 파손된 기와로 폐쇄되어 있었으며 수구 하부에 토층을 확인한 결과 장기간에 걸쳐 물이 흘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수구 내부를 확인한 결과 수구는 내벽으로 관통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ㄱ”자상으로 굴절된 것으로 현재의 웅천초등학교가 과거에 객사지였던 것을 감안한다면 객사에 딸려 오수를 방출한 것으로 판단된다.

1차 수정

수구는 성벽에 마련되어 있는 배수시설 중 하나이다. 대체로 성벽 밑이나 중간부에 작은 구멍을 내어 성 바깥 쪽으로 물이 흐르도록 하였다.

웅천읍성에는 총 2개의 수구가 있으며 동북벽과 남벽에 각각 1개씩 있다. 동북치성 북쪽 하단의 수구는 두께 30cm의 석재 2기를 내벽까지 관통시켜 만들었으며, 폭 25cm, 높이 40cm이다. 조사 당시 입구는 깨진 기와로 막혀 있었고, 수구 하부에 토층을 확인한 결과 장기간에 걸쳐 물이 흘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의 웅천초등학교 자리에 객사가 있던 것을 감안할 때, 객사에서 사용한 오수를 내보내던 시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작은 구멍을 내어 -> 작은 공간을 만들어
  2. 분야별 자문위원 2
    • 없음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물이 흐르도록’을 ‘물이 흘러나가도록’으로 표현하는 것이 좀 더 명확해 보입니다.

2차 수정

수구는 성벽에 마련되어 있는 배수시설 중 하나이다. 대체로 성벽 밑이나 중간부에 작은 공간을 만들어 성 바깥쪽으로 물이 흘러나가도록 하였다.

웅천읍성에는 총 2개의 수구가 있으며 동북벽과 남벽에 각각 1개씩 있다. 동북치성 북쪽 하단의 수구는 두께 30cm의 석재 2기를 내벽까지 관통시켜 만들었으며, 폭 25cm, 높이 40cm이다. 조사 당시 입구는 깨진 기와로 막혀 있었고, 수구 하부에 토층을 확인한 결과 장기간에 걸쳐 물이 흘렀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현재의 웅천초등학교 자리에 객사가 있던 것을 감안할 때, 객사에서 사용한 오수를 내보내던 시설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