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세종시 연화사 칠존불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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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세종시 연화사 칠존불비상은 불상이 새겨진 비석 형식의 돌기둥이다. 원래 자리는 연화사 부근 쌍류리(雙流里, 일명 권터굴)라고 전한다. 마름모꼴의 곱돌 표면에는 7존불(七尊佛)이 조각되어 있다. 크기는 높이 51㎝, 밑변 폭 33㎝, 측면 폭 10㎝이다.
홑잎의 연꽃을 둘러 받침돌로 삼았으며, 앞면에는 7존불을, 옆면과 뒷면에는 각각 1구의 불상을 새겼다. 본존불은 얼굴이 닳아 없어져 알아보기 어려우며, 몸은 양 어깨를 감싼 두꺼운 옷을 입고 있다. 본존불 좌우에는 보살상이 새겨져 있으며, 각각 둥근 머리광배를 가지고 있으며 배(舟) 모양의 광배에 포함되어 있다. 광배에는 연꽃무늬와 불꽃무늬,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다.
연화사 무인명불비상 및 대좌와 함께 678년 무렵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차 수정
불상이 새겨진 비석 형식의 돌기둥이다. 원래 자리는 연화사 부근 쌍류리(雙流里, 일명 권터굴)라고 전한다. 연화사 무인명불비상 및 대좌(보물 제649호)와 함께 678년 무렵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름모꼴의 곱돌 표면에는 7존불(七尊佛)이 조각되어 있다. 크기는 높이 51㎝, 밑변 폭 33㎝, 측면 폭 10㎝이다.
홑잎의 연꽃을 둘러 받침돌로 삼았으며, 앞면에는 7존불을, 옆면과 뒷면에는 각각 1구의 불상을 새겼다. 본존불은 얼굴이 닳아 없어져 알아보기 어려우며, 몸은 양어깨를 감싼 두꺼운 옷을 입고 있다. 본존불 좌우에는 보살상이 새겨져 있으며, 각각 둥근 머리 광배와 배(舟) 모양의 몸 광배를 갖추고 있다. 광배에는 연꽃무늬와 불꽃무늬,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1
- 불비상이란 불상이 새겨진 비석 형식의 상을 말한다. 이 불비상은 연화사 무인명불비상 및 대좌와 함께 쌍류리에서 발견된 것으로 전하지만 명확하지 않다.
- 제작 시기는 678년 무렵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보다 늦게 제작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으므로, 현상 설명 후 마지막에 언급하는 것이 좋을 것으로 생각됨.
- 연꽃잎과 같은 모양의 돌 앞면에는 불좌상을 포함한 7구의 존상이, 뒷면에는 불좌상 1구가 새겨져 있다. 받침돌은 피어오르는 연꽃 모양이다. 앞면에는 네모난 대좌에 앉아 있는 여래좌상을 중심으로 나한상, 보살상, 신장상이 양 옆으로 서 있어 총 7구의 존상이 새겨져 있다. 본존불은 광배를 지니고 있으며, 광배 주변에는 화불이 새겨져 있다. 본존불은 양 어깨를 모두 덮는 대의를 입고 있는데, 대의 자락이 대좌를 덮어 흘러내리는 모양(裳懸坐)이다. 특히 양 끝의 신장상은 발 아래에 사자를 딛고 서 있으며, 보살상들은 연못으로부터 가지를 뻗어올린 연꽃을 받침삼아 서 있다. 뒷면에 있는 불좌상은 앞면 불상과 비슷한 모양의 광배를 지니고 있는데, 옷차림은 앞면 불상과는 다르게 편단우견이며 별도의 대좌를 갖추지 않았다. 불좌상 양 옆에는 가지에서 뻗은 연꽃 봉오리가 각각 하나씩 새겨져 있다.
- (내용 추가) 이 불비상은 678년에 제작된 무인명 불비상과 함께 발견되었고, 불상의 형상, 연못으로 서방정토를 상징하고 있는 점 등이 비슷하다. 그러나 형태는 무인명 비상과는 달리 불상 광배와 같은 형상을 띄고 있고, 명문이 없어 제작 시기를 명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같은 연기 지역에서 발견된 기축명 아미타불비상과 형태가 비슷하고, 또한 무인명 불비상을 비롯한 연기지역 발견 불상들과 공통점이 많아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분야별 자문위원2
- 세종특별시자치시 연서면 쌍류리(雙流里, 일명 권터굴) 절터에서 수습하여 연화사로 옮겨 놓은 것이다. 높이 51㎝, 밑변 폭 33㎝, 측면 폭 10㎝에 전체적인 모양이 큰 연꽃잎을 연상케 한다. 앞면은 홑잎 연꽃의 연화받침돌 위에 불상과 권속을 새겼는데 중앙에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그 옆으로 제자상과 보살상, 금강역사상이 배치되어 있으며, 대좌 가운데 향로와 금강역사 아래에는 사자상이 조각되어 있다. 뒷면과 측면은 각각 1구의 여래좌상이 새겨져 있다.
- 어깨가 드러나지 않은 통견의 두꺼운 옷이나 크게 과장된 듯한 손 모습 등은 삼국시대 조각의 보수적인 전통을 계승하고 있으며, 중첩된 존상의 표현 등 부분적으로 새로운 요소가 드러난다. 즉 백제지역의 전통적인 요소에 새로운 요소가 가미된 존상이며, 조성시기는 보물 제 367호 기축명 아미타불좌상의 형식과 유사하여 통일신라 680년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2차 수정
불비상이란 불상이 새겨진 비석 형식의 상을 말한다. 이 불비상은 통일신라시대인 7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연화사 무인명불비상 및 대좌(보물 제649호)와 함께 1961년 연화사 부근 쌍류리(雙流里, 일명 권터굴)의 생천사터에서 수습되었다고 한다.
전체 크기는 높이 51cm, 밑변 폭 33cm, 측면 폭 10cm로, 전체적인 모양이 큰 연꽃잎을 연상케 한다. 앞면에는 네모난 대좌에 앉아 있는 여래상을 중심으로 나한상, 보살상, 신장상 등 총 7구의 존상을 새겼고, 옆면과 뒷면에는 각각 1구의 여래좌상을 새겼다.
앞면의 본존불은 얼굴이 닳아 없어져 알아보기 어려우며, 양 어깨를 모두 덮는 두꺼운 옷을 입고 있다. 광배에는 연꽃무늬와 불꽃무늬, 작은 부처가 새겨져 있다. 보살상들은 연못으로부터 가지를 뻗어올린 연꽃을 받침삼아 서 있고, 양 끝의 신장상은 발 아래에 사자를 딛고 서 있다. 이러한 구성은 서방정토를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불비상은 연기 지방을 중심으로 발견되는 이 지역의 독특한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이 불비상은 689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기축명아미타불비상(보물 제367호)과 형식이 유사하여,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