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세종시 연화사 무인명불비상 및 대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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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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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고

세종시 연화사 무인명불비상 및 대좌는 불상이 새겨진 비석 형식의 돌기둥과 불상을 올려놓는 자리[臺]이다. 1961년 발견되었으며, 원래 자리는 연화사 부근 쌍류리(雙流里, 일명 권터굴)의 생천사터라고 전한다.

곱돌을 네 면으로 다듬어 불상을 조각하였으며, 크기는 세로 52.4㎝, 가로 22.5㎝, 두께 16㎝이다. 불비상 앞과 뒷면에 각기 5존불상과 3존불상을 조각하고 옆면에는 가운데 행간을 만들어 명문을 새겼으며 명문 위에는 불상을, 아래에는 만(卍)자 무늬를 난간처럼 만들어 놓았다.

명문에 보이는 무인(戊寅)년은 678년으로 추정되고 있어, 이 작품도 그 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1차 수정

불상이 새겨진 비석 형식의 돌기둥과 불상을 올려놓는 자리[臺]이다. 1961년에 발견되었으며, 원래 자리는 연화사 부근 쌍류리(雙流里, 일명 권터굴)의 생천사터라고 전한다. 명문에 보이는 무인(戊寅)년은 678년으로 추정되며, 이 작품도 그때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곱돌을 네 면으로 다듬어 불상을 조각하였으며, 크기는 가로 22.5㎝, 세로 52.4㎝, 두께 16㎝이다. 불비상의 앞면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양옆에 나한상과 보살상이 2구씩 놓인 5존불상을 조각하였고, 뒷면에는 반가사유상과 양옆에 보살상이 앉아 있는 삼존불상을 조각하였다. 옆면에는 가운데 행간을 만들어 명문을 새겼으며 명문 위에는 불상을, 아래에는 만(卍)자 무늬를 난간처럼 만들어 놓았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1
    • 불비상이란 불상이 새겨진 비석 형식의 상을 말한다. 이 불비상은 받침(臺座)과 함께 전하고 있으며, 원래는 지붕 모양의 덮개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함께 전하지 않는다.
    • 이 불비상은 곱돌(蠟石)로 제작되었으며, 가로 22.5㎝, 세로 52.4㎝, 두께 16㎝이다.
    • 불비상 앞면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양 옆에 나한상과 보살상이 각 2구씩 서 있는 오존상을 새겼고, 뒷면에는 반가사유상과 양 옆에 무릎을 꿇고 공양하는 자세의 보살상이 각 1구씩 새겨졌다. 폭이 좁은 옆면은 격자로 구획하여 명문을 새겼다. 명문에 보이는 “戊寅年”은 678년으로 추정되며, 신라 문무왕 18년에 해당한다. 또한 명확하게 읽히지 않지만 “阿彌陀”, “彌”로 읽히는 글자는 앞면과 뒷면에 새겨진 상의 존명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 불비상 앞면의 주존은 아미타불, 뒷면의 주존은 미륵보살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 이 불비상에서 주목되는 것은 불상 등을 새긴 아래쪽에 ‘卍’자 모양 장식이 새겨진 난간과 계단을 두고, 불상과 보살상 등의 모든 존상이 연못으로부터 피어오른 연꽃과 연꽃 가지 위에 서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미타불이 계시는 세계인 서방정토를 상징하는 것이다.
    • (내용 추가) 대좌는 직사각형이며, 연꽃 무늬가 위, 아래로 맞물린 모양이다. 불비상보다 너비, 길이가 넓으며, 불비상의 아래에 마련된 네모난 촉을 위에 끼워 넣어 고정하는 방식이다.
    • (내용 추가) 이 불비상은 명문을 통해 그 제작연대가 678년이라는 것을 파악할 수 있어, 제작 당시 불상 양식과 신앙 일면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함께 발견된 연화사 칠존불비상,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등과 함께 우리나라에서는 단 7구만 알려진 곱돌로 만들어진‘佛碑像’으로서, 신라 통일 직후 백제의 영토였던 연기 지방에서 제작된 상으로 추정되고 있다.
  1. 분야별 자문위원2
    • 통일신라시대 불상이 조각된 불비상(佛碑像)으로 지붕돌과 몸돌, 받침돌로 제작하여 조합한 형태이다. 1961년 연화사 부근 쌍류리(雙流里, 일명 권터굴)의 생천사터에서 수습되었다고 한다.
    • 곱돌을 가로 22.5㎝, 세로 52.4㎝, 두께 16㎝로 다듬어 앞면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양옆에 보살과 나한을 배치한 5존의 불상을 조각하고, 뒷면에는 가운데 반가사유상을 향해 합장한 보살의 삼존상이 배치되어 있다. 양 옆면에는 상단에 여래상 그 아래에 명문대가 있다.
    • 명문의 정확한 판독은 어렵지만 통일신라시대 문무왕18년(678)에 한 가족이 □□□□와 일체의 중생들을 위해 아미타불상과 미륵보살상을 조성한 것이라 기록하였다.
    • 이와 같은 불비상(佛碑像)은 그 외에도 계유명삼존천불비상(癸酉銘三尊千佛碑像, 국보 제108호)과 기축명아미타불비상(己丑銘阿彌陀佛碑像, 보물 제367호)이 있으며, 모두 세종시(이전: 연기군)에서 발견되어 이 지역의 독특한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2차 수정

불비상이란 불상이 새겨진 비석 형식의 상을 말한다. 이 불비상은 대좌(臺座, 받침)와 함께 전하고 있으며, 원래는 지붕 모양의 덮개돌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678년에 만들어졌으며, 1961년 연화사 부근 쌍류리(雙流里, 일명 권터굴)의 생천사터에서 수습되었다고 한다.

곱돌을 네 면으로 다듬어 불상을 조각하였으며, 크기는 가로 22.5㎝, 세로 52.4㎝, 두께 16㎝이다. 앞면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양옆에 나한상과 보살상이 2구씩 서 있는 5존의 불상을 조각하고, 뒷면에는 반가사유상과 양옆에 공양하는 자세의 보살상을 1구씩 새겼다. 옆면은 3단으로 나누어, 상단에는 여래상을 새기고 가운데에 명문을 새겼다. 하단에는 만(卍)자 무늬로 장식한 난간과 계단을 두었다. 명문은 정확하게 판독하기는 어렵지만, 명문에 보이는 “戊寅年”은 678년으로 추정되며, 이 작품도 그때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불비상은 연기 지방을 중심으로 발견되는 이 지역의 독특한 양식으로 알려져 있다. 함께 발견된 연화사 칠존불비상(보물 제650호)을 비롯하여, 단 7점의 불비상이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