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서울 신당동 박정희 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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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박정희 대통령이 1958년 5월부터 1961년 8월 장충동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공관으로 이주할 때까지 가족과 함께 거주하던 집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1년 이곳에서 우리나라 현대사의 큰 전환점이 된 5·16을 계획하였다.

이 가옥은 1930년대 후반 조선도시경영주식회사에서 신당동 문화주택지 개발로 조성한 가옥 중 하나로서 한국 주거사의 중요한 자료이다.

수정 국문

초고

박정희(朴正熙, 1917~1979) 전 대통령이 1958년 5월부터 1961년 8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관사로 이주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5.16 군사정변을 계획했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서거 후에는 유족들이 거주하였다.

지상 1층·지하 1층의 규모로 건축면적 123.97㎡, 연면적 128.93㎡이며, 응접실과 안방, 서재, 부엌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가옥은 1930년대 신당동에 대단위로 조성되었던 문화주택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집으로 우리나라 근대 주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2010년 12월부터 약 1년간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2015년 3월 시민들에게 개방하였다.

1차 수정

박정희(朴正熙, 1917~1979) 전 대통령이 1958년 5월부터 1961년 8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관사로 이주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5.16 군사정변을 계획했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서거 후에는 유족들이 거주하였다.

지상 1층, 지하 1층의 규모로 건축면적 123.97㎡, 연면적 128.93㎡이며, 응접실과 안방, 서재, 부엌 등으로 구성되었다.

1930년대 신당동 지역에는 문화주택*이라고 불리는 서양식 주택단지가 대규모로 조성되었는데, 이 집은 당시의 문화주택 중 유일하게 남은 가옥이다. 2010년 12월부터 약 1년간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2015년 3월 시민들에게 개방하였다.


  • 문화주택(文化住宅): 일제강점기에 서양주택의 공간구조와 외관을 따라 지어졌던 주택.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문화재 명칭이 맞고, 사실관계가 객관적임
    • 박 전 대통령 → 박정희 전 대통령
    • 문화재 가치 및 의미가 정리되어 표현됨
  2. 분야별 자문위원 2
  3.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이주할 때까지~’라는 표현 보다는 ‘이주하기 전까지’라는 게 더 이해하기 좋을 듯합니다.
    • ‘남은 가옥이다’-> ‘남아있는 가옥이다’

2차 수정

박정희(朴正熙, 1917~1979) 전 대통령이 1958년 5월부터 1961년 8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관사로 이주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5.16 군사정변을 계획했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서거 후에는 유족들이 거주하였다.

지상 1층, 지하 1층의 규모로 건축면적 123.97㎡, 연면적 128.93㎡이며, 응접실과 안방, 서재, 부엌 등으로 구성되었다.

1930년대 신당동 지역에는 문화주택*이라고 불리는 서양식 주택단지가 대규모로 조성되었는데, 이 집은 당시의 이 지역 문화주택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가옥이다. 2010년 12월부터 약 1년간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2015년 3월 시민들에게 개방하였다.


  • 문화주택(文化住宅): 일제강점기에 서양주택의 공간구조와 외관을 따라 지어졌던 주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