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서울 신당동 박정희 가옥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박정희 대통령이 1958년 5월부터 1961년 8월 장충동의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공관으로 이주할 때까지 가족과 함께 거주하던 집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1961년 이곳에서 우리나라 현대사의 큰 전환점이 된 5·16을 계획하였다.
이 가옥은 1930년대 후반 조선도시경영주식회사에서 신당동 문화주택지 개발로 조성한 가옥 중 하나로서 한국 주거사의 중요한 자료이다.
수정 국문
초고
박정희(朴正熙, 1917~1979) 전 대통령이 1958년 5월부터 1961년 8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관사로 이주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5.16 군사정변을 계획했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서거 후에는 유족들이 거주하였다.
지상 1층·지하 1층의 규모로 건축면적 123.97㎡, 연면적 128.93㎡이며, 응접실과 안방, 서재, 부엌 등으로 구성되었다. 이 가옥은 1930년대 신당동에 대단위로 조성되었던 문화주택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집으로 우리나라 근대 주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2010년 12월부터 약 1년간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2015년 3월 시민들에게 개방하였다.
1차 수정
박정희(朴正熙, 1917~1979) 전 대통령이 1958년 5월부터 1961년 8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관사로 이주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박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5.16 군사정변을 계획했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서거 후에는 유족들이 거주하였다.
지상 1층, 지하 1층의 규모로 건축면적 123.97㎡, 연면적 128.93㎡이며, 응접실과 안방, 서재, 부엌 등으로 구성되었다.
1930년대 신당동 지역에는 문화주택*이라고 불리는 서양식 주택단지가 대규모로 조성되었는데, 이 집은 당시의 문화주택 중 유일하게 남은 가옥이다. 2010년 12월부터 약 1년간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2015년 3월 시민들에게 개방하였다.
- 문화주택(文化住宅): 일제강점기에 서양주택의 공간구조와 외관을 따라 지어졌던 주택.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 1
- 문화재 명칭이 맞고, 사실관계가 객관적임
- 박 전 대통령 → 박정희 전 대통령
- 문화재 가치 및 의미가 정리되어 표현됨
- 분야별 자문위원 2
-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이주할 때까지~’라는 표현 보다는 ‘이주하기 전까지’라는 게 더 이해하기 좋을 듯합니다.
- ‘남은 가옥이다’-> ‘남아있는 가옥이다’
2차 수정
박정희(朴正熙, 1917~1979) 전 대통령이 1958년 5월부터 1961년 8월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 관사로 이주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이곳에서 5.16 군사정변을 계획했다. 1979년 10월 26일 대통령 서거 후에는 유족들이 거주하였다.
지상 1층, 지하 1층의 규모로 건축면적 123.97㎡, 연면적 128.93㎡이며, 응접실과 안방, 서재, 부엌 등으로 구성되었다.
1930년대 신당동 지역에는 문화주택*이라고 불리는 서양식 주택단지가 대규모로 조성되었는데, 이 집은 당시의 이 지역 문화주택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가옥이다. 2010년 12월부터 약 1년간의 복원공사를 마치고 2015년 3월 시민들에게 개방하였다.
- 문화주택(文化住宅): 일제강점기에 서양주택의 공간구조와 외관을 따라 지어졌던 주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