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서산 경주김씨 고택
목차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이 가옥이 세워진 건축연대에 대한 기록은 없으나 건립 당시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는 안채와 사랑채의 건축양식으로 볼 때 19세기 중반으로 추정된다. 한다리에 경주김씨가 500년 전부터 터전을 잡아 살았다는 고증에 의하면 김기현(金基顯)의 선조가 건축한 것으로 전해오는 건축물이다.
안채와 사랑채는 1층 기단을 마련하여 그 위에 가공하지 않은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운 후 홑처마 팔작지붕을 얹은 기와집이다. 'ㅡ'자형의 행랑채 뒷편에 동향(東向)한 'ㅁ'자형의 안채와 남향(南向)한 'ㅣ'자형의 사랑채가 있다. 이 집은 햇볕을 감안하여 배치한 안채의 남도식(南道式) 평면구성이며 3칸의 잘 보존된 초당과 사랑채 남향에 연결하여 50센티 높이의 팔각 주춧돌에 세 기둥으로 세워진 차양채가 특이하다.
수정 국문
초고
음암면 유계리에 거주하던 유력 사족인 경주김씨의 오래된 집이다. 한다리라 부르는 평지 마을의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건축된 전통 목조의 기와집이다. 좌향은 북동향이다. 19세기 중엽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ㄷ자형의 안채와 ㄱ자형의 사랑채가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ㅁ자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중문을 들어서면 안마당이 있고 그 오른쪽에 정면 6칸의 안채가 배치되어 있다. 중앙에 2칸 통칸의 대청이 놓이고 좌우에 안방과 건넌방이 있다. 이어서 부엌과 고방이 붙어있다. 건물구조는 잘 다듬어진 1단의 장대석 기단 위에 기둥을 받치는 네모뿔형 주초석을 놓고 각기둥을 세웠다. 상부 가구(架構)는 1고주(高柱)5량가(樑架)이며,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사랑채는 단순한 구조의 3칸집이며, 그 남쪽에 단 차양시설은 팔각기둥을 세우고 맞배지붕을 얹었다. 안채의 뒤뜰에는 3칸의 초가집이 있는데, 일종의 공부방으로 쓰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행랑채는 7칸 규모로서 부엌과 광·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왼쪽 끝에 바깥대문이 설치되어 있다. 옆에는 정순왕후 생가가 있다.
문맥요소
- 가구(架構) - 구조 - 기둥이나 공포 위에 얹혀 내부공간을 형성하는 구조나 구조물의 총칭이다. 목구조에서는 보[樑]·도리(道里)·대공(臺工) 등으로 구성된 지붕가구와 창방(昌枋)·인방(引枋)·주선(柱椬) 등으로 이루어진 벽체가구 등으로 구분된다.
- 1고주(高柱)5량가(樑架) - 구조 – 하나의 고주에 서까래를 받치는 도리가 5개인 구조로 지어진 집
- 행랑채 – 구조 – 주택의 바깥 부분인 대문 양쪽에 붙어있는 주거공간.
검토의견
- 김연(1494-?) - 조선 전기의 무신. 경주김씨 서산 입향조. 원래 서울 저동에 살다가 말년인 1500년대 중반 한다리(지금의 서산 유계리)에 터를 잡음. 이후 경주김씨가 서산 지역의 명문 사족으로 번성함.
- 북동향? - 사진으로 봐서는 남향인듯.
- 대문채, 행랑채, 사랑채, 안채, 별채, 초당
- 사랑채 앞의 차양채
- 정순왕후에 대한 설명 + 정순왕후 생가와 이 집의 관계 (향문에 따르면 정순왕후 생가의 작은댁이라고 함.)
1차 수정
경주 김씨 가문의 사람들이 살아온 조선시대의 전통 가옥이다. 안채와 사랑채의 건축 양식으로 보아 19세기 중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문 안쪽에 사랑 마당이 있고, 사랑 마당 동쪽에 ‘ㅡ’자형 행랑채, 서쪽에 ‘ㄱ’자형 사랑채, 사랑채 후면에 ‘ㄷ’자형 안채가 자리하고 있다.
이 집이 위치한 서산 한다리 마을은 16세기 중반부터 경주 김씨 가문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이 건물과 옆에 있는 정순왕후 생가는 이 집안이 서산 지역의 명문가로 번성하였던 자취를 담고 있다.
자문의견
- 건축, 근대 위원 1
- 설명이 명쾌하지 않고 사실관계가 잘못되어 전반적으로 재작성이 요구됩니다. 서산경주김씨 고택 문화재청 기록화보고서(2017)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 건축, 근대 위원 2
- 문화재 명칭이 맞고, 사실관계가 객관적임
- 배치 및 평면 형태의 표현 방식 통일 예) ㄱ자형 → ‘ㄱ’자형
- 명칭이나 인명 등 정확히 표기하고 있음
- 문화재의 독창성이나 건축적 특징이 부각될 필요가 있음.
2차 수정
경주김씨 가문의 사람들이 살아온 조선시대의 전통 가옥이다. 건축 양식으로 보아 19세기 중반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대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사랑채가 있고 왼쪽과 오른쪽에는 각각 행랑채와 별채가 있다. 별채 옆에는 초당이 있으며, 별채 맞은편 중문을 통해 안채가 있는 안마당으로 들어갈 수 있다. 고택 내 건물들은 문화재 지정 이후 모두 해체·보수하였으며, 2010년부터 한옥 체험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되면서 일부 현대식으로 개조하였다.
이 집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은 사랑채에 설치한 차양이다. 사랑채 툇마루 앞에 기둥을 세우고 차양을 덧달아 넓은 공간을 확보하였고, 차양과 사랑채 지붕 사이에는 함석으로 만든 홈통을 두어 빗물이 흘러나갈 수 있도록 하였다.
이 집이 위치한 서산 한다리마을은 16세기 중반부터 경주김씨 가문의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곳이다. 이 건물과 옆에 있는 정순왕후 생가는 이 집안이 서산 지역의 명문가로 번성하였던 자취를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