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산청 사월리 석조여래좌상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금선암(金仙庵)에 본존으로 모셔져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불상이다. 원래는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의 절터에 묻혀 있던 것을 1957년에 금선암의 보살이 이곳으로 옮겨 모셨다.
불상 높이 133cm, 대좌 높이 87cm로 앉아 있는 모습이다. 머리카락은 소라모양의 나발(螺髮)로 되었으나 상투 모양의 육계(肉髻)는 없다. 얼굴과 코는 조금 길게 표현되어 어색하나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다.
어깨가 넓은데 비해 허리는 가늘고 무릎은 조금 크고 두껍게 표현되어 통일신라 후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배 앞의 왼손에는 둥근 약그릇(藥器)이 들려 있어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로 생각되고 있다.
테두리가 깨진 광배는 두 줄의 굵은 선으로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나누었고, 신광 아래에는 부처에게 무릎 꿇고 공양을 손으로 바치고 있는 공양자상(供養者像)이 양쪽 모두에 새겨있다.
대좌는 연꽃무늬를 새긴 팔각의 상대(上臺), 8면에 보살상 등을 새긴 중대(中臺), 커다란 8장의 겹연화문을 돌린 하대(下臺)의 세부분으로 되었는데, 돋을새김이 두텁고 아름답다.
통일신라 후기 불상의 귀중한 예로서 높이 평가되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사원리의 소괴사지(消怪寺址)에 묻혀 있던 것을 1957년 금선암(金仙庵)의 박수(朴守)라는 보살이 수습하여 옮겨왔다.
불상을 안치한 대좌(臺座)와 불상 뒤의 광배(光背)를 모두 갖추고 있으나 많은 부분이 깨진 상태이다. 불상의 얼굴 부위와 오른쪽 무릎이 훼손된 것을 시멘트로 보수해 놓았다.
높이 133cm의 불상은 머리에 작은 소라 모양의 머리칼이 표현되어 있으며, 양 눈썹 사이에는 구슬 모양이 새겨져 있다. 이것은 부처의 양 눈썹 사이에 난 희고 빛나는 털을 나타내며, 부처의 자비가 온 세계에 비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오른손은 손끝이 땅을 향하고 있으며, 배꼽 부근에 놓인 왼손에는 약합이 들려있어 약사여래불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인다.
부처의 몸에서 나는 빛을 표현한 광배는 연꽃무늬, 구름무늬, 공양 올리는 모습 등이 새겨져 있다.
8각의 대좌는 보살상과 신장상, 큼직한 연꽃무늬 등이 조각되어 있는 통일신라 후기의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머리에 비해 얼굴이 길고, 어깨는 넓지만 허리를 잘록하게 표현한 것 역시 통일신라 후기에 만들어진 불상의 특징이며, 이 불상은 통일신라 후기 불상의 귀중한 예로서 높이 평가된다.
- 얼굴 시멘트 보수 언제 이루어졌는지 확인 필요.
1차 수정
이 불상은 약사불을 나타낸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약사불은 모든 중생의 질병을 고쳐주고 수명을 연장해주며, 재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음식과 옷을 제공해준다고 여겨진다.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예로부터 일반 민중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원래 산청 사월리의 한 절터에 묻혀있던 것을 1957년 진주 금선암의 보살이 수습하여 옮겨왔다. 배꼽 부근에 놓인 왼손에는 약그릇을 들고 있는데, 이는 약사불을 상징하는 가장 큰 특징이다. 불상의 얼굴 부위와 오른쪽 무릎은 시멘트로 보수해 놓았다.
불상을 안치한 대좌와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를 모두 갖추고 있지만, 많은 부분이 깨진 상태이다. 대좌에는 보살상과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상 등을 새겼고, 광배에는 연꽃무늬와 구름무늬 등을 새겼다.
자문의견
- 불교문화재 위원1
- 직접 수정
- 불교문화재 위원2
- “1957년 진주 금선암의 보살이 수습하여 옮겨왔다.”-> 1957년 진주 금선암으로 이안했다.
- “시멘트로 보수해 놓았다.”-> 근세에 보수한 것이다.
-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를 모두 갖추고 있지만, 많은 부분이 깨진 상태이다. ”-> 광배는 훼손이 심한 상태이다.
- “대좌에는 보살상과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상 등을 ”-> 근거 없음.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으니 공양상 혹은 천인 정도로 완화하는 게 좋겠음.
- 기존문안 참고하여 통일신라 하대의 조각으로서 이 상이 보이는 특징에 대해 덧붙일 필요가 있음.
-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배꼽 부근에 놓인 왼손에는 약그릇을 들고 있는데, → 배꼽 부근에 놓인 왼손으로 약그릇을 들고 있는데
- 광배에는 연꽃무늬와 구름무늬 등을 새겼다. → 광배에는 연꽃무늬, 구름무늬와 부처에게 무릎 꿇고 공양을 손으로 바치고 있는 공양자상 등을 새겼다.
2차 수정
이 불상은 약사불을 나타낸 것으로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약사불은 모든 중생의 질병을 고치고 수명을 연장해주며, 재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음식과 옷을 제공해준다고 여겨진다. 인간의 생로병사 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러한 특성 때문에 예로부터 일반 민중들들로부터 인기 있는 신앙의 대상이었다.
원래 산청 사월리의 한 절터에 묻혀있던 것을 1957년 진주 금선암으로 옮겨왔다. 배꼽 부근에 놓인 왼손에는 약그릇을 들고 있는데, 이는 약사불을 상징하는 가장 큰 특징이다. 불상의 얼굴 부위와 오른쪽 무릎은 시멘트로 보수하였다.
불상을 안치한 대좌와 부처의 몸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나타내는 광배를 모두 갖추고 있지만, 많은 부분이 깨진 상태이다. 광배에는 연꽃무늬, 구름무늬와 부처에게 무릎 꿇고 공양을 바치고 있는 공양자상 등을 새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