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산청 단속사지 동 삼층석탑
2021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 '단속사지동 ·서 삼층석탑'으로 안내판이 되어있어 확인이 필요함
단속사지의 법당자리 앞에 동·서로 세워졌던 통일신라시대의 쌍탑이다. 기단은 이중으로 아래기단은 각 면이 하나의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수평을 이루고 있는 지붕돌 아래에는 다섯 개의 주름이 있다. 동·서 두 탑은 양식이나 규모가 비슷하여 같은 시기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으나, 서탑은 파손이 심한 편이다. 상륜부(相輪部)는 노반(露盤), 복발(覆鉢), 앙화(仰花) 앙화 등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1967년의 해체 보수 때에 서탑의 일층 몸돌의 윗부분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넣는 둥근 모양의 사리공이 확인되었다. 이 탑들은 신라계 양식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다소의 생략을 보이는 9세기 석탑의 정형을 보이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이 삼층석탑은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99년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단속사지(斷俗寺地)의 법당터 앞 동쪽에 세워져 있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의 모서리와 중앙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는데, 아래층 중앙에는 2개가 있고 위층에는 1개만 있다.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도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그 외의 별다른 장식은 없다. 지붕돌은 5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경쾌하게 반전을 이룬 처마 끝에는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기 위한 사각형 부재인 노반(露盤)을 비롯해 연꽃으로 장식한 복발(覆鉢)과 앙화(仰花) 등 장식 일부가 남아 있다.
탑은 1972년에 해체 및 수리가 이루어졌으며, 2015년 보존처리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 탑의 서쪽에 서탑이 함께 세워져 있는데, 파손이 심한 편이다. 1967년의 해체 보수 때에 서탑의 일층 몸돌의 윗부분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넣는 둥근 모양의 사리공이 확인되었다. 동탑과 거의 비슷한 양식으로 제작되었다.
- 탑이 위치한 단속사는 경덕왕 7년(748)에 대나마 이순(李純)이 창건했다는 설과 경덕왕 22년(763) 신충(信忠)이 창건했다는 2가지 설이 전한다. 신행(神行)의 제자인 삼륜이 헌덕왕 5년(813) 헌덕왕비의 적극적 후원을 받아 크게 성장하였는데, 석탑은 이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보이며, 정유재란 때 전소된 것으로 전한다. 재건된 이후 최치헌의 유허로 기능하며 존속하다가 19세기 무렵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1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단속사지 동 삼층석탑은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99년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법당터 앞 동쪽에 세워져 있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의 모서리와 가운데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는데, 아래층 중앙에는 2개가 있고 위층에는 1개만 있다.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도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그 외의 별다른 장식은 없다. 지붕돌은 5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경쾌하게 반전을 이룬 처마 끝에는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기 위한 사각형 부재인 노반(露盤)을 비롯해 연꽃으로 장식한 복발(覆鉢)과 앙화(仰花) 등 장식 일부가 남아 있다.
탑은 1972년에 해체 및 수리가 이루어졌으며, 2015년 보존처리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자문의견
- 분야별 자문위원 1
- 1999년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법당터 앞 동쪽에 세워져 있다. -> 발굴조사 결과 탑은 서탑과 함께 금당 앞에 쌍탑으로 조성되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 탑은 상・하 이중기단과 3층 탑신부로 구성된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 삼층석탑이며, 상륜부 일부가 남아 있다.
-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기 위한 사각형 부재인 노반(露盤)을 비롯해 연꽃으로 장식한 복발(覆鉢)과 앙화(仰花) 등 장식 일부가 남아 있다. -> (머리장식X -> 상륜부) 탑의 꼭대기에는 상륜부를 받치는 사각형 부재인 노반이 있으며, 그 위에는 복발과 앙화 등 상륜부의 부재가 일부 남아 있다.
- 서탑과 함께 쌍탑으로 조성된 것이며, 통일신라 8세기 후반~9세기 쌍탑의 전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작품임을 명시해야 함.
- 머리장식 -> ‘상륜부’로 복구 검토 필요, ‘상륜’이라는 표현은 초기불교용어로 전법륜(轉法輪)을 상징하는 고유명사임. 머리장식이라는 표현은 석탑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예품에도 사용되고 있어 명칭의 고유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음.
- 분야별 자문위원 2
- 단속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 35대 경덕왕 당시 창건한 사찰이다. 조선 초기까지 교종에 속했으며, 폐사된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원 위치에 단속사지 3층의 동․서탑이 나란히 서 있다.
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축조물로 불상과 함께 부처를 대신하는 상징물로 신성하게 여겨지며, 이 탑은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신라석탑양식을 갖고 있다. 기단은 네 모서리와 가운데에 버팀기둥을 조각하였는데, 가운데 버팀 기둥은 아랫단은 2개, 윗단은 1개만 있다. 각 층 몸돌 모서리에도 버팀기둥이 새겨져 있고, 그 외의 별다른 장식은 없다. 지붕돌은 5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경쾌하게 반전을 이룬 처마 끝에는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기 위한 사각형 부재인 노반(露盤)을 비롯해 연꽃으로 장식한 복발(覆鉢)과 앙화(仰花) 등 장식 일부가 남아 있다.
1972년에 해체 수리 하였고 2015년 보존처리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몸돌과 지붕돌의 체감비율이 알맞은 단아한 양식의 석탑으로 평가된다.
- 단속사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 제 35대 경덕왕 당시 창건한 사찰이다. 조선 초기까지 교종에 속했으며, 폐사된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원 위치에 단속사지 3층의 동․서탑이 나란히 서 있다.
-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단속사지 동 삼층석탑은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사이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1999년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법당터 앞 동쪽에 세워져 있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의 모서리와 가운데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는데, 아래층 중앙에는 2개가 있고 위층에는 1개만 있다.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도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그 외의 별다른 장식은 없다. 지붕돌은 5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경쾌하게 반전을 이룬 처마 끝에는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기 위한 사각형 부재인 노반(露盤)을 비롯해 연꽃으로 장식한 복발(覆鉢)과 앙화(仰花) 등 장식 일부가 남아 있다.
탑은 1972년에 해체 및 수리가 이루어졌으며, 2015년 보존처리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2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단속사지 동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인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1999년 발굴조사 결과 이 탑은 서탑(보물 제73호)과 함께 금당 앞에 쌍탑으로 조성되어 있었음이 확인되었다. 동탑은 1972년에 해체 및 수리가 이루어졌으며, 2015년 보존처리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탑은 2단의 기단, 3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의 모서리와 가운데에는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는데, 아래층 중앙에는 2개가 있고 위층에는 1개만 있다. 각 층 몸돌의 모서리에도 기둥 모양이 새겨져 있고, 그 외의 별다른 장식은 없다. 지붕돌은 5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경쾌하게 반전을 이룬 처마 끝에는 풍경을 달았던 흔적이 남아 있다. 탑의 꼭대기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기 위한 사각형 부재인 노반(露盤)을 비롯해 연꽃으로 장식한 복발(覆鉢)과 앙화(仰花) 등 장식 일부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