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보리암 전 삼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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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이 탑은 금산정상의 절벽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보리람와 인접해 있기 때문에 보리암전 삼층석탑으로 불리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683년(신문왕3)에 원효대사가 금산에 처음으로 절을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가락국의 수로왕비인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으로 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허태후가 가져온 부처의 사리를 이곳에 안치하게 위해 탑을 세웠다고 한다. 그러나 이 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양식 또한 고려초기의 것이기 때문에 전하는 이야기와는 사실상 거리가 멀다. 이 탑의 형식은 커다란 돌 하나로 된 단층받침을 세우고 면석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으며 그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각층 몸체의 사면에는 모서리 기둥을 새겼다. 지붕들의 처마에는 4단의 받침이 있으며 약간의 경사를 두면서 자연스럽게 처리되었다. 꼭대기 부분에는 구슬모양의 보주가 남아있다.
수정 국문
초고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이 탑은 보리암(菩提庵)이라는 암자와 가까운 남해 금산 꼭대기에 자리하고 있는 삼층석탑으로 고려 전기의 탑으로 추정된다.
2층 바닥돌 위에 3층으로 이루어진 몸돌을 놓고 머리장식을 얹었다. 아래층 바닥돌의 각 면에는 2개씩의 안상(眼象)을 얕게 조각하였다. 위층 바닥돌은 아래층에 비해 폭이 크게 줄었다. 몸돌부의 몸돌 각 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가지런히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처마는 직선을 유지하다 네 귀퉁이로 갈수록 두툼해지면서 위로 솟았다. 꼭대기에는 구슬모양의 장식이 있다.
1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전설에 따르면 이 탑은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의 왕비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었다고도 하고. 신라의 승려 원효대사가 금산에 절을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고도 한다. 그러나 탑의 양식으로 볼 때 실제로는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2층 바닥돌 위에 3층으로 이루어진 몸돌과 지붕돌을 놓고 구슬 모양의 머리장식을 얹었다. 아래층 바닥돌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을 2개씩 얕게 조각하였다. 위층 바닥돌은 아래층에 비해 폭이 크게 줄었다. 몸돌부의 몸돌 각 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가지런히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처마는 네 귀퉁이로 갈수록 두툼해지면서 위로 솟았다.
자문의견
- 불교문화재 위원1
- 불교문화재 위원2
- 불탑은 원래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당연히 유골이 없으므로 굳이 쓸 필요가 없음)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 불탑으로 따로 구분할 필요가 없음. 탑 자체가 원래 부처의 분묘이므로. 승탑의 용어가 일반화되고 있기는 하지만 탑은 그대로 탑을 쓰고 승탑만 구분하면 됨.
- 용어를 좀 더 쉽게 쓰는 게 좋겠음. 몸돌-> 탑신, 지붕돌-> 지붕. 1층 탑신과 지붕, 2층 탑신과 지붕 이런 식으로 써도 무방하리라고 봄.
- “몸돌부의 몸돌 각 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을 가지런히 새겼다.”-> 모든 층의 탑신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2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전설에 따르면 이 탑은 금관가야의 시조인 수로왕(42~199 재위)의 왕비 허황옥(?~188)이 인도에서 가져온 돌로 만들었다고도 하고. 신라의 승려 원효대사(617~686)가 금산에 절을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고도 한다. 그러나 탑의 양식으로 볼 때 실제로는 고려 전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 탑은 풍수지리상 땅의 기운이 약한 곳을 채우기 위해 세우는 비보탑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2층으로 된 기단 위에 3층으로 이루어진 몸돌과 지붕돌을 놓고 구슬 모양의 머리장식을 얹었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안상(眼象)을 2개씩 얕게 조각하였다. 위층 기단은 아래층에 비해 폭이 크게 줄었다. 모든 몸돌의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3단씩이고, 처마는 네 귀퉁이로 갈수록 두툼해지면서 위로 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