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김흥근 선생 묘
2020 국문
초고
조선후기의 세도정치가 김흥근(金興根, 1796~1870)과 부인을 합장한 묘.
세도정치란 왕의 신임을 얻은 신하나 외척이 강력한 정치권을 행사하여 나라를 운영하던 정치형태로 순조·헌종·철종대의 안동김씨와 풍양조씨의 외척가문을 이른다.
김흥근은 안동김씨의 세도정치를 이끈 김조순(1765~1832)의 일가이다. 순조대에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이조참판·평안도관찰사·형조판서·좌참찬 등 내외 요직을 엮임하였다. 헌종대에는 예조판서를 거쳐 경상도관찰사가 되었으나, 조정을 주무르고 임금의 권한을 억눌렀다는 대간의 탄핵을 받아 광양에 잠시 유배되었다. 철종이 즉위하면서 재집권한 안동김씨의 세도로 한성부판윤으로 등용되었다가, 좌의정과 영의정이 되었다. 고종이 즉위한 후에는 지실록사가 되어 『철종실록』을 편찬했고, 영돈령부사를 끝으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창의문 밖에는 삼계동정사라는 그의 별장이 있었는데, 흥선대원군이 고종의 행차를 이용하여 넘겨받았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묘역은 2단으로 조성되어 있다. 상단에는 호석을 두른 원형봉분이 있고, 바로 우측에 묘비가 있다. 하단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그 우측에는 제주석이 있으며, 아래쪽 좌우측에 망주석이 세워져 있다.
묘비 앞면에는 1876년에 안동김공 김홍근과 정경부인 청송심씨를 합장했다는 비문이 음각되어 있다. 비문은 영의정 이경재가 짓고, 글씨는 좌의정 송근수가 썼으며, 전자는 공조판서 이시민이 썼다.
수정
조선 후기의 세도정치가 김흥근(金興根, 1796~1870)과 부인 청송심씨의 합장묘다.
김흥근은 왕의 외척이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면서 나라를 운영하던 세도정치기에 외척가문 중 하나였던 안동김씨 출신 김조순(金祖淳, 1765~1832)의 일가이다. 순조 25년(1825) 과거에 급제한 뒤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으며, 권세를 믿고 방자한 행동을 하였다는 이유로 탄핵되어 유배당하기도 하였다. 철종 3년(1852) 영의정에까지 올랐다. 창의문 밖에는 삼계동정사라는 그의 별장이 있었다.
묘역에는 호석을 두른 원형 봉분이 있고, 오른쪽에 묘비가 있다. 봉분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 제주석(祭酒石)이 있으며, 좌우에 망주석이 세워져 있다. 묘비 전면에는 고종 13년(1876) 안동김공 김흥근과 정경부인 청송심씨의 합장 사실이 새겨져 있다. 후면은 영의정 이경재(李景在, 1800~1873)가 글을 짓고, 글씨는 좌의정 송근수(宋近洙, 1818~1903)가 썼으며, 공조판서 이시민(李時敏, 1797~1883)이 전서체로 제액(題額)*을 썼다.
- 제액(題額): 비석의 상단부에 새긴 비의 명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