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김제 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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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이곳은 조선시대 김제 고을의 수령이 기거하던 살림집이다. 관아는 외동헌과 내동헌으로 나뉘는데, 외동헌은 사무처로 흔히 이를 동헌이라 불렀으며, 내동헌은 수령의 처소이다. 김제 내아는 내동헌으로 조선 현종 8년(1667)에 세운 문화재로서 현재는 동쪽이 트인 <ㄷ>자형 안채 건물 하나만 남아있지만 원래는 여러 부속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춧돌이나 기둥, 처마에 쓰인 목재가 모두 질이 좋고 정성껏 다듬은 것들이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동헌과 함께 남아있는 내아로서 중요한 학술자료로 평가된다.

수정 국문

초고

내아는 조선시대 고을 수령의 처소로, 수령이 업무를 마친 후 휴식을 취하는 장소이자 가족이 기거하는 살림집이기도 했다. 관아 입구에서 가장 멀리 위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나 김제 동헌의 내아는 동헌의 바로 뒤편에 위치해 있다.

지금은 ‘ㄷ’자형의 안채만 남아있지만, 본래 여러 부속건물이 있었다고 하며, 1667년 처음 세워졌다고 전한다.

중문을 통해 진입하면 중앙의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각각 온돌방과 부엌이 있다. 오른편은 부엌이 가장 바깥에 위치하는데 비해 왼편은 방과 방 사이에 부엌이 있다./ 동쪽이 트인 건물로, 북쪽에는 동편에 큰 규모의 부엌이 있고 안쪽으로 2개의 방이 있다. 남쪽에는 방과 방 사이에 부엌이 있다. 서쪽의 마루를 통해 양쪽이 연결된다. 마루는 한 칸이 다른 곳에 비해 낮은데, 여기에는 내아를 찾아온 사람들이 문턱이 낮아야 편하게 수시로 오간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한다.

주춧돌이나 기둥, 처마에 쓰인 목재는 모두 질이 좋고 정성껏 다듬은 것들이다.

1981년 복원,보수되었으며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동헌과 함께 남아있는 내아로 중요한 학술자료로 평가된다.

1차 수정

내아는 조선시대 지방 관아에 있던 수령의 처소로, 수령이 업무를 마친 후 휴식을 취하는 장소이자 가족이 함께 사는 살림집이기도 했다.

김제 내아는 1667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내아는 관아 입구에서 가장 멀리 위치하지만, 김제 내아는 동헌의 바로 뒤편에 있다. 원래 여러 부속건물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ㄷ’자형의 안채만 남아있다.

중앙의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2개의 온돌방과 부엌이 있고, 오른쪽에는 다락이 딸린 부엌과 1개의 온돌방이 있다. 마루는 가운데 한 칸이 다른 곳에 비해 낮은데, 여기에는 내아를 찾아온 사람들이 문턱이 낮아야 편하게 수시로 오간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한다.

자문의견

  1. 건축, 근대 위원 1
    • 적절함
  2. 건축, 근대 위원 2
    • 문화재 명칭이 맞고, 사실관계가 객관적임
    • 전문용어의 사용이 적절함.
    • 문안 첫문장에는 ‘내아’로 표기, 두 번째 문장에는 ‘김제 내아’로 표기되어 있어 ‘김제내아’로 통일할 필요가 있음.
    • 독창성이나 문화재의 건축적 특징이 부각될 필요가 있으며, 마지막 문장에서 ‘...들어 있다고 한다.’의 문화재 의미에 대한 피동적 문안은 확인 검토 요망.

2차 수정

내아는 조선시대 지방 관아에 있던 수령의 처소로, 수령이 업무를 마친 후 휴식을 취하는 장소이자 가족이 함께 사는 살림집이기도 했다.

김제 내아는 1667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적으로 내아는 관아 입구에서 가장 멀리 위치하지만, 김제 내아는 동헌의 바로 뒤편에 있다. 원래 여러 부속건물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ㄷ’자형의 안채만 남아있다.

중앙의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2개의 온돌방과 부엌이 있고, 오른쪽에는 다락이 딸린 부엌과 1개의 온돌방이 있다. 마루는 가운데 한 칸이 다른 곳에 비해 낮은데, 여기에는 내아를 찾아온 사람들이 문턱이 낮아야 편하게 수시로 오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