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김제 구 백구 금융조합
2020 안내문안 초안 작성 지원 사업
기존 국문
이 건물은 일본인들의 경제 수탈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소규모 금융조합 건물이다. 현관이 돌출된 丁자형 평면에, 지붕은 함석을 얹어 마무리하였고, 내부는 금융회사의 건물답게 비교적 높은 천장으로 구성되었다. 곡창지대인 김제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반출해 가는 데 선봉적 역할을 했던 수탈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일제의 경제 수탈을 목적으로 설립된 지방 금융조합의 건물이다.
흰색 외벽의 건물은 돌출된 현관과 철제 금고가 설치된 뒤편 벽으로 인해 십(十)자형 구조로 되어 있다. 앞으로 돌출되어 있는 현관 상부의 박공면에는 작은 창이 나있다. 세로로 긴 창문에는 굵은 철사를 격자형으로 끼워 넣어 도난에 대비하였다. 천장이 비교적 높고, 외부로 통하는 문이 좌우에 각각 1개씩 나 있다. 원래 있던 함석지붕은 2012년 태풍으로 유실되어 보수하였다.
지방금융조합은 겉으로는 농민들에게 농업 자금을 빌려주면서 농산물을 위탁 판매하고 종자나 농기구를 대여해 주는 업무까지 겸하는 신용조합을 표방하면서 생겨났다. 그러나 실제로는 총독부가 직접 통제하며 농촌을 식민지경제로 편입 종속시키는 말단기관이었으며, 백구 금융조합이 발족한 1929년부터는 금융 업무만을 담당했다.
백구 금융조합은 근처에 있던 부용역의 이름을 따서 ‘부용 금융조합’으로도 불렸으며, 한 때 3개 면을 관장하며 직원을 22명까지 둘 정도로 규모가 있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금융조합 등이 농업은행으로 변경되면서 1956년부터 농업은행의 지점으로 사용되었으며, 단위농협으로 체제를 바꾸면서 백구농협이라는 간판을 달기도 했다.
이곳은 곡창지대였던 김제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반출하면서 농민들을 착취했던 일제 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아 2005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1차 수정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경제 수탈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지방 금융조합의 건물이다. 금융조합은 겉으로는 신용조합을 표방하였으나, 실제로는 총독부가 직접 통제하며 농촌을 식민지경제에 종속시키는 말단기관이었다.
1929년에 발족한 백구 금융조합은 곡창지대인 김제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반출하면서 농민들을 착취하는 데 선봉적인 역할을 하였다. 한때 3개 면을 관장하며 직원을 22명까지 둘 정도로 규모가 있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에는 금융조합이 농업은행으로 변경되면서 1956년부터 농업은행의 지점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에는 백구농협 사무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흰색 외벽의 건물은 십(十)자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앞쪽에는 현관이 돌출되어 있고 뒤쪽은 철제 금고가 설치되어 있다. 세로로 긴 창문에는 굵은 철사를 격자형으로 끼워 넣어 도난에 대비하였다. 내부는 천장이 높고, 외부로 통하는 문이 좌우에 각각 1개씩 나 있다. 원래 있던 함석지붕은 2012년 태풍으로 유실되어 보수하였다.
자문의견
- 건축, 근대 위원1
- “선봉적인 역할을 하였다.” -> “앞장섰다.”
- “흰색 외벽의 건물은 십(⼗자형 구조로 되어 있으며”-> “흰 건물은 십(⼗자형 평면으로 계획되었으며”
- 건축, 근대 위원2
- 문화재 명칭이 맞고, 사실관계가 객관적임
- 용어의 사용이 적절함.
- ‘흰색 외벽의 건물은 십(十)자형 구조로...’ → 기존 자료에 ‘丁’자형 평면으로 기술되어 있어 평면 형태 확인 후 작성할 필요가 있음.
참고) 보편적으로 본체는 ‘―’자형에 현관부가 돌출된 평면을 ‘T’자형 평면으로 기술하고 있고, 이와 함께 건물의 후면에 돌출되어 있는 평면구조이면 ‘十’ 자형 평면으로 기술함
- 문화재 가치 및 의미 서술이 적절함.
- 읽기쉬운문안 자문위원
- 3개면”이라는 표현이 있는데 구체적으로 어디인지 표기를 해주면 얼마나 넓은 지역의 쌀을 거둬들였는지 일반인들이 가늠하는데 좀더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2차 수정
일제강점기 일본인들의 경제 수탈 정책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지방 금융조합의 건물이다. 금융조합은 겉으로는 신용조합을 표방하였으나, 실제로는 총독부가 직접 통제하며 농촌을 식민지경제에 종속시키는 말단기관이었다.
1929년에 발족한 백구 금융조합은 곡창지대인 김제 지역에서 생산된 쌀을 반출하면서 농민들을 착취하는 데 앞장섰다. 한때 3개 면을 관장하며 직원을 22명까지 둘 정도로 규모가 있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에는 금융조합이 농업은행으로 변경되면서 1956년부터 농업은행의 지점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에는 백구농협 사무소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흰색 외벽의 건물은 십(十)자형 평면으로, 앞쪽에는 현관이 돌출되어 있고 뒤쪽은 철제 금고가 설치되어 있다. 세로로 긴 창문에는 굵은 철사를 격자형으로 끼워 넣어 도난에 대비하였다. 내부는 천장이 높고, 외부로 통하는 문이 좌우에 각각 1개씩 나 있다. 원래 있던 함석지붕은 2012년 태풍으로 유실되어 보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