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공주 수촌리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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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백제 시대 한성기 지방 세력의 모습을 보여주는 공주 수촌리 고분군.

수촌리 고분군은 2003년 9월에 발굴을 통해 알려진 백제 시대 한성기 지방 세력의 무덤이다. 고분군은 나지막한 구릉에 위치하는데, 서쪽으로는 넓은 수촌들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천태산과 이어진다.

수촌리 고분군은 백제 시대에 만들어진 널무덤[토광묘] 3기, 굴식 돌방무덤[횡혈식 석실묘] 4기, 돌덧널무덤[수혈식 석곽묘] 3기 등 다양한 무덤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무덤 안에서는 금동관모(金銅冠帽)와 귀걸이 등 다양한 장신구와 무기, 마구(馬具), 중국제 자기, 백제 토기와 같은 화려한 껴묻거리[副葬品]가 출토되었다.

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모, 금동신발, 금동제 귀걸이, 구슬 등의 장신구와 중국제 자기는 백제가 한성을 도읍으로 두었던 시기에 지방의 중요 세력에게 주었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威勢品]이다.

이밖에 무기류인 환두대도[자루에 둥근 고리가 달린 큰 칼]와 재갈과 등자 등 말갖춤새도 많이 출토되었다. 이와 같은 조사성과를 기초로 하여 4세기 말에서 5세기 중반 백제 시대의 중앙에서 지방 사회를 통제하는 방법과 지방사회의 지배층을 중심으로 백제 문화를 수용하는 모습을 살필 수 있게 되었다.

수정 국문

초고

공주 수촌리 고분군은 2002년 공주시에서 계획한 의당농공단지 조성을 위한 지표조사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유적의 존재가 처음 알려졌다. 이후 2003년 정밀지표조사 및 발굴조사가 이루어져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었다.

고분군은 지형에 따라 크게 Ⅰ, Ⅱ의 두 구역으로 나뉜다. Ⅰ구역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초기철기시대 널무덤, 백제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걸치는 돌덧널무덤과 돌방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Ⅱ구역에서는 백제시대 대형 덧널무덤, 앞트기식 돌방무덤, 굴식 돌방무덤, 구덩식 돌덧널무덤 등 무덤 6기가 확인되었다. 무덤 안에서는 금동관모(金銅冠帽)와 귀걸이 등 다양한 장신구와 무기, 마구(馬具), 중국제 자기, 백제 토기와 같은 화려한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이 가운데 백제시대의 무덤에서 나온 부장품들은 백제의 중앙정부에서 지방의 유력자에게 하사한 물품으로 추정되는데, 백제시대 한성의 중앙과 지방의 상호관련성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백제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백제가 웅진으로 수도를 옮기는 과정과 옮긴 이후 백제의 정치상황과 관련해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같은 문헌 자료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보다 명확한 물질적 자료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 밖에 중국제 자기의 경우에는 당시 중국과의 교역관계를 증명하는 자료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여러 측면에서 수촌리 고분군은 1971년 무령왕릉 발굴 이후 최대의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1차 수정

수촌리 고분군은 청동기시대 이후의 집터와 초기 철기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는 유적지이다. 2002년 유적의 존재가 처음 알려졌으며,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었다.

고분군은 지형에 따라 크게 I구역과 II구역으로 나뉜다. I구역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초기철기시대 널무덤, 백제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걸치는 돌덧널무덤과 돌방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II구역에서는 백제시대 대형 덧널무덤, 앞트기식 돌방무덤, 굴식 돌방무덤, 구덩식 돌덧널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475년 백제가 웅진(지금의 공주) 지역으로 도읍을 옮기기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의 묘제가 변화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백제시대의 무덤에서는 금동관모와 귀걸이 등 다양한 장신구와 무기, 마구(馬具), 중국제 자기와 같은 화려한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물들은 백제 중앙정부에서 지방의 유력자에게 하사한 물품으로 추정되며, 4~5세기 백제의 중앙과 지방의 상호관련성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또한 중국제 자기를 통해 당시 중국과 교역관계가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초기 철기->초기철기시대
    • 2003년부터 2004년까지 발굴조사를 통해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었다. -> 2003년부터 연차적으로 이루어진 발굴조사를 통해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었다. (2019년 현재까지 연차적으로 조사되었음(보고서 발간 기준). )
    • 웅진으로 천도한 배경의 하나로도 중요하므로 내용 추가 : 이러한 유물들은 백제 중앙정부에서 지방의 유력자에게 하사한 물품으로 추정되며, 4~5세기 백제의 중앙과 지방의 상호관련성을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 이러한 유물들은 백제 중앙에서 지방의 유력자에게 하사한 물품으로서 4~5세기 백제의 중앙과 지방의 상호 관계를 보여주며, 또한 백제가 천도지로 웅진을 선택한 배경을 살피는 데 중요하다.
    • 또한 중국제 자기를 통해 당시 중국과 교역관계가 이루어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 수촌리 집단이 직접 교역할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는 표현이므로 삭제하는 것이 바람직함
  2. 분야별 자문위원 2
    • 475년 백제가 웅진(지금의 공주) 지역으로 도읍을 옮기기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의 묘제가 변화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 475년 백제가 웅진(지금의 공주) 지역으로 도읍을 옮기기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다양한 양식의 무덤 구조로부터 백제의 묘제가 변화하는 모습을 잘 살펴볼 수 있다.
    • 특히 백제시대의 무덤에서는 금동관모와 귀걸이 등 다양한 장신구와 무기, -> 특히, 백제시대의 무덤에서는 금동관모와 귀걸이 등 장신구와 무기,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청동기시대 이후의 집터와 초기 철기부터 조선시대까지의~
    • 수촌리 고분군의 존재는 현재 지표상에서는 전혀 확인할 수 없는 상태. 지하 발굴조사를 통해 고분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졌다는 부분이 첨가되면 좋을 듯.
    • 수촌리 고분군 Ⅰ,Ⅱ구역 설명 하는 부분을 간략하고 명확하게 구분을 해주는 게 효과적 (자료 참조 <Ⅰ지점에서는 청동기시대∼조선시대에 이르는 주거지와 분묘가 확인되었고, Ⅱ지점에서는 확실한 백제시대 고분 5기가 확인되었다[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공주수촌리고분군(公州水村里古墳群)].)

2차 수정

수촌리 고분군은 청동기시대 이후의 집터와 초기철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고분들이 분포하고 있는 유적지이다. 2002년 유적의 존재가 처음 알려졌으며, 2003년부터 이루어진 발굴조사를 통해 다양한 유구와 유물이 확인되었다.

고분군은 지형에 따라 크게 I구역과 II구역으로 나뉜다. I구역에서는 청동기시대 주거지, 초기철기시대 널무덤, 백제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걸치는 돌덧널무덤과 돌방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II구역에서는 백제시대 대형 덧널무덤, 앞트기식 돌방무덤, 굴식 돌방무덤, 구덩식 돌덧널무덤 등이 확인되었다. 475년 백제가 웅진(지금의 공주) 지역으로 도읍을 옮기기 이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백제의 묘제가 변화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특히 백제시대의 무덤에서는 금동관모와 귀걸이 등 장신구와 무기, 마구(馬具), 중국제 자기와 같은 화려한 부장품이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물들은 백제 중앙에서 지방의 유력자에게 하사한 물품으로, 4~5세기 백제의 중앙과 지방의 상호 관계를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