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공주 금학동 고분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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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공주 금학동 고분군의 존재는 이미 일제시대부터 알려졌다. 1960년대에는 궁륭식 석실분이 발견되었으며, 1989년 옥룡터널 건설공사 시에는 횡혈식 석실분 2기가 발견되어 조사되었다. 2000년 발굴조사에서는 백제시대 횡혈식 석실분을 중심으로 고려 및 조선시대 분묘 등 43기의 고분이 확인되었다. 금학동 고분군은 초기 궁륭식 석실분에서 무령왕릉 이후 백제 횡혈식 석실분으로의 변화상을 보여 주며, 그 중 횡혈식 석실분 2호분은 25~80cm 정도의 봉토(封土)가 덮여 있어 백제고분의 봉분(封墳) 현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준다. 더욱이 부장(副葬)된 각종 토기와 금은제 장식품들은 백제 웅진시대 지배세력의 사회 ‧ 문화상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공주 금학동 고분군은 일제 강점기인 1933년 금학동 일대에 6기의 굴식 돌방무덤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이후 1968년에 아치형 돌방무덤 1기가 수습 조사되었고, 1989년 공주터널 건설공사 시에는 굴식 돌방무덤 2기가 발견되어 조사하여 수습하였다. 2000년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발굴조사를 통해 굴식 돌방무덤 21기, 앞트기식 돌널무덤 2기, 구덩식 돌널무덤 3기, 돌덧널 독무덤 3기, 널무덤 9기, 외곽묘 1기, 구덩식 유구 3기, 미상 유구 1기 등 총 43기의 유구가 발견되었다. 43기의 고분 가운데 21기가 백제 시대의 굴식 돌방무덤이고,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고분도 몇 기 발견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크게 토기류, 철기류, 금은제 장식품 등의 종류로 구별된다. 토기류는 삼족 토기, 뚜껑 있는 굽다리접시, 뚜껑접시, 아가리큰긴목항아리, 짧은목항아리, 심발형 토기, 두귀항아리 등의 기종이 확인되었다. 철기류는 관못, 관 장식, 철촉 등이 출토되었으며, 금제 장식은 4기의 돌방무덤에서 총 16점이 출토되었는데, 금제 꽃무늬 장식, 금제 나뭇잎 장식, 금제 구슬 장식과 반지 등이 있다.

이 고분군은 백제 웅진도읍기 굴식 돌방무덤의 세부 구조와 무덤 양식 변천 과정의 연구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기존 굴식 돌방무덤들은 천장이 함몰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 고분군은 천장이 거의 완벽한 상태로 남아 있어 이러한 형태의 무덤 연구에 있어 유용한 자료로 활용할 수 있다.

그리고 무덤 내부에서 부장 유물도 풍성하게 출토되었는데, 특히 은제 금장반지는 백제지역의 예로서는 처음 출토된 것으로 주목된다. 이러한 금은제 장식과 장신구는 왕을 정점으로 한 백제의 중앙 지배층과 일부 지방의 수장세력만이 소유하였던 것으로 무덤 주인의 신분과 돌방무덤의 축조시기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또한 돌방무덤의 구조적 특징과 함께 백제 지배층의 무덤 양식과 매장 양식 그리고 웅진 도읍기의 사회·문화상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라 할 수 있다.

1차 수정

공주 금학동 고분군은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는 유적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3년 금학동 일대에 6기의 굴식 돌방무덤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1968년에 아치형 돌방무덤 1기가 조사되었고, 1989년에는 굴식 돌방무덤 2기가 발견되어 조사하였다. 2000년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발굴조사를 통해 굴식 돌방무덤 21기, 앞트기식 돌널무덤 2기, 구덩식 돌널무덤 3기, 돌덧널 독무덤 3기, 널무덤 9기, 외곽묘 1기, 구덩식 유구 3기, 미상 유구 1기 등 총 43기의 유구가 발견되었다. 43기의 고분 가운데 21기가 백제 시대의 굴식 돌방무덤이고, 백제 웅진도읍기 굴식 돌방무덤의 세부 구조와 무덤 양식 변천 과정을 잘 보여준다. 특히 기존 굴식 돌방무덤들은 천장이 함몰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 고분군은 천장이 거의 완벽한 상태로 남아있다. 이밖에도 고려시대 토광묘 5기와 조선시대의 고분 4기도 발견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크게 토기류, 철기류, 금은제 장식품 등이 있다. 특히 은제 금장반지는 백제 지역에서는 처음 출토된 것으로 주목된다. 이러한 금은제 장식과 장신구는 왕을 정점으로 한 백제의 중앙 지배층과 일부 지방의 수장세력만이 소유하였던 것으로 무덤 주인의 신분과 돌방무덤의 축조시기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공주 금학동 고분군은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는 유적이지만, 백제웅진도읍기의 무덤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 출토된 유물은 크게 토기류, 철기류, 금은제 장식품 등이 있다. 이 중에서 금제 나뭇잎 장식은 무령왕릉 왕비 족좌에도 장식되어 있으며, 은의 표면에 금을 도금한 은제 금장반지는 백제 지역에서 처음 출토된 것으로 주목된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공주 금학동 고분군은 백제 웅진부터 조선까지의 고분이 분포된 유적이다.
      일제 강점기인 1933년 금학동 일대에 6기의 굴식 돌방무덤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1968년에 아치형 돌방무덤 1기가 조사되었고, 1989년에는 굴식 돌방무덤 2기가 발견되어 조사하였다. 2000년에 이루어진 조사에서 굴식 돌방무덤 21기, 앞트기식 돌널무덤 2기, 구덩식 돌널무덤 3기, 돌덧널 독무덤 3기, 널무덤 9기, 회곽묘 1기, 구덩식 유구 3기, 성격을 알 수 없는 유구 1기 등 총 43기가 확인되었다. 39기의 고분 가운데 21기가 백제 웅진 시기의 굴식 돌방무덤이다. 금학동고분군의 굴식 돌방무덤들은 천장이 무너지지 않고 잘 남아 있어 백제 웅진기 굴식 돌방무덤의 세부 구조와 무덤 양식 변천 과정을 잘 보여준다. 이밖에도 고려시대 토광묘 5기와 조선시대 고분 4기가 확인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크게 토기류, 철기류, 금은제 장식품 등이 있다. 특히 은 고리 위에 금을 도금한 반지는 백제 지역에서는 처음 출토된 것으로 주목된다. 이러한 금은제 장식과 장신구는 백제의 중앙 지배층과 일부 지방의 지배층들이 소유하였던 것으로 무덤 주인의 신분과 돌방무덤의 축조시기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두번째 단락이 길고 정보가 많으므로 중간부분 ‘43기의 고분 가운데~’부터 단락을 한번 더 나눠주는 게 읽기 편할 듯 합니다.

2차 수정

공주 금학동 고분군은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고분이 분포하고 있는 유적이다.

1933년 금학동 일대에 6기의 굴식 돌방무덤이 있는 것으로 보고되면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1968년에 아치형 돌방무덤 1기가 조사되었고, 1989년에는 굴식 돌방무덤 2기가 발견되어 조사하였다. 2000년에 본격적으로 이루어진 발굴조사를 통해 굴식 돌방무덤 21기, 앞트기식 돌덧널무덤 2기, 구덩식 돌덧널무덤 3기, 돌덧널 독무덤 3기, 널무덤 9기, 외곽묘 1기, 구덩식 유구 3기, 미상 유구 1기 등 총 43기의 유구가 발견되었다.

43기의 고분 가운데 21기가 백제 시대의 굴식 돌방무덤이고, 백제 웅진도읍기 굴식 돌방무덤의 세부 구조와 무덤 양식 변천 과정을 잘 보여준다. 특히 기존 굴식 돌방무덤은 천장이 함몰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이 고분군은 천장이 거의 완벽한 상태로 남아있다. 이밖에도 고려시대 움무덤 5기와 조선시대의 고분 4기도 발견되었다.

출토된 유물은 크게 토기류, 철기류, 금은제 장식품 등이 있다. 특히 은제 금장반지는 백제 지역에서는 처음 출토된 것으로 주목된다. 이러한 금은제 장식과 장신구는 왕을 정점으로 한 백제의 중앙 지배층과 지방의 일부 수장 세력만이 소유하였던 것으로 무덤 주인의 신분과 돌방무덤의 축조 시기를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