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고성 육송정 홍교
2022년 국문집필
기존 국문
육송정 홍교의 건립 년대를 알 수 없지만 건봉사 능파교와 함께 을축년(1745년)의 대홍수로 붕괴되었던 점을 고려할 때 능파교(1704년)와 비슷한 시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1748년에 편찬된 간성군 읍지(杆城郡 邑誌)에 육송정 홍교가 언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고 기록되어 있어 능파교보다 더 오래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간성읍 해상리와 탑현리의 경계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하천의 폭이 12.3m 되는 곳에 석축을 쌓고 길이 10.6m의 다리를 놓았다. 이 다리는 단칸 홍예교(虹蜺橋)로 자연지형을 잘 이용하여 축조된 석교(石橋: 돌다리)이다.
홍예의 기초는 자연지형을 잘 활용하여 동쪽은 암반을 그대로 이용하여 그 위에 홍예돌과 비슷한 크기의 장대석으로 1단의 지대석(높이 30cm)을 두었다. 서쪽에서는 3단의 지대석을 ᄊᆞᇂ은 후 그 위에 홍예를 올렸는데 1단에 2개씩의 장대석을 이어서 만들었다. 서쪽 지대석의 높이는 1단이 묻혀있어 정확히 알 수 없으나 2단이 70cm, 3단이 60cm로 매우 거대하다. 홍예와 날개벽 사이 교각면석은 장대석을 사용하지 않고 자연적인 냇돌(川石)을 사용하였는데 아래쪽에서는 큰 돌을 위쪽에는 작은 돌을 사용하였다.
2003년 보수공사시 홍예석을 제외한 면석과 호안석축 및 주변공사를 실시하려 하였으나 사업추진 중 홍교의 변형 및 훼손이 심하다고 판단되어 문화재 전문가의 자문을 받아 홍예석을 해체하여 2006년 6월에 복원되었다.
수정 국문
초고
‘홍교’란 다리 밑이 반원형이 되게 쌓은 다리를 말하며, 홍예교, 아치교 또는 무지개다리라고도 한다.
간성읍 해상리와 탑현리 경계에 위치한 이 홍교는 조선시대인 18세기 초에 처음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745년 대홍수로 붕괴되었던 적이 있고, 2006년에 해체 복원되었다.
이 다리의 홍예*는 자연지형을 그대로 활용하여 만들었다. 다리의 동쪽은 높이 1.7m의 암반 위에 30cm 높이의 지대석을 1단 두었고, 서쪽은 3단의 지대석을 쌓고 그 위에 홍예를 올렸다. 홍예의 지름은 7.2m, 폭은 2.9m이며, 긴 네모꼴의 돌을 한 줄에 2~3개씩 이어 쌓았다.
자연지형을 잘 이용하여 지었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조선시대 돌로 만든 무지개다리의 아름다운 조형미를 잘 보여준다. 다리 길이는 10.6m, 높이는 4.8m, 폭은 3m이다.
1차 수정
홍교란 ‘홍예(虹霓)’라고 부르는 반원형의 구조물이 다리 밑을 받치도록 만든 다리를 말하며, 홍예교 또는 무지개다리라고도 한다. 아름답고 구조적으로 가장 안정된 형식의 다리이지만 축조하기가 쉽지 않다.
간성읍 해상리와 탑현리 경계에 위치한 이 홍교는 언제 처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다. 인근 건봉사 경내에 있는 능파교(보물)가 숙종 30년(1704)에 지어지기 시작하여 숙종 33년(1707)에 완성되었는데, 이 다리도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육송정 홍교라는 이름으로 보아 이 다리 근처에 육송정이라는 정자가 있던 것으로 여겨지지만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지금의 다리는 2006년에 해체하여 보수한 것이다.
육송정 홍교의 홍예는 자연지형을 그대로 활용하여 만들었다. 동쪽은 높이 1.7m의 암반 위에 30cm 높이의 지대석을 1단 두었고, 서쪽은 3단의 지대석을 쌓고 그 위에 홍예를 올렸다. 홍예의 지름은 7.2m, 폭은 2.9m이며, 긴 네모꼴의 돌을 한 줄에 2~3개씩 이어 쌓았다. 홍예 양옆에는 자연 형태 그대로의 냇돌을 쌓았는데, 아래쪽에는 큰 돌을 위쪽에는 작은 돌을 사용하였다.
자연지형을 잘 이용하여 지었으며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조선시대 돌로 만든 무지개다리의 아름다운 조형미와 건축기술을 잘 보여준다. 다리 길이는 10.6m, 높이는 4.8m, 폭은 3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