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결성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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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결성향교는 1010년 금곡리에 처음 세워졌으나 1406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그후로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건물은 앞족에 교육공간(명륜당, 동재, 서재)을 두고, 뒤쪽에 제향공간(대성전, 제기고)을 두는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지방에서 유학을 가르치기 위해 세운 교육 기관이다.

수정 국문

초고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향교는 크게 교육을 담당하는 명륜당을 중심으로 하는 강학 공간과 제사를 담당하는 대성전으로 구분되는데, 이 향교는 앞쪽에 명륜당이 있고 뒤쪽에 대성전이 있는 전학후묘의 구조이다. 이 외에도 동재(東齋), 제기고(祭器庫), 내삼문(內三門), 홍살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이후 여러 차례 보수 공사를 하였으며, 1923년에 대대적인 보수공사를 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대성전에는 중국의 5성(五聖)과 송조 4현(宋朝四賢), 우리나라의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의 기능만 남았다. 매월 1일과 15일 두 차례 분향례(焚香禮)를 행하고, 봄과 가을에 석전제(釋奠祭)를 올린다.

1차 수정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결성향교는 고려시대인 1010년에 처음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중건하였으며, 1923년에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앞쪽의 교육공간에는 유생들의 교육 장소였던 명륜당과 기숙사인 동재, 서재가 있으며, 뒤쪽의 제향공간에는 제기고와 사당인 대성전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선현 27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해마다 봄과 가을에 이들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결성향교는 고려시대인 → 결성향교는 조선시대에 독립 고을이었다가 후에 홍성에 편입된 결성의 향교로서, 고려시대인
      • 수정이유: 홍성 시내의 향교와 별도로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됨.
  2. 분야별 자문위원 2
    • 설립 시기에 대한 구체적인 고증이 필요함→수정안에서도 고려시대인 1010년에 창건되었다고 하였다. 이같은 서술이 타당하기 위해서는 1010년 당시에 결성현이 독자적인 지방 조직으로 확인되어야 한다.
    •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향교는 고을의 중심에 설치되어 지방의 문화를 선도하였다.”
    • 대성전에 모셔진 위패의 현황에 대한 재조사 필요→수정안에는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선현 27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라고 기술되었다. 대성전에는 중국의 공자 이후 20명과 우리나라 유학자 18명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 아닌가요? 정확한 파악을 통해서 기술하여야 한다.

2차 수정

향교는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지방에서 유학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국립교육기관이다. 덕행과 학문의 모범을 보인 성현에게 제사를 올리며, 유교의 경전과 역사, 시나 문장을 짓는 법을 가르쳤다.

결성향교는 고려시대인 1010년에 처음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후 조선시대에 여러 차례 중건하였으며, 1923년에 대대적으로 보수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앞쪽의 교육공간에는 유생들의 교육 장소였던 명륜당과 기숙사인 동재, 서재가 있으며, 뒤쪽의 제향공간에는 제기고와 사당인 대성전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선현 27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고, 해마다 봄과 가을에 이들을 기리는 제사를 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