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거제 세진암 목조여래삼존불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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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세진암은 조계종 사찰의 거제 본산이라 할 수 있는 이 지역에서 가장 유서 깊은 역사를 지닌 암자이다. 이 곳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여래삼존불좌상은 높이 50㎝ 크기로 존용(尊容)과 법의(法衣) 표현에서 조선 후기 18세기의 양식적 특징을 지닌 단아한 모습의 불상이다. 불신(佛身) 내부에서 발견된 복장기(服藏記)에 “강희사십이년계미오월일 화공안간 와룡산 심적암(深寂庵)이라는 내용으로 보아, 이 불상의 조성 시기는 조선 숙종29년(1703년)이며, 원래 와룡산 심적암에 봉안되었던 불상이나 후대에 세진암으로 이봉(移奉)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수정 국문

초고

세진암 목조여래삼존불좌상은 본존인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이루어져 있다.

####년에 불상 내부에서 발견된 기록을 통해 이 불상들은 17세기 후반에 활동한 조각승 수일(守日 또는 守一)에 의해 조선 숙종 29년(1703) 경상남도 사천 와룡산(臥龍山) 심적암(深跡菴)에서 만들어졌음이 확인되었다. 향나무로 만들어진 이 불상들은 머리와 몸, 손과 다리를 각각 따로 만든 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이 불상들은 약 300년 전에 고성군 하이면의 옛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각 불상의 높이는 약 50cm이다.

아미타불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부처이고,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며, 대세지보살은 중생의 구제를 의미한다.

아미타불은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무릎 위에 올린 채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두었다. 좌우의 두 보살은 모두 머리에 모자 형태의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손의 방향을 서로 반대로 하고 있는 것 외에는 거의 유사하다.

2009년 6월 양쪽 협시불을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적이 있으며, 지금은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유리벽 뒤에 모셔져 있다.

  • 세 불상은 대웅전에 모셔져 있다. 대웅전은 본래 석가모니불을 모시는 전각이다.
  • 복장 유물이 언제 발견된 것인지 확인 못함 – 자료 검색 불가 ; 확인 필요함.

1차 수정

세진암 목조여래삼존불좌상은 본존인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이루어져 있다. 승려 조각가 수일(守日 또는 守一)이 숙종 29년(1703) 사천 와룡산 심적암(深跡菴)에서 만들었다. 세진암으로 옮겨온 내력은 자세히 알 수 없으며,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약 300년 전에 고성군 하이면의 옛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아미타불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부처이고,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며, 대세지보살은 중생의 구제를 의미한다. 향나무로 만들어진 이 삼존상은 머리와 몸, 손과 다리를 각각 따로 만든 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아미타불은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무릎 위에 올린 채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두었다. 좌우의 두 보살은 모두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손의 방향을 서로 반대로 하고 있는 것 외에는 거의 유사하다. 2009년 6월 양쪽 협시불을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적이 있으며, 지금은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유리벽 뒤에 모셔져 있다. 각 불상의 높이는 약 50cm이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승려 조각가 수일(守日 또는 守一)이 숙종 29년(1703) 사천 와룡산 심적암(深跡菴)에서 만들었다. --> 복장 발원문에 의하면 승려 조각가 수일(守日 또는 守一)이 숙종 29년(1703) 사천 와룡산 심적암(深跡菴)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 아미타불은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무릎 위에 올린 채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두었다. --> 아미타불은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두었다.
  2. 분야별 자문위원 2
    • 전체적인 문장의 구성을 재고할 필요가 있음
    • 1.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 아미타불과 협시보살인 관세음 ․ 대세지 보살로 구성되어 있다. 이 불보살상들은 승려~
    • 2. 불상 속에서 복장이 나왔고 그 기록에 의해 조성시기와 제작자를 알 수 있었음을 밝힌다.
  1.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1. 연도가 먼저 나오고 만든이가 나오는 게 이해하는 데 순조로와보임
    • 2. 순접이 아니라 역접으로 ..
    • 세진암 목조여래삼존불좌상은 본존인 아미타불과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이루어져있다. 숙종 29년(1703), 승려 조각가 수일(守日 또는 守一)이 사천 와룡산 심적암(深跡菴)에서 만들었다. 세진암으로 옮겨온 내력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약 300년 전에 고성군 하이면의 옛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 아미타불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부처이고,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며, 대세지보살은 중생의 구제를 의미한다. 향나무로 만들어진 이 삼존상은 머리와 몸, 손과 다리를 각각 따로 만든 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 아미타불은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대어 무릎 위에 올린 채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두었다. 좌우의 두 보살은 모두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손의 방향을 서로 반대로 하고 있는 것 외에는 거의 유사하다. 2009년 6월 양쪽 협시불을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적이 있으며, 지금은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유리벽 뒤에 모셔져 있다. 각 불상의 높이는 약 50cm이다.

2차 수정

세진암 목조여래삼존불좌상은 본존인 아미타불과 협시보살인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로 이루어져 있다. 숙종 29년(1703) 승려 조각가 수일(守日 또는 守一)이 사천 와룡산 심적암(深跡菴)에서 만들었다. 세진암으로 옮겨온 내력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전하는 이야기에 따르면 약 300년 전에 고성군 하이면의 옛 절터에서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아미타불은 죽은 이를 서방 극락세계로 인도하여 그의 영혼을 구제하는 부처이고, 관세음보살은 자비를 상징하며, 대세지보살은 중생의 구제를 의미한다. 향나무로 만들어진 이 삼존상은 머리와 몸, 손과 다리를 각각 따로 만든 후 끼워 맞추는 방식으로 제작되었다.

아미타불은 양손의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오른손은 손바닥을 바깥으로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이 위를 향하게 두었다. 좌우의 두 보살은 모두 머리에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손의 방향을 서로 반대로 하고 있는 것 외에는 거의 유사하다. 2009년 6월 양쪽 협시불을 도난당했다가 되찾은 적이 있으며, 지금은 불상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유리벽 뒤에 모셔져 있다. 각 불상의 높이는 약 50c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