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개심사 심검당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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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심검당의 건립연대는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조선 성종실록에 개심사의 건물이 1475년(성종 6년)에 화재로 불타 없어진 것을 1484년(성종 15년)에 중창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심검당도 이때 함께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조선후기에 다시 중창되었다. 원래의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나 지금은 ‘ㄱ’자형의 방을 이어지게 늘려 지어 상당히 큰 요사로 남아 있다.
구조는 기단석 위에 자연석의 주춧돌을 놓고 배흘림이 가미된 둥근 기둥을 세웠으며, 기둥 윗부분에 공포를 짜올려 지붕의 무게를 모두 기둥에 받도록 한 주심포 양식이다. 지붕의 뒷부분은 홑처마, 앞은 겹처마의 맞배지붕 집이다. 평지의 사원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평탄하고 안정되어 산속의 다른 건축물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수정 국문
초고
개심사 심검당은 스님들이 수행하며 주거하는 건물이다. 심검당이라는 말은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으로, 절의 요사(寮舍)에 주로 붙이는 이름이다. 이때의 검은 마지막 머리카락을 잘라 부처의 밝은 지혜를 얻는다는 칼을 상징한다.
1962년 건물을 해체 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1477년(성종 8)에 세 번째로 고쳐지었으며, 영조 7년(1731)에 여섯 번째 고쳐지었다고 한다. 상량문에는 시주자의 이름과 박시동(朴時同)이라는 목수 이름까지 들어가 있어 건축사적으로 그 가치가 크다.
원래의 크기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나 이후 ㄱ자형의 방을 이어지게 늘려 지었다. 약간 다듬은 자연석으로 주춧돌을 놓았고, 기둥은 중간이 굵고 위·아래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배흘림양식으로 안정감을 준다.
문맥요소
요소 | 관계 | 설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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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요사(寮舍) | 건물의 성격 | 절에서 스님들이 수행하고 거처하는 건축물. |
2 | 상량문(上樑文) | 발견 문서 | 건물을 새로 짓거나 고친 내력 등을 적어둔 문서 |
1차 수정
심검당은 스님들이 생활하며 수행하는 건물이다. 심검당이라는 이름은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이다.
개심사 심검당은 언제 처음 지었는지 알 수 없고, 1477년과 1731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정면에 심검당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는 오른쪽 부분이 원래의 건물이고, 왼쪽에 지붕이 살짝 낮은 ㄱ자형 건물을 덧붙여서 규모를 늘렸다. 스님들이 쓰는 방들과 주지실, 창고, 부엌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74년에 보수한 것이다.
자문의견
- 불교문화재 위원1
- 명칭 부합, 객관적
- 적절하다
- 정확하다
- 이 건물의 가치와 의미를 서술하지 못하였다.
- 불교문화재 위원2
- 지정 명칭에 지역표기 필요
- 보완: 수행공간의 일반명사인 ‘요사’라는 설명과 사찰마다 요사를 다양한 이름을 지어 편액으로 걸었는데, 이곳에는 ‘심검당’이라는 이름을 붙였다는 설명 필요.(일반명사와 고유명사 정보 제공 필요)
- 미흡: 개심사 심검당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기둥에서 보이는 자연미를 살린 부재 치목 수법’에 대한 언급 필요.
2차 수정
심검당은 스님들이 생활하며 수행하는 건물이다. 심검당이라는 이름은 ‘참선을 통해 문수보살이 들고 있는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는 뜻이다.
개심사 심검당은 언제 처음 지었는지 알 수 없고, 1477년과 1731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정면에 심검당 현판이 걸려 있는 오른쪽 부분이 원래의 건물로, 왼쪽에 지붕이 살짝 낮은 ㄱ자형 건물을 덧붙여서 규모를 늘렸다. 스님들이 쓰는 방들과 주지실, 창고, 부엌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74년에 보수했다.
- 요사는 스님들이 생활하는 건물을 통칭하는 말이다. 요사는 기능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데, 생활공관과 선방 기능을 함께 갖는 요사는 심검당, 적묵당 등으로 불리고, 생활공간과 강당 기능을 함께 갖는 요사는 설선당으로 불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