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강천사 오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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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국문

이 탑은 1316년에 덕현(德玄) 스님이 강천사를 다시 지을 때 세운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화강암으로 정교하게 만든 오층탑으로, 다보탑(多寶塔)이라고도 부른다. 2층, 3층, 4층의 덮개돌에는 6·25 한국전쟁(1590~1953) 때 총탄을 맞은 흔적이 남아 있다. 강천사는 풍수지리석을 체계화한 도선국사(道詵國師)가887년에 지은 절로서, 임진왜란(1592~1598)과 6·25 한국전쟁 때 이 탑을 제외한 경내의 모든 건물이 불에 타 없어졌다. 1959년부터 주지였던 김장엽(金裝燁) 스님이 복원을 시작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수정 국문

초고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상징적인 조형물이다. 모든 탑이 진신사리를 모신 것은 아니지만,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 신앙의 대상이 된다.

강천사 대웅전 앞마당에 서 있는 5층 오층 석탑은 고려 충숙왕 3년(1316) 경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높이는 2.35m이다.

탑은 단층의 기단, 5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1층 기단에, 각 몸돌은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는데, 1층은 확실히 보이고 있으나 그 위층부터는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 있다. 지붕돌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1950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지붕돌과 같은 탑 일부가 파손되었던 것을 1959년에 보수하였다.

  • 한국전쟁 당시 파손된 부분에 대한 정보에 약간 차이가 있음 [2·3·4층의 옥개석(屋蓋石) (순창문화대전) / 탑신석과 옥개석 일부(민백/문화재청)]

1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강천사 대웅전 앞마당에 서 있는 오층석탑은 고려 충숙왕 3년(1316) 무렵 강천사를 중창하던 때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1950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일부 파손되었으며 1959년에 보수하였다. 높이는 2.35m이다.

탑은 단층의 기단, 5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1층 기단과 각 몸돌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는데, 2층 이상의 몸돌에는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 있다. 지붕돌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끝에서 살짝 올라간 모습이다.

자문의견

  1. 분야별 자문위원 1
    • 탑은 단층의 기단, 5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1층 기단과 각 몸돌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는데, 2층 이상의 몸돌에는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 있다. 지붕돌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끝에서 살짝 올라간 모습이다.
    • -> 이 탑은 현재 1석으로 제작된 방형 기단석 위에 5층으로 올려져 있지만, 기단석과 탑신석 일부는 원래 부재가 아니며, 상륜부(머리장식X) 역시 원래 것이 아니라 후대에 보수된 것이다. 기단부 역시 하층기단으로 추정되는 방형석재 1매만 남아 있지만 원래는 이중기단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고려시대에 제작된 오층탑으로 추정되며, 특히 이러한 5층 이상의 다층 탑이 전라북도 지역에서 많이 제작되었으므로 지역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는 것을 언급해야 함.
    • 머리장식 -> ‘상륜부’로 복구 검토 필요, ‘상륜’이라는 표현은 초기불교용어로 전법륜(轉法輪)을 상징하는 고유명사임. 머리장식이라는 표현은 석탑 뿐만 아니라 다양한 공예품에도 사용되고 있어 명칭의 고유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음.
  2. 분야별 자문위원 2
    • 불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시는 축조물로 불상과 함께 부처를 대신하는 상징물로 신성하게 여겨진다.
    • 강천사는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887년 도선이 창건했다는 설과 1482년 신령(信靈)이 광덕산(廣德山)에 명승지를 골라 초암을 짓고 지낸 것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전기까지 여러 번의 중창이 있었으며,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 없어지고 강천사만 남아 있게 되었다.
    • 대웅전 앞마당의 오층석탑은 화강암으로 정교하게 만들어졌으며, 고려 충숙왕 3년(1316) 중창무렵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한다. 탑은 단층 기단, 5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1층 기단과 각 몸돌의 모서리에는 버팀기둥의 조각이 분명하게 보이나 2층 이상의 몸돌에는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 있다. 지붕돌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끝에서 살짝 올라간 모습이다.
    • 한국전쟁 때 기단과 지붕돌 일부를 잃어 1959년에 보수한 것이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지금의 높이는 2.35m 이다.
  3. 읽기 쉬운 문안 자문위원
    • 강천사 대웅전 앞마당에 서 있는 오층석탑은 고려 충숙왕 3년(1316) 무렵 강천사를 중창하던 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 위 문장 안의 무렵과 때는 비슷한 어의가 두 번 반복된 사례다. 둘 중 하나 ‘ 무렵’을 생략함이 바람직하다.
      → 고려 충숙왕 3년(1316) 강천사를 중창하던 때 세워졌다고 한다.

2차 수정

불탑은 부처의 유골을 모신 조형물이다. 실제 유골이 없는 경우라 하더라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신성한 곳으로 여겨진다.

강천사 대웅전 앞마당에 서 있는 오층석탑은 고려 충숙왕 3년(1316) 무렵 강천사를 중창하던 때에 세워졌다고 전한다. 1950년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일부 파손되었으며 1959년에 보수하였다. 높이는 2.35m이다.

탑은 단층의 기단, 5층의 몸돌과 지붕돌, 머리장식 일부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과 몸돌의 일부는 원래 부재가 아니며, 머리장식 역시 후대에 보수된 것이다. 기단은 원래 이중기단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층 기단과 각 몸돌의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겼는데, 2층 이상의 몸돌에는 희미하게 흔적만 남아 있다. 지붕돌 아래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고,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끝에서 살짝 올라간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