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최석정 묘소
청주 최석정 묘소 Tomb of Choe Seok-jeong, Cheongju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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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청주 최석정 묘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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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Tomb of Choe Seok-jeong, Cheongju |
한자 | 淸州 崔錫鼎 墓所 |
주소 | 충청북도 청원군 북이면 대율리 237-15 |
지정(등록) 종목 | 충청북도 기념물 제169호 |
지정(등록)일 | 2019년 6월 7일 |
분류 | 유적건조물/무덤/무덤/봉토묘 |
수량/면적 | 1원 |
웹사이트 | 청주 최석정 묘소, 국가문화유산포털, 문화재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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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문
국문
최석정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학자로, 병자호란을 극복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최명길의 손자이다. 그는 남구만과 박세채의 제자이며 영의정을 여덟 차례 지냈다. 또한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수학, 천문학 등에도 조예가 깊었다. 저서로는 당면한 현실 문제 해결의 대안을 담은 「명곡집(明谷集)」, 훈민정음의 음운체계를 연구한 「경세정운(經世正韻)」, 세계 최초로 마방진을 발표한 「구수략(九數略)」 등이 있다.
묘소에는 흙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호석(護石: 능이나 묘의 둘레에 돌려 쌓은 돌)을 둘렀다. 묘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이 있고, 좌우에 문인석(문관 형상으로 만든 돌)과 망주석(무덤 앞의 양쪽에 세우는 한 쌍의 돌기둥)을 배치하였다. 이 묘소는 당시 사대부의 묘제를 잘 보여 주고 있다.
영문
Tomb of Choe Seok-jeong, Cheongju
This is the tomb of Choe Seok-jeong (1646-1715), a civil official and scholar of the Joseon period (1392-1910).
Choe was a grandson of Choe Myeong-gil (1586-1647), who played a major role in overcoming the social unrest caused by the Manchu invasion of 1637, and a student of the renowned Confucian scholars Nam Gu-man (1629-1711) and Bak Se-chae (1631-1695). After passing the state examination in 1671, he served various official posts and was appointed eight times as chief state councilor, the highest post in the government. He was also a great writer, calligrapher, mathematician, and astronomer. He authored books on diverse subjects such as a collection of essays on the various social problems of his time and a study on the phonological system of the Korean alphabet. He was also the first to publish an example of Latin squares of order nine, thus predating the Swiss mathematician Leonhard Euler (1707–1783) through whom the concept became widely known.
The base of the tomb mound is surrounded by stone bricks to help to prevent the tomb from collapsing. In front of the tomb mound is a stone table, stone incense table, a pair of stone statues of civil officials, and a pair of stone pillars. These stone structures provide insight into the design of tombs for Confucian elites of the time.
영문 해설 내용
조선시대의 문신인 최석정(1646-1715)의 묘이다.
최석정은 병자호란을 극복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최명길(1586~1647)의 손자이며, 당대의 대학자인 남구만(1629-1711), 박세채(1631-1695)의 제자이다. 1671년 과거에 급제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고, 모두 여덟 차례 영의정을 지냈다. 문장과 글씨에도 뛰어났으며, 수학과 천문학 등예도 조예가 깊었다. 당면 현실의 해결 대안을 담은 시문집과 훈민정음의 음운체계에 대한 연구서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저술을 남겼다. 특히 그리고 세계 최초로 9차 직교라틴방진을 다룬 수학 저술을 남겼는데, 이는 스위스 수학자인 오일러(1707-1783)의 것보다 앞선 것이다.
봉분 아래에는 흙이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호석을 둘렀다. 봉분 앞에는 상석, 향로석, 문인석 1쌍, 망주석 1쌍이 배치되어 있다. 이러한 석물들은 당시 사대부의 묘제를 잘 보여준다.
참고자료
- 청주 최석정 묘소,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http://www.heritage.go.kr/heri/cul/culSelectDetail.do?pageNo=1_1_1_1&ccbaCpno=2333301690000#
- 최석정(崔錫鼎),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C%B2%AD%EC%A3%BC%20%EC%B5%9C%EC%84%9D%EC%A0%95%20%EB%AC%98%EC%86%8C&ridx=1&tot=496
- 남구만(南九萬),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82%A8%EA%B5%AC%EB%A7%8C&ridx=0&tot=34
- 박세채(朴世采),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SearchNavi?keyword=%EB%B0%95%EC%84%B8%EC%B1%84&ridx=0&tot=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