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표율사(김제 금산사 일원)
진표율사 Preceptor Jinpy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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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명칭 | 진표율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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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명칭 | Preceptor Jinpyo |
한자 | 眞表律師 |
주소 | 전라북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 |
해설문
국문
진표율사(718~?)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고승으로 금산사를 중창하였다. 전라북도 김제 출신으로 12세에 출가하여 금산사 숭제(崇濟)법사에게 계를 받았다. 760년 변산의 부사의방(不思議房)에서 온몸을 바위에 부딪치며 망신참법(亡身懺法)의 혹독한 수행을 하였다. 스님은 마침내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의 감응을 받아 교법(敎法)을 전해 받았다. 변산의 영산사(靈山寺)에서 수행할 때는 미륵보살에게서 『점찰경』과 불과(佛果)를 증명하는 간자(簡子) 189개를 받았다. 이 증과간자(證果簡子)는 스님의 중요한 중생 교화 방편이 되었다. 이후 금산사를 크게 중창하면서 미륵장육상(彌勒丈六像)을 조성하였고, 법당안 벽에는 미륵보살에게서 계법을 받는 모습을 그렸다. 진표율사는 금산사에 매년 수계를 위한 법회, 즉 계단(戒壇)을 개설하여 신라불교의 성행을 이끌었다. 율사는 경덕왕의 부름을 받고 궁궐에 나아가 왕에게 보살계를 베풀어 주기도 하였다. 말년에는 금강산 발연사에서 수행에 전념하다가 입적하였다.
진표율사의 수행은 점찰법으로 유명하다. 점찰법은 수행 중에 산란한 마음이 일어나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전생의 선악업보와 현재의 길흉고락(吉凶苦樂)을 점쳐 살피는 수행법이다. 손가락 크기의 나무쪽을 윷 던지듯 던져 선악을 관찰하는 방법이다. 선정과 지혜를 얻기 어려울 때 참회법을 행하여 망령된 마음을 벗어난다고 한다. 7세기 초에 원광법사가 점찰법회를 처음 시행하였고, 진표율사가 대중적으로 정착시켜 고려시대에도 성행하였다. 한편 진표율사는 금산사가 창건초기부터 지녔던 미륵신앙의 전통을 계승하여 미륵장육상을 봉안함으로써 미륵신앙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하였다.
영문
Preceptor Jinpyo
Jinpyo (718-?) was a renowned Buddhist monk of the Unified Silla period (668-935) who oversaw the expansion of Geumsansa Temple.
Born in Gimje, Jinpyo was ordained as a monk at Geumsansa Temple at the age of 12. He visited many sacred mountains and devotedly followed the teachings of the Buddha. Determined to obtain the sacred teachings of Ksitigarbha and Maitreya and spread them to the world, he resorted to an extreme Buddhist practice of repeatedly throwing the body against a rock. And as a result, he personally witnessed the two bodhisattvas and attained enlightenment. He then returned to Geumsansa Temple, where he initiated an expansion, building Mireukjeon Hall and enshrining there a statue of Maitreya. It is said that a painting of Ksitigarbha and Maitreya was painted on the walls of Mireukjeon Hall. Since Mireukjeon Hall was established here, Geumsansa Temple has been a place of pilgrimage for the worshipers of Maitreya.
Preceptor Jinpyo was also a respected figure in the royal court, which provided him with generous support to spread Buddhism around the kingdom. He spent his last years at Baryeonsa Temple at Geumgangsan Mountain. A stele erected at this temple states that Jinpyo died while meditating on a large rock to the east of the temple. However, his followers did not move his body from the rock and continued performing offerings to him. Eventually, when his remains collapsed, the followers covered them with soil and created a tomb. A stupa said to contain Jinpyo's remains is located at the stupa yard of Geumsansa Temple.
영문 해설 내용
진표율사(718-?)는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고승으로 금산사를 중창하였다.
진표는 김제 출신으로 12세에 출가하여 금산사에서 계를 받았다. 진표는 전국의 명산을 두루 찾아다니며 수행에 전념하였다.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에게 직접 가르침을 얻어 세상에 널리 전하겠다는 뜻을 세운 뒤 온몸을 바위에 던지는 망신참법(亡身懺法)으로 수행하였고, 마침내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을 친견하고 계를 받았다. 이후 금산사로 돌아와 미륵전을 짓고 그 안에 미륵상을 봉안하는 등 금산사를 크게 중창하였다. 미륵전에는 지장보살과 미륵보살의 모습을 벽화로 그렸다고 한다. 이때부터 금산사는 미륵신앙의 성지가 되었다.
당시 진표의 명성은 왕실에까지 퍼져 나갔으며, 왕실에서도 진표의 불교 대중화 운동을 크게 지원하였다. 말년에는 금강산 발연사에서 수행하였는데, 발연사에 세워진 진표의 탑비에 따르면, 진표는 절 동쪽 큰 바위에 앉아 명상하다가 그대로 입적하였다고 한다. 제자들은 시신을 옮기지 않은 채 공양하다가, 유골이 흩어지자 흙을 덮어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금산사 부도전에는 진표율사를 기리는 승탑이 세워져 있다.
참고자료
- 사찰문화연구원, 『전통사찰총서 8 - 전북의 전통사찰 I』, 사찰문화연구원, 2008.
- 『빛깔있는 책들 - 금산사』, , 대원사, 2007.
- "진표율사", 디지털김제문화대전, 한국학중앙연구원.